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가드너 Feb 25. 2023

88세 엄마의 자서전

한국과 미국에서 3대가 함께 만든 엄마의 자서전 


시원섭섭하다. 지난 6개월 동안 품고 다녔던 엄마의 자서전인 "돌아보니 은혜와 사랑 인것을.."의 마무리 작업이 끝나고 책을 출판하기 위해 내 손을 떠났기 때문이다.


마지막 퇴고를 끝내고


작년 여름,

엄마 생신에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해드리고 싶었다. 좋은 옷과 가방도 필요 없으시다고 하고 맛있는 음식도 소화를 제대로 못 하시니 적당치가 않았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단 말을 가끔 하신 게 생각 나서 넌지시 여쭤봤다. 엄마도 처음엔 글쎄, 자신 없는데....하시더니 딸과 내가 같이 참여 해서 도와 드린다고 하자  며칠 지난 후 한 번 해보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도 엄마의 수많은 사진첩을 정리해 드린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사진을 정리하며 엄마의 일생을 볼 수 있었는데 글로 기록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해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작년 8월에 엄마의 자서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혼자 조용히 하면 하다가 말 것 같아서 시작하면서 프로젝트 이름도 정하고 인스타에도 인증사진을 올렸다. 중간에 의지박약으로 멈추게 될까 봐 지인들과 가족들에게도 엄마의 자서전을 쓰고 있다고 미리 말을 했다. 실제로 이 방법은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응원해 주고 관심 가져 주는 사람들 덕에 힘들거나 포기하고 싶을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기 문이다.     

 

프로젝트 시작 인증


우선, 엄마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20주제로 정리해서 매주 한편씩 쓰기로 했다. 엄마와 딸 그리고 나는 자서전만을 위한 단톡방을 만들었고, 엄마에게 생각나는 데로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딸이 엄마가 보내주신 내용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서 보내주면 나는 조각조각의 이야기를 퍼즐처럼 맞춰서 하나의 글로 완성했다. 다 쓴 글은 일주일에 한번 줌에서 만나 리뷰를 했다. 신기하게도 엄마는 오래전 이야기를 소소한 것까지 다 생각해 내셨다. " 아니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세요 ?" 하면 엄마도 "신기하다"면서 "하나님께서  기억의 저편에 있었던 일들을 우치게 해주시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카톡으로 보내주신 내용들


물론 순탄한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엄마가 아픈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 시절이 다시 생각나 몸과 마음이 힘들어 편찮으시기도 하셨고, 내가 내용을 많이 줄인다고 불평도 자주 하셨다. 나도 그럴 때마다 꼭 안 해도 되는 것을 왜 시작했지? 하는 후회도 했고 1주일에 한 주제를 완성해야 하자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행을 가도 글을 위한 컴퓨터를 가지고 가야 했고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글을 쓰다 보니 몸과 마음도 한없이 지쳐갔다.  


그러나 엄마의 함께 과거를 돌아봄은 이런 힘듦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감사의 시간이었다. 여느 부모님처럼 엄마도 식이 원하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신다고 늘 말씀하셨다. 도 뒤도 안보고 오직 자식들만 바라보시는 과잉 사랑을 오랜시간 부담스러워 했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아픈 과거를 나누며 많은 부분 이해했다.     


88세인 엄마에게도 빛나는 청춘과 젊은 시절이 있었고, 시부모님의 사랑 받으며 남편, 그리고 삼남매를 키우며 행복하고 단란한 시절이 있었다. 또 여러 견디기 힘든 일들도 지나셨다. 엄마가 자서전을 거의 마무리 할 무렵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축복된 삶을 살았지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라고... 나는 엄마가 옛날로 돌아가 다시 살더라도 그때만큼 치열하게 살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어느 정도 지금의 인생을 만족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나는 이번에 자서전을 기획하고 글로 정리하며  엄마가 과거를 만나며 "이런 날도 있었네" 하며 잠시나마 행복해하시길 바랬다. 그리고 남들이 겪지 않았던 마음 아픈 기억도 잠시 접어두고 글로 위로받으시길 소원했다. 또한 많은 축복을 받으신 노쇠한 엄마가 선한 능력으로 앞으로의 삶을 사시길 기대했다. 나의 바람대로 엄마는 과거의 여정을 돌아보며 즐거워도 하셨고 또 설움에 복받쳐 우시기도 하셨다. 엄마가 글을 쓰며 얼마나 치유되셨을지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확신은 든다. 자식으로서 엄마 살아생전에 이런 선물을 드릴수 있음이 감사하고, 받은 사랑을 조금은 돌려 드린것 같아 홀가분하다. 나와 함께 자서전쓰기를 도왔던 딸의 에필로그처럼 엄마가 남은 여생도 환하게 빛난 삶을 사시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할머니께서 서문에서 표현하신 "빛바랜" 서랍 속에서 꺼내신 이야기는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고 놀랄 정도로 섬세하다. 아주 소소한 디테일까지도 기억 하시고, 아름답게 풀어내시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빛바랜 이야기가 아닌 지금, 여기서도 환하게 빛난 이야기다. GRACE YOO




PS: 

처음 시작하는 작업에 일과삶 작가님께서 많은 부분 도와주시고 전체적인 글 코칭을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https://brunch.co.kr/@happygardener/12


매거진의 이전글 어서와, 칸쿤은 처음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