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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앞에서

by 해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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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9시. 딸은 샤워를 마치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2층에서 허겁지겁 뛰어 내려왔다.

“엄마, 나린이가 집에서 쫓겨났대.”

“뭐? 무슨 말이야? 오늘이 생일이잖아! 무슨 일인데?”

“자세히는 모르겠어… 윤지가 지금 밖에서 나린 이를 데리고 오는 중인데, 혼자 위로하기 힘들 것 같아서… 잠깐 차를 세우고 이야기 좀 하려고.”

“날도 추운데, 왜 차 안에서 이야기해? 그냥 집으로 들어오지?”

“아… 그냥… 몰라.”


곧이어 윤지의 차가 앞마당에 도착했고, 딸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중고차 안에서 세 사람은 엔진을 켜둔 채(추웠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눴다.

한참 동안 깊은 대화를 나눴다.

오래된 중고차에서는 희미한 배기가스 냄새가 퍼졌고, 차는 여전히 헤드라이트를 켜둔 채 공회전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20분이 지나갔다.

나는 결국 밖으로 나가 말했다. “이제 그만 들어와서 이야기해. 추워.”


그러자 그들은 거실보다는 딸아이의 방이 더 좋겠다며 2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마치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고,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쳤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례를 상담하고 복지 지원을 연계해 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문제는 너무도 가까운 사람과 연관되어 있었다.


보통 낯선 사람의 문제를 다룰 때는 감정을 한 발 뒤로 물리고 객관성을 유지할 여유가 있다. 하지만 지인이나 가까운 사람이 힘든 일을 겪으면, 그 사건이 나를 삼켜버려 객관적인 시선을 갖기가 어려워진다.

어떡하지?

이런 사례는 한 번도 다뤄본 적이 없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린이는 말이 없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혼란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니?”

잠시 망설이던 나린이는 입을 열지 못했고, 결국 윤지가 그녀의 허락을 받아 대신 이야기해 주었다.

오늘은 원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모의고사 기간이라 시험이 없는 학생들은 등교하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늦잠을 자고 하루를 조용히 보내려 했는데, 갑자기 보호자가 방으로 들어와 다그치기 시작했다.

“왜 아직도 안 일어났어?” “생일 선물 받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부터 해야지.”

나린이는 평소보다 45분 늦게 일어났고, 잠시 정신을 차리려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보호자는 그녀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점점 언성을 높였다. 결국 참다못한 나린이가 감정을 폭발시켰고, 이를 들은 이복오빠가 방으로 들어와 소리쳤다.

“왜 우리 엄마한테 소리를 질러? 당장 이 집에서 나가! 네가 오늘을 망쳤어. 전부 네 잘못이야.”

순식간에 상황이 악화되었고, 나린이는 허둥지둥 집을 나섰다.

“내가 내 생일을 망쳤어.”

그녀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사실, 나린이의 생일을 위해 딸과 윤지는 특별한 케이크를 만들었다. 하지만 전날 나린이가 “오지 말라”라고 했기 때문에, 결국 전달하지 못한 채 냉장고에 넣어 두었는데… 몇 시간 후 그녀가 집에서 쫓겨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린이의 가족사는 복잡했다. 친어머니는 외국인이었고,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두 분 다 돌아가심) 이후 법적 보호자인 이복오빠와 보호자의 손에 자랐다.

그리고 오늘, 그녀는 18세가 되었다.


영국에서는 18세가 되면 보호자의 법적 책임이 사라진다. 그래서 일부 가정에서는 이 시기에 맞춰 자녀를 독립시키거나, 심지어 집에서 내쫓는 일도 벌어진다.

나린의 또 다른 이복언니도 같은 방식으로 쫓겨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나린의 차례였던 걸까? 아무런 준비도, 예고도 없이, 그것도 18번째 생일날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지만, 가까운 사람이 직접 겪게 되니 그 무게감이 전혀 달랐다.

물론, 어떤 일이든 양쪽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하지만 아직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독립할 준비가 되지 않은 나린에게는 이 경험이 너무 깊은 상처로 남을 것만 같았다.


나린이는 스스로를 탓하고 있었다.

이복오빠의 "네가 네 생일을 망친 거야."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말이 점점 나린이의 것이 되어갔다.

"내가 내 생일을 망쳤어. "내가... 내 생일을 망친 걸까?"혼란스러움과 자책이 뒤섞인 채,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정말로, 이 생일을 망친 건 나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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