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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가드너 Jul 22. 2023

당신의 하루는 어떠신가요?

일단, 집을 나섰다.

은퇴하면 시간이 많아져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여행도 자주 다닐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자기계발 한다고 일할 때보다 더 바쁘다. 집안일 외에도 글쓰기, 인스타, 정원 돌보기 등 매일 해야 할 과제를 하느라 느긋하게 쉬어 본 지도 오래됐다. 조금씩 지쳐갈 무렵, 어린 시절 아버지 손잡고 산책 다녔던 내 고향 항구가 생각났다. 바다 내음과 갈매기가 꺼억 거리던.. 남편에게 무턱대고 작은 항구에 가고 싶다고 했다.  


구글을 찾아보니 우리가 사는 곳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작은 항구인 Cold Spring Harbor가 있다고 나와 있었다. 우린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뽑고 얼음을 가득 채운 후 집을 나섰다. 고속도로보다는 마을 구경을 하면서 갈 수 있는 로컬 길을 택했다. 잘 못 가면 그냥 돌아온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처음 가보는 길을 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길 한쪽에는 신록이 가득하고 드문드문 예쁜 꽃을 심어 놓은 물도 있었다.

 



부부도 오래 살면 닮는다고 했던가. 젊었을 땐 말 안 하는 남편이 답답해 대답하지 않을 줄 알면서도 "이야기 좀 해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도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런대 재밌는건, 결혼생활이 오래되면서 남편의 말 없는 상황이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젠 이심전심으로 통한다고나 할까 ? 아니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포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우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여전히 별 대화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먼저 작은 항구에 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진 않았다. 바다내음이 어릴 적 맡았던 바로 그 냄새였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세월과 장소가 바뀌어도 자연은 변하지 않음이 신기하다. 바다엔 개인소유로 보이는 배가 뜨문뜨문 정박해 있었는데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작은 선착장도 있고 배를 타고 있는 사람도 간간히 보였다. 너무 평화롭게 보여 마치 시간이 과거로 되돌아간 듯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한참 바다 멍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점심을 먹기 위해 마을로 들어갔다.           



좁고 길지 않은 마을 중심가로 들어서자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모든 가게가 동화마을에 온 것처럼 깔끔하고 예뻤다. 거리 곳곳에 꽃과 나무가 있고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 있어 언제든지 쉬었다 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예쁜 수제 장식용품을 파는 가게에 들렸는데 가게주인 할머니가 아주 친절했다. 내가 입고 있었던 하얀색 블라우스가 참 잘 어울린다는 입에 발린 칭찬부터 시작해 날씨, 이곳 마을역사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으로 예쁜 에코백을 하나 샀다.   

    


 길거리 구경을 하는 사이 배가 고파졌다. 작은 마을이라 음식점이 별로 많지는 않았다. 인터넷 리뷰가 좋은 곳은 하필 그날이 휴무 날이었다. 대신 집처럼 생기고 예쁜 조각상이 있는 베이커리 카페가 보이길래 일단 들어갔다. 내부도 아기자기하게 예쁘고 소품도 팔고 있었다. 실내와 실외에서 다 먹을 수 있게 되어있어 우린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가 다양하진 않아 크로와상과 마차라떼, 그리고 오트밀 쿠키를 주문했다. 갓 구워 나온데다 시장 해서인지 아주 맛있었다.    




우리는 각자 주어진 하루 ‘오늘’을 살아간다. 나이에 맞는 수행과제를 하며 치열한 삶을 산다. 돌아볼 여유 없이 날마다 습관처럼 살아간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현실적인 일의 순서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 바뀔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뭔가 해야만 하는 불안감으로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것에 집중한다. 조금이라도 한가하면 시간낭비나 하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들볶는다.  


집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해서 항구와 마을을 보고 집에 들어온 시각은 대략 오후 4시였다. 불과 6시간 동안 여유 있는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온 셈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너무 애쓰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봤다. 만약 내가 곧 세상을 떠난다면, 내가 이룬 결과물보다는 작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자주 못 가졌음을 후회할  하다. 자기 계발을 한다고 뭔가를 열심히 하지만, 그러느라 소소한 행복은 놓치고 있진 않는지.. 다시금 삶을 정비해 볼 수 있었던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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