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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Jul 06. 2022

600일 동안 108배를 하며


새벽 5시, 108배 기도를 한 지 600일이 지났다.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새벽 4시 45분, 알람이 울리면 ‘힘들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다리는 이불을 젖히고 일어설 준비를 한다. 아직 잠이 덜 깨서 눈은 잘 보이지 않지만 다리는 그냥 욕실로 직행한다. 입이 뭐라 구시렁거리기 전에 손은 익숙하게 핑크빛 히말라야 소금을 갈아서 입에 넣는다. 잇몸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쓱쓱 문지른다. 부족한 수면시간과 노안으로 뻑뻑해진 눈을 비벼가며 거울 속 부스스한 존재와 힘들게 인사를 나눈다.     


“이런…또 베갯잇 찍혔네…쯧쯧…출근하기 전까지 사라지려나?”

피곤해 보이는 얼굴 탓인지 또다시 마음이 갈등한다. 손이 냉큼 찬물 한 바가지 쥐고 그대로 발에 부어 버린다.     


드디어 잠이 깼다.     


머리가 생각해낸 모든 변명을 이겨내고 몸이 스스로 움직이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내 안에서 잠을 요구하는 자아와 약속이행을 요구하는 자아의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기 싸움에 급기야 침대보로 눈물을 닦으며 일어난 적도 있다.     


그럼에도 꼭 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과거의 나와 결별하는 것!


이대로 계속 괴롭게 살래? 그만할래?


과거의 나와는 더는 살기 싫다는 통한의 반성이 잠을 이겨냈다. 내가 바라는 남편이 아니라고 쏟아내던 분노,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남 탓, 세상 탓을 하며 화내고 짜증내다 결국 자기비하로 이어지던 괴로움을 이제는 그만 끝내고 싶었다.   

  

일어나기 힘든 이유를 정당화하기 시작하면 결코 이 괴로움을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몸의 저항은 줄어들었다. 아침기도 수행이 지금은 힘들어도 미래의 나에게는 이득이 된다는 사실을 수긍하면 할수록 마음의 저항은 줄어들었다. 그냥 벌떡 일어나는 방법밖엔 모르는 바보처럼 하는 게 최선책이었다.     


잠옷을 갈아입고 침대 옆 절 방석에 정좌한 후 온라인 화상 앱을 열어 도반들과 만난다. 많을 때는 8명까지 접속하기도 하는데 오늘도 역시 결석을 모르시는 5명의 도반과 침묵의 합장 인사를 나눈다.     


삼귀의, 참회문을 차례대로 독송한다. 전날 지은 업식의 무게에 따라 참회문이 주는 깊이도 다르다.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잘 살펴보면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 (정토회 천일결사 참회문 중)  

 

아직도 108배는 걸림돌이다.

일어나 관음정근에 맞추어 108배를 시작한다. 대략 15분 정도 걸린다.

요가를 5년 넘게 한 몸이라 금세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내 몸에 맞는 절 자세를 연구해야 한다.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기에 그날그날의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절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처음 해본 108배는 힘들기도 했지만, 무척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일어날 때마다 절 방석이 자꾸 왼쪽으로 회전하며 도는 것이 아닌가? 수시로 도망가는 절 방석을 붙잡아 와야 했다. 왜 자꾸 방석이 돌지? 얼핏 곁눈질로 보니, 선배 도반들은 제자리에서 염주까지 돌리며 여여하게 절을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하기 싫은 마음 숙이며 하는데 몸은 물먹은 솜덩이마냥 무거워 헉헉대고 방석까지 창피하게 빙글빙글 돌아다니니…. 정말 고생도 이런 고생이 없다 싶었다.

     

힘들고 싫어도 108배를 계속하다 보니, 지금은 허벅지가 제법 단단해져 5층까지 2계단씩 가뿐하게 올라갈 수도 있다. 특별한 노하우보다는 그냥 꾸준히 하다 보니 얻어진 결과이다.     


108배에 조금씩 익숙해지자 몸은 여유로워졌지만 마음은 늘어난 망상으로 인해 더 힘들어졌다. 절 명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앉았다 일어나는 절 운동이 되어 버렸다.

      

결국, 염주를 포기했다.

내부의 힘이 약할 때는 외부의 힘을 끌어와야 한다. 윤기 하나 없이 빡빡하게 맞물려 있던 염주를 수만의 배 절로 매끈한 유리구슬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막상 두고 하려니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어쩌랴! 망상은 알고 있다고 해도 고치고 싶다고 해도 몸만큼 쉽게 컨트롤 되지 않았다. 염주를 돌리는 대신 절 횟수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이 줄어들어 머리도 맑아지고 마음도 차분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어 10분 명상을 한 후 경전을 독송한다. 이렇게 아침기도 루틴은 50분 정도 걸려서 끝난다.     


2021년 11월 1일, 700일을 수행 정진을 약속하며 601일째 날을 맞이했다.

입재식을 지켜보던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곰도 100일 기도해서 사람 됐는데,
니는 언제 사람 되노?

“쪼매 될라 하믄 돌아가고 또 돌아가고~”

“글체? 큭큭~ 쪼매만 더 기다려봐라~ 이제 쫌 될라 칸다!”         






* 함께 새벽 기상 인증을 했던 분들과 공저로 낸, <변화의 시작, 이기적으로 만나는 시간>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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