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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Aug 22. 2022

잘린 상수리 나뭇가지

기후 위기

여름 내내 거의 산책을 하지 않았다.

앉아서 숨 쉬는 것도 힘들게 느껴질 만큼 무더웠지 않은가. 게다가 에어컨을 튼 첫날 냉방병을 앓는 바람에 펄펄 끓는 날씨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열대야까지 지속되는 바람에 낮동안 이미 지쳐 있는 몸으로 더는 힘들어 아예 걷기를 포기해 버렸다.


체중계에서 내려올 때마다 괴성과 탄식을 지르는 내가 안쓰러운지 남편이 자꾸 등산을 가자고 꼬신다. 오히려 산에 가면 바람이 불어 더 시원하다고 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날씨에 산을? 어림도 없다. 그 어느 해보다 악랄한 폭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직장인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여름휴가 기간에도 1일 2산을 외치며 틈만 나면 산에 다니는 사람의 말이니, 더더욱 믿을 바가 못 된다.


나를 꼬시려면 제대로 꼬셔보라고 했더니 자기는 정말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며 일단 산에 가보면 자기 말을 믿게 된다고 한다. 그런 나이브한 수법에 누가 넘어가냐고! 내심 용돈이라도 두둑이 챙겨주면 솔깃해서라도 따라가 볼까 했더니, 됐다! 고마 안 갈래. 흥!

그 말에 남편은 “안 가면 너만 손해지!” 하며 가뜩이나 더워 죽겠는데 아예 열폭탄을 안겨준다.


에잇! 몰라! 이 모든 것은 기후 위기 탓이다. 그렇게 괴로워하며 여름을 견뎌내다 보니 남은 것은 푸짐하게 부풀어 오른 뱃살과 늘어진 근육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얻은 것이 있으니. 식도염 ㅠㅠ. 쉴 새 없이 들이킨 탄산수와 아이스커피 그리고 짜증 날 때마다 먹어치운 아이스크림이 원인이 아닐까?

여름 마무리 결산을 해보니 손해만 가득하다.


처서가 지나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달라지더니 드디어 오늘 아침 기온은 20도다. 아, 가을이 왔다.

“여보! 산에 가야지~.” 108배 새벽 기도 후 남편을 깨웠다.


내 기억 속의 익숙한 그 산이 아니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질퍽한 땅은 켜켜이 쌓인 낙엽으로 부엽토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슬 잔뜩 머금은 공기를 들이마시니 식도염으로 뜨끔거리던 가슴이 진정되고, 새소리,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으니 늘어지고 해이해진 오감이 경쾌하게 살아나는 기분이다.


그런데 숲의 신비감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정체 모를 검은깨처럼 생긴 존재로부터 공격받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눈과 귓구멍 주위만 알짱거린다. 여름 내내 살 찌운 듬직한 덩치로도 깨만한 벌레 하나 감당하지 못하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확실히 내쫓으려고 부채로 삼을 만한 것을 찾다가 부러진 잔 나뭇가지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이제 막 영글기 시작한 풋도토리가 달린 상수리 나뭇가지였다. 처음엔 누가 우리처럼 날벌레 쫓으려고 꺾었나 보다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온 사방이 꺾어진 상수리 나뭇가지 투성이었다. 뭐지?



그때부터 온갖 호기심이 일었다. 상수리나무 위치를 보니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마도 청설모 다람쥐가 설익은 도토리 먹으려고? 아님 새가 집 지으려고 그랬나?

그런데 잘린 단면을 살펴보니 칼로 싹둑 자른 듯 아주 깨끗하다. 동물들의 솜씨는 아닌 것 같다. 대체 누구 짓이지?


호기심 대마왕답게 잔가지를 주워들고 와서 검색했다.

아! 범인은 곤충이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알을 낳으려고 가지째로 상수리를 떨어뜨린다는 답변을 찾았다. 그런데 이 벌레가 아주 못된 해충이다. 도토리가 익기도 전에 잘라버리는 통에 가뜩이나 기후 위기로 도토리 열매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더 가속화하고 있다고 한다. 숲 속 동물들에게는 도토리가 쌀인 셈인데 예년에 비해 무려 70% 이상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매우 걱정스럽다. 도토리 부족으로 반달가슴곰의 동면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고,  굶주림을 못 참은 동물들이 마을로 내려오다 로드킬을 당하거나 아사 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알고 나니, 기후 위기를 나중으로 미루며 막연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등산객들을 이용해서 잘린 잔가지를 수거해서 도토리거위벌레 알을 제거하자고 구청 민원실에 글이라도 올려볼까?



* 도토리거위벌레가 자른 상수리 잔가지를 주워와서 그렸다. 연두색 풋도토리에 검은 점이 있는데 거기가 알을 낳은 흔적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린 후,  알이 부화되지 않도록 비닐에 싸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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