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이면 한국을 방문해서 중요한 일도 보고 가족들 친구들과도 시간을 보냈는데 코로나로 3년을 못 갔다. 미국이 괜찮으면, 한국이 심하고 아니면 반대 상황이어서 차일피일 미루다 오랫동안 방문을 못하니 향수병이 심해졌다. 다행히 한국 여행 시 격리도 풀리고 어느 정도 코로나도 안정된 듯 하니 남편과 딸들이 한국행을 권했다. 부랴부랴 짐 싸고 여행사를 하시는 지인께 부탁을 해서 구하기 힘들다는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고 남편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뉴욕을 떠났다
뉴욕 JFK공항
다행히 내 좌석 옆자리가 공석이라 좀 더 편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14시간 반의 비행이었지만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하니 금새 시간이 지나고 한국땅에 착륙한다. 낯익은 태극기와 한국사람이 보이니 왠지 모를 벅찬 감정이 든다. 오랜만의 방문 이어선지, 아님 감정의 풍랑 속에 있어서인지 모든 것이 감격이다.
인천공항 도착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남동생이 요즘 시험기간이라 마중 나올 수 있었다 며 반갑게 맞아준다. 5살 터울의 남동생이지만 자상해서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다. 3년 동안 있었던 일을 서로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친정집 도착이다. 이젠 팔십을 훌쩍 넘기신 엄마가 딸이 온다고 음식을 준비하다가 허리를 다치셔서 꾸부정하신 모습으로 반겨준다. 3년 전보다 몸무게가 5kg 이상 빠지셨지만 다행히 허리 외에는 건강해 보이신다.
짐을 풀고, 뉴욕에서 가져온 선물들을 개봉하고 가족과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울에서의 첫날밤을 보낸다. 같이 있으면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감정들.. 노쇠한 엄마, 가족, 친구들, 스쳐 지났던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또렷이 떠오른다. 일상에 파묻혀 사느라 잊고 지냈던 수많은 기억들이 하나씩 소환되니 모든 것이 소중하고 그립다.
며칠 후, 40년 지기 베프의 깜짝 선물로 함께 떠난 여행은 감동과 힐링 그 자체였다.. 속초행 버스를 타기 위해 친구를 만나러 동서울역으로 가는 길은 한없이 설레었고,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속초에 도착했다. 바닷가가 보이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짐을 풀고 우리는 해변으로 나가 소나무 숲과 바닷가를 걸었다. 해안선을 따라 소나무 숲을 걸으며 맡았던 건강한 솔향기가 몸과 마음이 다 치유되는 거 같다. 모래사장 위에 펼쳐져 있는 조각품들과 조형물들도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속초바닷가의 조형물과 소나무숲
우린 밤빛 바닷가를 거닐며 끝도 없이 나오는 이야기를 나눴다. 산책 나온 연인, 친구,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덤으로 구경하며 속초해변의 밤을 즐겼다. 조금 지나니 배가 출출해져 속초종합시장으로 텍시를 타고 이동해서 푸짐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속초해변에서의 야경
10대 때부터 우린 서교동 이웃집에 살며, 고등학교와 대학도 같은 학교를 다녔다. 늘 통학을 같이 했던 친구라 서로에게 비밀이 없다.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우리는 잊고 지냈던 오래된 책장 서랍의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우리가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고,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나누며 밤새 울고 웃었다. 풋풋했던 시절을 보내고 세월이 흘러 이젠 서로 장성한 자식들이 있지만 감성만은 우리가 처음 만난 그대로이다.
박우현 시인은 "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그때는 아름답다, 다만 그대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라고 말했다. 처음 만나는 낯선 나이 앞에서 오래된 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가장 의미 있고 인생의 절정기란 생각이 든다. 곧 다시 떠날 짧은 한국 여행이어서, 그립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보내는 모든 순간이 애틋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