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을 닮은 꽃
존 버거의 <벤투의 스케치북>를 읽으며 붓꽃의 당당함을 찬양하는 글과 드로잉 작품을 만났는데, 나도 꼭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당당한 꽃은 없다. 아마도 꽃잎이 벌어지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미 모양이 잡힌 꽃잎, 붓꽃은 마치 책이 펼쳐지듯 벌어진다. 동시에 그 꽃은 가장 작은, 건축적 구조의 본질을 담고 있다. 나는 이스탄불의 술레이만 사원을 떠올린다. 붓꽃은 예언 같다. 놀라우면서 동시에 고요한.” <존 버거, 벤투의 스케치북, p.112>
확실히 붓꽃의 꽃잎은 여느 꽃과 다르다.
총 6개의 꽃잎이 있는데 아래로 3개가 늘어지듯 자라고, 나머지 3개는 수직으로 자란다. 더 재미난 것은 아래로 펼쳐진 꽃잎 3장 위로 꽃잎 닮은 암술대가 삼발이 모양으로 뻗어 있다. 그리고 그 암술대 바로 밑에 수술이 숨어 있다.
이렇게 오묘하게 자라는 붓꽃을 두고, 존 버거는 이스탄불의 술레이만 사원을 떠올렸다 한다. 궁금해서 사진을 찾아보았다.
도대체 붓꽃은 어떤 모습이길래 ‘예언’이라고 했을까?
언뜻 보더라도 돔 모양의 예배당은 꽃잎을, 뾰족한 첨탑은 봉우리를 닮았다. 아라베스크 무늬의 모스크에서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역사와 이슬람교로 이어지는 연상을 하다 보니 ‘예언’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서양에서는 모스크를 닮은 이 꽃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무지개 신 아이리스(iris)의 이름을 붙여줬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꽃봉오리가 검은 먹을 품은 붓을 닮았다고 해서 붓꽃이라 불리운다. 아마 꽃잎이 너무 독특해서 마땅히 붙여줄 이름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었지 않았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뵜다.
존 버거의 표현처럼 ‘예언’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면 어떨까?
실제로 붓꽃은 벌을 유인하기 위해 특별한 꼼수를 쓴다고 알려져 있다. 아래로 벌어진 꽃잎의 시작부분은 벌의 몸통을 닮은 샛노란 색 호피 무늬를 띠고 있다. 벌이 노란 호피 무늬를 꿀벌 친구인 줄 알고 꽃잎 속을 헤집고 들어가면 이불처럼 위를 덮고 있는 암술대 아래에 숨겨진 수술을 만나게 된다.
“노란 길을 따라가라. 그러면 꿀을 얻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