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여러분, 장기간 비행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곧 비행기는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안전벨트 하시고 돌아다니지 말아 주십시오."
비행기가 인천 상공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들리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다. 수백 명이 탑승한 비행기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가 동시에 침을 삼키고 있는 듯하다. 이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안전벨트를 조이며 기체가 활주로에 부드럽게 안착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이 짧고도 강렬한 멈춤. 그것은 내 생애 가장 길게 느껴졌던 어느 1분을 선명하게 소환했다.
대학 4학년때였다. 딸이 음악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셨던 아버지는 연주회를 불과 두 달 앞두고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영원히 나를 지켜주실 줄만 알았는데. 슬픔을 애도할 틈도 없이 매일 피아노 앞에 앉았다. 건반 위로 눈물이 떨어져도 연습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연주회 당일, 중강당의 무거운 나무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졸업 연주회는 가족과 소수의 친구만 모이는 조촐한 자리이다. 그러나 그날의 객석은 아버지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며 일부러 와주신 친척과 지인들로 빈틈없이 꽉 차 있었다. 관객석을 가득 메운 그들의 눈빛에는 안쓰러움과 응원이 뒤섞여 있었다. 작은아버지 절친이신 음악 평론가와 남동생 친구들도 정장을 하고 일렬로 앉아 있었다. 그 따뜻한 시선들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기증이 나도록 떨렸다. 피하고만 싶었다.
음악회가 시작되자 나는 까만 롱스커트에 흰 블라우스를 입고 무대 중앙으로 끌려가듯이 나가 인사를 했다. 쏟아지는 박수 소리가 멈추자 휴! 심호흡하며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긴장한 마음을 다스리는 1분 남짓한 순간. 그 정적 속에서 아버지의 인자했던 미소가 거짓말처럼 건반 위로 스쳐 지나갔다. 평소처럼 내 어깨를 다독이며 "우리 딸, 괜찮다. 잘할 거다"라고 말하시는 듯했다. 그 순간 미칠 듯이 뛰던 심장이 평온을 되찾았다.
분명 그 덕분이었을 거다. 나는 쇼팽 스케르초 2번의 감미롭고도 대담한 첫 음을 자신 있게 낼 수 있었다. 질풍노도처럼 몰아치는 곡의 흐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았다. 무사히 연주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와서 깨달았다. 그 짧은 1분이 얼마나 깊고 넓은 위로였는지를.
오래전 과거를 소환하다 보니 어느덧 창밖으로 고국의 다정한 불빛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안전하게 게이트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오고 '딸깍'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안전벨트 풀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있는 듯 일사불란하게 짐을 챙기며 일어선다. 긴 여정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설렘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나는 잠시 더 자리에 머물며 내 안의 고요를 음미한다. 시속 900km라는 거대한 속도로 달려온 후의 숨 고르기랄까.
생각해 보면 삶에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몸의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허망하게 떠나보내야 했던 날, 도무지 넘지 못할 것 같은 도전 앞에 웅크러지던 밤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짧은 침묵 속에서 나는 다시 중심을 찾곤 했다. 인생이라는 긴 비행을 하며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그 잠깐의 고요 안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위로가 있었다는 것을. 40여 년 전, 건반 위를 스치던 아버지의 미소가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