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안 Aug 18. 2022

모작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1만 시간의 재발견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물감 발색표를 그리면서 반다이크 브라운, 로 엄머, 번트 시에나, 크림슨 레이크 등 암호 같은 물감 이름도 배웠고, 색상환표를 그리며 반대쪽 색상은 보색이 된다는 원리도 실습했다. 번지기, 그라데이션과 같은 기초 수채화 기법도 연습했다.


한두 번 모작을 연습한 후 나만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내게는 모름지기 그림을 그린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예술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아무리 초보라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모름지기 나만의 느낌을 담아내는 독창적인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내 마음 같지 않은 결과에 좌절했다. 거듭되는 시행착오를 통해 미숙함을 창의성으로 착각하여 얼버무릴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예술을 지식으로만 접근했던 부끄러운 오만을 반성해야 했다


수채화를 어떻게 배울 것인가?

수많은 그림 유튜버들이 하나같이 초보자의 능력치를 끌어올리는데 가장 빠른 방법은 ‘모작’을 다작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림 강좌 유튜버들이 쉽게 쓱쓱 그리는 것을 보며 나도 쉽게 따라 할 것 같았다. 모작이 생각만큼 잘 안되길래 심지어 유튜버가 사용하는 똑같은 수채화 재료를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강좌 화면을 일시 정지했다가 되돌려 보며 따라 그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똑같은 재료를 갖추고 나니 그래도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강좌 화면을 끄고 비슷한 사진을 골라 직접 그려보면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베끼기만 했지, 원리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따라 하는 모작 방법으로는 내 실력이 되지 않았다. 마치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고 1등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모작은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 것일까?

올바른 연습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1만 시간의 재발견>이란 책을 찾아 읽었다.


흔히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언급하며 꾸준한 노력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그러나 실제 ‘1만 시간의 법칙’ 이론을 창시한 안데르스 에릭슨 박사가 쓴 이 책에 따르면, ‘1만 시간의 법칙’의 핵심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의식적 훈련 방법에 있다고 강조한다.


“꾸준히만 하면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듣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사실 틀린 말이다. ‘올바른 연습’을 충분한 기간에 걸쳐 수행해야 실력이 향상되고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없다.”(p.25)


연습 방법에는 크게 단순한 연습, 목적의식 있는 연습, 의식적인 연습 3가지가 있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그림 연습법을 예시로 들면,


1. 단순한 연습(naive practice) 은 ‘선긋기 100번’ 처럼 단순한 방법으로 기계적으로 횟수를 반복하는 연습법이다. 작년 맨 처음 드로잉을 배울 때 많이 했다. 글씨 쓸 때 익숙했던 연필 쓰는 법을 그림 그리기용으로 바꾸는 데 효과적이었다. 우선 연필 잡는 방법을 엄지와 검지로만 잡는 데 익숙해져야 했고, 손목이 아니라 팔 전체를 이용하여 상하, 대각선을 그을 수 있는 팔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2. 목적의식 있는 연습(purposeful practice) 으로는 ‘손 100개 그리기’ 처럼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표와 방법으로 연습하는 것을 말한다. ‘어려운 손을 익숙하게 그리기’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손 포즈를 거의 한 달 동안 매일 그렸다. 이후 ‘발 100개 그리기’를 하며 15일도 걸리지 않아 목표에 달성했다. 이미 할 줄 알지만 좀 더 잘하고 싶을 때 효과적인 연습이었다. 목표와 실천방법이 구체적일수록 연습 시간이 줄어들고 달성률도 높아진다는 것을 체험했다.


3. 의식적인 연습(deliberate practice)이 바로 전문가가 되기 위한 ‘올바른 연습’이다. 단순 연습과 목적의식 연습을 통해 드로잉 테크닉이 향상되어 손과 발을 그릴 때는 두려움이 없어졌지만, 꽃과 같은 자연물 수채화를 그릴 때는 컴포트 존(*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일정한 범위)에 부딪히는 한계를 만났다. 나는 아직 의식적인 연습을 한 적이 없다.


최근 배우기 시작한 수채화 꽃 그리기 단계에서 흔히 말하는 배움의 ‘교착 상태’에 빠졌다. 저자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은 의식적인 연습이며, 더 열심히 하기’가 아니라 ‘다르게 하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력이 향상되길 바란다면 집중해서 실천하는 ‘단계적 계획 없이’ 같은 행동을 단순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연습법이다. (p.240)”


‘의식적인 연습’의 핵심 목적은 효과적인 심적 표상(*뇌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에 상응하는 심적 구조물)을 개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둑’이라고 했을 때, 각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바둑 이미지가 바로 “심적 표상”이다. 내가 떠올리는 바둑 이미지와 이세돌 바둑기사가 떠올리는 바둑 이미지의 심적 표상이 바로 초보와 전문가를 구별하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효과적인 심적 표상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전문가의 능력을 모방하려 노력하고, 실패하면 실패한 원인을 밝히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p.248)


나는 어떻게 전문가의 그림을 모작할 것인가?

우선 내가 해왔던 연습과정의 문제점을 찾아야 했다. 문제를 안다는 것에는 방법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무도 쉽게 간과한 것이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자각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피드백’ 과정을 통해 어떤 식으로 잘못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고치는 과정을 생략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저 빨리 완성하느라 바쁘기만 했던 것이다.


원인을 찾고 피드백을 하는 과정에서 심적 표상이 민들어진다. 따라서 실패 심적 표상을 쌓는 기회로 바라보는 긍정적인 태도와 반복하는 끈기의 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희망적인 것은 이러한 의식적인 연습 방법은 혼자서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 출처: 그림 유튜버 물고기 아트님의 강좌를 듣고 모작했다. 그라데이션 기법을 충분히 연습한 후 잎사귀의 굴곡 상태에 따른 명암의 차이와 거리에 따른 색상의 차이를 염두에 두며 그려보았다.





이전 14화 망친 그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