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건넨 위로가 내게 돌아온 날
새해 첫 일요일 오후였다. 해마다 1월에는 하루에 한곳씩 집 안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 느긋하게 작업실을 치우던 중이었다. 그때 평화로운 정적을 깨고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딸의 이름. 받기도 전에 혼잣말이 나왔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몇 달 전부터 기다리던 큰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어 눈을 반짝이던 딸이었다. 의욕이 넘치다 못해 스스로를 다 태워버릴 듯 몰두하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했다. '번아웃 되니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여러 번 하고 싶었지만, 찬물을 끼얹는 잔소리가 될까 싶어 꾹 참고 지켜보던 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딸의 목소리는 예상대로 축 처져 있었다.
"엄마, 너무 힘들어"
그사이 애쓰던 시간이 둑 터진 강물처럼 쏟아졌다. 밤을 새워 연구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애쓴 결과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회의감까지 든다는 것. 나는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평소엔 나의 온갖 투정을 받아주는 아이인데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줄까 싶어서였다. 한참 이야기를 쏟아내던 딸의 호흡이 조금 진정된 듯 보여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도 그럴 때가 많았어. 일단 책상 위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서 좀 걸어봐. 문제가 풀리지 않거나 생각에 체했을 때 가장 좋은 약은 몸을 움직이는 거야.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일단 밖으로 나가 땅에 발을 내디뎌 봐. 그러면 신기하게도 나를 짓누르던 고민의 무게가 한 걸음마다 조금씩 흩어지더라.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좋으니 온전히 자신의 숨소리에만 집중하며 걷거나 뛰어봐. 정신의 건강은 결국 발바닥으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일의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을 분명히 정해. 할 일 목록을 적되,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한 일은 미련 없이 내일의 너에게 맡겨. 혹시 너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는 불안감 때문에 밤늦도록 노트북 앞을 지키고 있는 건 아니야? 엄마도 그랬거든. 타이머를 활용해 일의 밀도를 높이고, 시간이 되면 과감하게 끊어봐. 밤새 붙들고 있어도 결과는 비슷하더라. 집중해서 시간을 보내고도 못 한일은 그저 다음에 하면 되는 일일 뿐이야."
"마지막으로 완벽하게 시작하려고 애쓰지 마. 예전에 교육 사업을 할 때, 새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몇 달을 보낸적이 있어. 커리큘럼부터 교재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고 믿었거든. 근데 그러는 동안 경쟁사는 이미 시장을 선점해 버렸더라. 그때 깨달았어. 100%의 준비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어느 정도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면 일단 첫발을 내디뎌야 해. 그래야 조금씩 방향을 수정해 나갈 수 있으니까 말야. 완벽주의라는 덫에 걸려 제자리에 서 있는 것보다, 조금 서툴더라도 나아가는 게 훨씬 용기 있는 일이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봐."
딸은 한참 동안 조용히 듣더니 "그래, 엄마. 고마워. 다시 해볼게."라고 했다. 목소리가 처음보다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조용해진 작업실 의자에 앉았다. 딸에게 즉흥적으로 건넨 말들이 오히려 나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와 박혔다. 딸이라는 거울을 통해 비친 내 모습 또한 여전히 서툴고 조급해 보여서다.
더 많이 걷고, 제때 멈추고, 서툴게 시작하기. 이는 올 한 해를 시작하며 나 자신에게도 필요한 다짐들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의욕이 넘쳐 스스로를 몰아세우지는 않았는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시작도 하기 전에 조바심부터 내지는 않았는지. 딸과의 대화를 다이어리에 적으며 생각했다.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돌아본다는 것을. 아 참, 신발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가 일단 걸어야겠다.
PS 독자님들!
한 해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