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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여기 있는 아이들은 자기 기대치가 낮아

영국 A레벨모의고사를 보고 있는 딸과의 대화

by 해피걸


타이틀: 엄마, 여기 있는 아이들은 자기 기대치가 낮아.
부제: 영국 A레벨 모의고사를 보고 있는 딸과의 대화

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힘이 빠진 듯, 책가방을 거실 소파에 내려놓고 털썩 앉았다.

오늘도 수업 시간에 떠들고 공부하지 않은 중학생들이 문제였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들을 붙잡고 가르치려고 애썼지만, 결국 지쳐가셨다. 딸은 그런 환경 속에서 온 힘을 다 써버린 듯 보였다.


딸이 다니는 공립학교는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생들이 함께 다니는 곳이다. 선생님들은 중1부터 고3까지 학생들을 과목별로 가르치기 때문에, 종종 녹초가 되곤 하신다고 한다. 공부하려 하지 않는 학생들을 붙잡아 가르치면서 동시에 고2와 고3을 지도해야 하니, 그만큼 고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학교는 고3 학생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국 대학 입학에 필요한 A레벨 모의고사 기간에 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예민한 상태다.

한국에서는 여러 번 모의고사를 보는데, 나는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우리 딸은 괜찮을까?" 불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딸은 잠시 소파에 앉아있다가, 문득 말을 꺼냈다.


"엄마, 여기 있는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

"제주도 학교는 그렇지 않잖아."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곳은 부모님들이 다르잖아. 거기서 공부하는 애들은 더 똑똑하고."

하지만 딸은 고개를 저으며 말았다.
"엄마, 그건 아니야. 여기 애들도 충분히 똑똑해. 문제는 공부를 하지 않으려는 거야.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려고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기준이 너무 낮아. 왜 그런지 모르겠어."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게 혹시 가정환경 때문 아닐까?"
"그건 아니야. 가정환경이라기보다는 그냥 게으른 거야. '아, 몰라. 안 해.' 그런 태도 같아. 해보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으려 해."

딸은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었다.


"힘들어? 중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들지?"
"응. 고2, 고3은 그래도 대학에 가고 싶어서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중학생들은 아예 공부를 안 하고 소리만 질러. 수업 시간에도 방해가 돼서, 때로는 그 애들만 따로 빼서 옆 반에 모아두기도 해. 너무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돼."


그 말에 나는 잠시 궁금해져 다시 물었다.
"시험 볼 때도 그렇게 시끄러워?"
"시험 볼 때는 복도 끝 방으로 따로 빼두시긴 하는데, 그 소리가 다 들려서 진짜 힘들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아쉬운 마음에 한마디 했다.


"그러게, 차라리 입시 전문학교에 갔으면 좋았을 걸."
그런데 딸은 갑자기 화가 난 듯 쏘아붙였다.
"엄마! 그 말이 아니잖아!"
"이미 결정을 했잖아.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데 그런 말을 왜 해?"
딸은 짜증스러웠는지 "엄마랑 말 안 해!"라며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나는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괜히 딸을 기분 나쁘게 만든 걸까?"
가슴이 답답해졌다. 고3 대입 시험이 끝날 때까지 입 다물고 조용히 있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잘 안 된다.

딸이 다니는 공립학교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국 대학 입학에 필요한 A레벨 모의고사를 보고 있다. 반면, Ly의 딸이 다니는 사립학교는 이미 1월 말까지 거의 모든 진도를 마쳤고, 모의고사도 일찍 시작했다고 한다. 사립학교답게 진도를 빠르게 끝내고, 대입 준비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것 같다.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에 비해 준비가 철저하다. 비싼 학비를 내는 만큼, 그에 걸맞은 교육을 제공하고 영국 대학 입시에 철저히 대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Ly가 안부 전화를 하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딸이 다니는 학교는 아직 진도가 다 나가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딸에게 물었고, 딸은 "엄마는 신경 쓸 필요 없다"라며 말을 돌렸다. 사실, 내가 신경 쓴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우리 형편에 사립학교를 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입시 전문 2년제 고등학교에는 보낼 수 있었다. 이미 그곳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 그 고등학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뽑는 경쟁이 치열한 학교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매우 유명한 곳이다.


작년에 토모코의 아들이 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 학교는 중류층 이상의 교육열을 가진 부모들이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애쓰는 곳이다. 사실, 딸도 그곳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딸은 꼭 역사를 배우겠다고 고집했다. 영국 A레벨은 보통 3과목만 선택하면 되는데, 딸은 법학을 공부하려면 역사가 필수라고 생각해서 4과목을 꼭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 학교에서는 딸이 원하는 4과목을 시간표에 맞춰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4과목을 들을 수는 있지만, 역사 과목 대신 다른 과목으로만 시간표를 짤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딸은 역사를 배우기 위해 지금의 학교에 입학하겠다고 결정했다.

남편과 나는 딸의 결정을 존중해야만 했다. 결국 딸의 인생이니까.

이 학교는 영국의 저소득층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일반 공립학교다.


그렇다 보니, 다른 학교에 비해 학생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가 낮고, 공부에 대한 열의도 덜한 분위기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된 뒤, 나는 대입 시험 준비로 1년 6개월 동안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고3 엄마로서,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더 고되다.

빨리 고3이 끝나고, 딸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가끔은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를 딸에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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