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카드 만들어 봐요
2월 14일은 발렌타인 데이이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에게 선물을 하는 데 반해 미국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반 전체의 친구들에게 구디백에 과자나 초코릿을 넣어 선물하는 전통이 있다. 집에서 정성스럽게 만든 쿠키나 머핀을 보내기도 하고, 먹는 것이 아니더라도 학용품이나 장난감으로 그들의 마음을 전한다. 어른들은 고마운 이웃이나 친구, 동료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담아 꽃이나 케이크를 카드와 함께 주고받는다.
올해도 발렌타인 카드를 지인에게 보내기 위해 어떤 컨셉으로 만들지를 연구했다. 얼마 전부터 정원 꽃을 이용한 소품을 만들고 있어서 말려둔 꽃을 이용하기로 하고 식물 작업실을 살펴봤다. 작업실은 지난해에 남편이 정원 나가는 쪽에 자그마하게 만들어줬는데 요즘 같은 겨울에는 쓸모가 많다. 가드닝하는 아내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편도 목공을 취미로 하게 되면서 솜씨가 조금씩 늘어 이젠 이런 공간도 그럴듯 하게 만들어 준다.
우선, 카드를 만들기 위해 여러 디자인을 해봤다. 꽃을 이용하면 봉투가 안 닫아 질 거 같아 꽃잎을 사용하기로 했다. 말린 여러 꽃 중에서 꽃잎이 예쁜 진분홍 장미.연분홍 잠미, 수국, 데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꽃잎과 함께 사용할 꽃잎 부스러기도 준비했다. 소품 만드는데 요긴하게 쓰여서 마지막 부스러기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작은 통에 넣어서 모아 놓는다.
이제 디자인과 꽃이 정해졌으니 종이를 가지고 직접 그리면 된다. 조그만 하트와 카드로 쓸 종이도 연필로 그려서 재단했다. 미술은 학교 다닐때 외엔 배워본 적이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내가 아티스트가 된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젠 하트에 꽃 잎을 붙일 차례다. 가장자리에 빙 둘러 글루건으로 붙여주었다. 하트 꽃 잎이 생각보다 사랑스럽고 예뻤다. 작업대 위에서 서서 하나씩 꼼꼼히 붙여주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려 슬슬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몸이 힘드니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또 든다.
하지만 이젠 해결점을 안다. 그래 지금은 쉴 때다! 난 바로 딸이 사준 커피머신에 가서 라떼커피를 만들어 마시며 음악을 듣고 숨을 고른후 다시 마무리 작업을 했다. 꽃 잎 테두리 안에는 작은 부스러기들을 소복하게 뿌리고 조금 심심한 느낌이 들어서 진주 테이프를 군데군데 붙여주었다.
이젠 마지막 단계인 하트를 재단해 놓은 카드 종이에 붙여주면 된다. 네 종류의 꽃잎 카드를 만들었는데 각기 분위기는 다르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난 인스타 피드에 올리기 위해 말린 꽃과 함께 사진을 찍고 기록했다.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빈티지 연핑크 장미는 마치 약혼을 앞둔 새색시 같다. 여리여리한 분위기가 너무 예뻐서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내려고 진주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할 거 같아 여러개를 준비했다.
진 핑크 장미는 성숙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같은 장미라도 색에 따라 이렇게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강렬해서 반짝이 스티커로 화려함을 더해 주었다. 어쩌면 사랑을 주고받는 발렌타인과 가장 잘 맞을 거 같아 여러 개의 카드를 만들었다.
샤스타데이지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정원을 환하게 해주는 또랑또랑 한 꽃인데 말리면 전혀 다른 빈티지한 느낌이 난다. 한참 일 떄의 데이지도 예쁘지만, 제 멋대로 말려진 꽃잎도 분위기 있어서 좋다. 데이지 카드에는 좀 더 고급스러워 보이려고 진주를 붙여 주었다.
수국은 정원에서도 오래 피는 효자 식물이고 말려도 아주 쓰임새가 많다. 수국은 보라 연두 갈색 등 다양하게 말릴수가 있어서 용도별로 사용이 가능한 꽃이기도 하다. 난 수국의 우아함을 위해 진주 를 더 해줬다.
미국에 처음 왔을때 발렌타인데이에 카드 전용 가게에 가면 예쁜 카드가 너무 많았다. 넋 빼놓고 구경하면서도 별로 구입한 기억은 없다. "나도 이렇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란 뜬금없는 자신감이 있어서 돈 주고 사는 게 아까웠기 때문이다. 지인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오랫동안 학원을 경영 하면서도 학생들이나 학부모에게 보내는 카드는 직접 만들어 보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취미도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나의 생활 속에서 조금씩 키워져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해마다 별생각 없이 만들었던 카드가 시간이 지나 노하우가 쌓이면서 이젠 즐길 수 있고 나눔을 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었으니 이조차도 감사하다. 카드 만들기를 끝내고 나니 밖은 어둑어둑해졌다. this is life 란 사인판의 글귀를 보며 뭔지 모를 충만감에 기분 좋은 저녁을 맞이한다.
말린꽃으로 재활용한 화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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