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정리를 하지 못한 가구가 있었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무려 30여 년을 함께 해온 소파다. 그동안 몇 번이나 교체하려고 했지만 막상 구입하려고 하면 미국 소파는 너무 커서 불편했다. 덩치 큰 미국인에 맞췄으니 그럴 수밖에. 무엇보다 헌 소파를 버리고 옮기는 과정이 번거로워 차일피일 미루던 중이었다. 하지만 더는 버티기 어려웠다. 하얀 천은 너덜너덜해졌고 등받이와 쿠션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푹 꺼져서다. 결국 새 소파를 들이기로 하고 겸사겸사 대청소를 시작했다.
거실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소파를 바라보니 머리부터 아파졌다. 분리해서 집 앞에 수거하기 쉽게 두어야 하는데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곧 새 소파가 들어오니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비장한 각오로 목장갑을 끼고 소파의 쿠션을 힘껏 들어 올렸다. 쿠션 사이사이에서 세월의 잔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동전 몇 개, 짝 잃은 양말, 강아지 사료 알갱이들이 먼지와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매일 청소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끼어있는 걸까. 그 사이에서 오래된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소파를 사면서 잃어버릴까봐 바닥에 붙여좋은 영수증이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보자마자 누렇게 바랜 종이 위로 오래전 그날의 설렘이 떠올랐다.
이 하얀 소파는 처음 집을 장만했을 때 구입한 '거실의 주인공'이었다. 당시 나는 마음에 드는 소파를 찾겠다고 주말마다 발품을 팔았다. 유명 브랜드와 고급 가구점도 가보았지만 비싸고 거창해서 우리 집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우연히 방배동의 작은 인테리어 숍을 구경하러 갔다가 운명처럼 이 녀석을 만났다. 단정한 하얀 쿠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침 사장님이 가구 공장까지 운영하고 계셔서 '공장도 가격'으로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30년 전에만 해도 하얀 소파는 대중적이지 않았다. 친구들도 실용적이지 않다며 나를 말렸다. "아이 키우는 집에서 하얀색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냐"는 걱정 섞인 참견들도 이어졌고. 하지만 나는 "커버를 벗겨서 세탁할 수 있으니 괜찮다"며 당당히 선택했다.
마침내 하얀 소파가 우리 집 거실에 들어온 날. 그 모습이 어찌나 깔끔하고 럭셔리하던지. 나의 꿈과 핑크빛 미래까지 가득 담겨 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함께한 소파 위에서 아이들이 자랐고,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손님을 맞이했으며 잠시 눈을 붙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미국으로 이주를 결정했을 때도 나는 이 소파만큼은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결국 선박 이삿짐 컨테이너에 실려 태평양을 건너왔다. 낯선 타국 땅에서도 소파는 변함없이 우리 가족의 고단함을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이젠 그 소파가 내 앞에 누워있다. 예전처럼 반듯하고 눈부신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다 보니 더 이상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가족을 묵묵히 지켜준 감사의 훈장처럼 여겨졌달까. 소파를 수거하는 곳으로 내보내며 나는 오래된 친구에게 하듯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목장갑을 벗고 창문을 열자, 3월의 바람이 상큼하게 불어온다. 지끈거리던 머리도 어느새 맑아져 있었다. 마지못해 시작한 청소를 아름다운 추억 여행으로 마무리해 준 소파. 너는 마지막까지 제 몫을 다하고 가는구나. 자, 이제 은퇴식은 끝났으니 멋지게 보내줄게. 가서 푹 쉬렴! 덕분에 하기 싫은 숙제를 아주 개운하게 끝냈단다.
이제 빈자리에는 새로운 소파가 놓일 것이다. 30년 전 방배동에서 하얀 소파를 만났을 때처럼 다시 한번 설렘을 꿈꿔본다. 굿바이, 나의 하얀 소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