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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Jul 08. 2022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고

너나 잘하세요


“쭌아~ 넌 내가 보기에도 참 잘 생겼는데 말이야. 그 거북목만 좀 집어넣으면 거의 완벽한 아도니스급 모델삘인데…”

슬쩍 눈치를 보다 기어코 참던 말을 해버렸다.

“아, 엄마! 그만 해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쭌아~ 잔소리라 여기지 말아. 엄마가 이런 말을 해줄 때만큼이라도 턱을 집어넣으면 좋잖아.”

“엄마, 내가 괜찮다고요.”

“엄마가 너만 할 때부터 시작된 거북목 때문에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한 줄 아니? 나이 들면 목, 허리 디스크까지 올 수 있다고. 나처럼 고생하지 말라고 이렇게 조언해주는 거잖니.”

이쯤 하면 착한 아들은 애절한 모성애에 굴복하여 대충 턱을 당기는 척이라도 해준다. 그러나 대체로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못 들은 척 짜증 낼 때가 많다.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다.


쭌이 만할 때 다 큰 여자애가 걸음걸이가 조신하지 못하고 덜렁덜렁 팔자로 걷는다고 귀 따갑도록 잔소리를 들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남자 특히 오빠, 남동생과 조금이라도 차별한다 싶으면 불같은 말대꾸를 서슴지 않는 딸이었다. “여자라고 왜 팔자걸음 걸으면 안 돼? 난 내 맘대로 걸을 거야!”


딸이 예쁘게 자랐으면 하는 엄마의 속내를 간파하고는 오히려 청개구리마냥 반대로 하고 다녔다. 원피스 대신 청바지, 긴 머리 대신 숏커트 그리고 조신한 걸음 대신 팔자걸음. 한 마디로 엄마 속을 있는대로 뒤집었다.


지금은 안다.

지독하게 말 안 듣던 딸이 엄마가 되어 똑같이 고집 센 아들을 키워보니, 그토록 오해했던 엄마의 속뜻을 말 안해도 알겠다.


아, 그때는 왜 엄마의 진심을 몰랐을까?

엄마는 정말이지 애가 탄단다. ‘내 자식만큼은….’ 하는 마음을 결코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넌 나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면 해….


예쁜 딸이길 바랐던 울엄마와는 달리 내가 아들에게 거북목을 고치라고 자꾸 주의를 주는 데는, ‘요가 수련 7년’ 세월을 잔소리가 아닌 근거있는‘권위’로 여기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PT로 제법 요가 자세가 익숙해지자 몸이 전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고, 나도 이젠 몸과 마음을 연결하여 잘 들여다보며 자기를 교정할 수 있는 수준은 되는구나 하며 나름 자부심을  가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거지하다가도 ‘오른 다리에만 체중을 싣고 있구나’, 책을 읽다가도 ‘오른쪽 어깨가 말려 있네’, 걸을 때도 ‘오른발을 외전하여 걷고 있구나’, ‘이런! 또 턱을 내밀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어!


그런데 최근 들어 글과 그림을 하느라 장시간 앉아 있어서 그런지 몸에 문제가 생겼다. 1년 전 ‘만보 걷기’를 하면서 생긴 오른 다리 햄스트링 근육통이 다시 도진 것이다. 아뿔싸 몇 주가 지나도 근육통이 풀리지 않는다. 결국 요가원 원장님께 도움을 청했다. 원인을 진단하기 위해 원장님의 구령에 맞추어  포즈를 실행한 후 동영상을 찍었다. 동영상을 플레이했을때 정말이지  놀랐다.


영상 속의 나는 여전히 심한 거북목 상태였다!!!


턱은 앞으로  빠져 들린채  왼 다리로 엉거주춤 짝다리를 짚고 서 있었다. 앞으로 쏟아진 머리 무게를 견디느라 왼쪽 어깨는 경직되어  올라가 있었고 왼쪽 골반은 밖으로 삐죽 빠져 있었다. 요가원 원장님은 허벅지 통증을 고치려면 거북목 교정과 내부 근육의 힘부터 길러야 한다고 조언하셨다.



수학학원 앞에서 나를 기다리며 거북목의 구부정한 자세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선 참 많이 부끄러웠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고….


어른인 나는 알지만 어린 너는 모른다’는 논리가 과연 옳은가?

그렇게 실패를 모르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인가?


차 안에서 아들에게 동영상 속의 내 모습을 얘기해 주며 사과했다.

“엄마도 못 고치면서 잔소리 많이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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