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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Jul 03. 2022

수박을 사지 않는 집


여름 하면 떠올리는 대표 과일은 수박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집은   전부터 수박을 사지 않는다.


주말에 와서 기껏 서너 조각을 먹는 남편을 위해 수박을  수도 없고 깻잎만큼 과일을 싫어하는 아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고로 혼자 수박  덩이를  먹어 치워야 하기에 게도 수박은 숙제 같은 과일이다.


먹는 내내 달짝지근한 붉은 과즙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도 별로고  옷에라도 튀면 물까지 드니 사과처럼 깔끔하게 먹을  어 귀찮다. 어쩌다 씨라도 씹게 되면 여태 먹은 수박 맛을  버리게 하므로 요리조리 하다 보면 복숭아처럼 온전히 과육에 집중할  없어 별로다. 그래서 과일과 채소를 밥처럼 먹는 ‘나’지만 수박에는 식탐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열흘이 넘도록 냉장고 속을  채우고 있는 수박은 성질이 급한 나로서는 참아 넘기기가 매우 어렵다. 그 중 뭐니 해도 제일 별로인 점은 질척하게 남은 두툼한 껍질이다. 잠시만 방치해두어도 과일 썩는 쿰쿰한 냄새가 나고 벌레까지 이니 말이다.


여기에 결정타를  것은 수박껍질은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라고 하는 ‘쓰레기 배출 공고문이었다.  후론 ‘혹시 먹어볼까?’ 하고 수박을 카트에 넣는 일이 더는 없어졌다.


수박껍질을 잘게 자르고 말려서 음식물 쓰레기로 버릴 만큼 수박을 사랑하지 않고서야, 나처럼 성질 급하고 게으른 자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노동력이 버거워서 어찌 먹을 생각을 낼까 싶다.




유튜브 강의로 수채화를 연습하다 직접 고른 수박 사진을 모델로, 3수 끝에 수박 수채화를 완성했다.

수박의 과육은 그냥 발그스레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물감으로 표현하려고 보니 꽤나 다양한 색이 보인다.. 실눈을 뜨고 지긋이 쳐다보면 붉은색 사이로 오렌지 톤, 갈색톤, 블루 톤이 느껴지기도 한다. ( *물론,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초보자다운 무모함으로 모든 톤을 표현하면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했더니, 덧칠이 너무 많아져 점점 맛없는 아니, 썩어가는 수박을 그리고야 말았다.


결국 욕심 싹 정리하고 수박하면 떠올리게 되는 맛있는 붉은 톤만 표현해 보자고 결심했다. red와 밝은 주황색인 vermilion을 섞어 초벌을 하고 light red와 ultramarine을 살짝 섞어 양감을 표현했다..



* P.S 몇 년째 수박을 사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글을 쎴는데 3번이나 그리다 보니 괜히 사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식욕이 귀차니즘을 이길 수 있으려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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