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 피아노과 지도교수님은 연주를 앞둔 연습은 실제 연주하는 것처럼 집중하라고 늘 강조하셨다. 실제와 똑같은 시간, 의상, 관객이 있다고 생각 하면서 혹여 있을 수 있는 실수를 미리 대비하라는 거였다. 그리고 실제 연주에선연습하는 것처럼 편하게 하라고 하셨다. 그 후 내가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도 그런 마음가짐을 많이 강조했다. 몸에 밴 이런 습관 덕에 처음 해본 프리젠테이션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4월 말에 글쓰기 모임인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나찾글)의 대표이신 일과삶 작가님께서 연락이 왔다.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책의 출간기념으로 "나를 찾는 시간"(나찾시)를 기획하고 계신다고 했다. 나찾글 수료생 중 몇분을 초대하는데 의향을 물어보셨다. 호기심과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들어 며칠 생각해 본다고 말씀드렸다. 남편과 딸에게 물어보니 좋은 경험이니 도전해 보라고 격려해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기로 했다.
막상 원고를 준비하는데 "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지?"부터 시작해서 SNS에 얼굴 공개해야 하는 현실적 부담감까지 생겼다. 젊은 사람도 많은데 나이 든 내가 실수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오만가지 걱정으로 원고가 써지지도 않았다. 한편으론 내가 누군가? 3년째 줌으로 북클럽 리더를 하고 있고 동아리 회장을 3년에 걸쳐서 했으며 수많은 무대 경험이 있음을 스스로 상기시켰다. 자기최면을 걸으며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를 반복하며 용기를 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뀌자 15분 동안 읽을 원고가 금세 정리되었다. 주제는 "일상을 콘텐츠로 바꾸는 글쓰기의 힘"으로 하고 나의 일상을 콘텐츠로 만들어 가는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슬라이드 8개는 그동안 정리해 놓은 사진들이 많아 쉽게 만들 수 있었다.
프리젠테이션 커버
원고가 정리되자 프린트해서 낭독 연습을 시작했다. 혀가 꼬이고 목소리가 잘 안 나와 당황스러웠다. 매끄럽게 읽어지지 않아 예정 시간 보다많이 초과됐다. 남편이 옆에서 답답한지 100번 정도 연습하면 잘 읽을 거란다. 그러면서 설교 잘하기로 유명한 세계적 부흥사 빌리그레함 목사님 이야기를 했다. 설교 연습을 어찌나 많이 했는지 동네 사람들이 시끄러워 이사 가라고 할 정도였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초짜인 나도 100번 정도 읽으면 잘할 수 있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다. 강의와 설교가 부실한 건 연습이 제대로 안 되서라나 뭐라나. 암튼 나찾시 광고 포스터가 나온 시점부터 하루 5번씩 표를 해가면서 읽고 또 읽었다.
리허설 날이 왔다. 한국은 밤 9시지만 뉴욕은 오전 8시였다. 연습을 실전처럼 하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단장을 하고 2년 전에 구입한 산뜻한 빨간 블라우스를 입었다. 포스터에 모자 쓰고 있는 사진이 나와 이번에도 예쁜 모자를 쓰기로 했다. 미리 준비해 놓은 원고를 몇 번 반복해서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무사히 리허설이 끝나고 실전까지는 1주일이란 시간이 남았다.
계속해서 연습하자 이젠 읽는 시간이 빨라진 대신 급해졌다. 여유가 생기니 나도 모르게 즉흥적인 멘트도 하면서 내용이 삼천포로 빠져 수습이 안 되기도 했다. 그러자 이번엔 경험 많은 딸이 말한다. "엄마, 15분 이하의 프리젠테이션은 원고대로 하면 되니까 그냥 보고 읽으세요." 원고 없이 하면 본론 들어가기 전에 사설 풀다가 15분 다 쓴다고 충고했다. 어쨌든 100번까진 못 했지만, 50번쯤 연습을 하자 좀 자신감이 생겼다. 실전 하루 전날 밤에는 뉴욕과 한국의 시차가 헷갈릴까 봐 시간 세팅까지 몇 번 점검했다.
드디어 실전날...
아침인 데다 연습을 많이 한 탓인지 목소리가 약간 갈라졌다.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줌을 켰다. 라이브15분전에 연사들끼리 모여 간단한 인사를 하고 제시간이 되자 줌으로 모르는 분들이 한두 분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나를 믿으며 편하게 즐기면서 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른 연사분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 듣고 내 순서가 되자 신기하게 하나도 떨리지 않고 차분하게 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하고 감사 인사를 나누니 새로운 도전을 무사히 끝냄에 뭔지 모를 뿌듯함까지 느껴졌다.
프리젠테이션 마지막인사
난 이틀에 한 번씩 올리는 인스타도 미리 연습 계정에서 실제와 똑같은 순서로 해본다. 전체적인 피드의 느낌이나 내용이 겹치지 않고 조화롭게 보이기 위한 나름 마지막 연습인 셈이다. 내 피드를 보며 스스로 즐기기 위함이기도 하고, 팔로워에게는 최선의 글과 사진을 보이고 싶은 감사 표시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이루어 가는 크고 작은 성취도 보이지 않은 수많은연습 후의 결과일 것이다. 한 번의 경험으로 앞으로의 모든 도전을 자신 있게 결론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진심을 다해 실전처럼 연습을 한 후에야 비로소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은 다시금 깨닫는다.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남편과 석양빛 정원에서 뒷이야기를 나누며 첫 프리젠테이션을 소박하게 자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