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눈빛을 가진 그녀를 만나러 갔다.
처한 상황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이리라ㅠㅠ.
내가 이곳에 도착한 후 2주째부터 앞집의 그녀는 나에게 길건너에서 간절한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를 하는 건지!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병약한 몸으로 버티고 있는 아내는 남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인지ㅠㅠ.
그렇게 남편은 한국으로 떠났고,
나는 여기에 만 16세 된 딸과 남았다ㅠㅠ.
제기랄! 한평생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것을 꿈꾸지 않았는데... 더욱이 이 나이에 돈도 없이 영국으로 역이민을 온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는데, 현실이 되어 버렸다.
아무튼간에 누군가를 의지하는 삶은 "꽝"이고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설령 그것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20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변함이 없다.
내 옆에서 돕고 있던 딸이 한마디 하였다.
그런 딸의 말에 "엄마 힘들어 죽겠어ㅠㅠ말하지 말고, 빨리 박스 묶는 거나 도와줘ㅠㅠ"
tmi: 나는 그동안 한국에서 참 편한 삶을 살고 있었다.
집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분리수거공간에 그냥 내어놓기만 하면, 관리사무소에서 알아서 전부 해결해 주셨다.
내가 딸의 말을 무시하자, 딸은 다시 집요하게 이야기했다.
"엄마 아까부터 그분이 집 앞에 나와서 엄마를 계속 보고 있잖아, 엄마는 그런 모습이 안 보여?"
"엄마 눈 나쁘잖아!"라고 한 번 쏘아붙이고는 또다시 무시하려다가,
해결하지 않으면 딸이 계속해서 말을 할까 봐,
결국 정리하던 박스를 내 팽개치고, 길을 건너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는 너를 알고 있어, 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반가워. 시간이 되면, 우리 집에 와서 차 한잔 마실래?"
그런 그녀의 말에 알겠다는 짧은 답변을 뒤로 한채 다시 우리 집으로 건너와서 나머지 박스를 정리했다.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왜 미국으로 이민 갔었던 1세대들이 때가 되면 한국으로 역이민을 하는지...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이번생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사실 그녀를 잘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20대 중반의 이슬람교도로만 알고 있었다.
오래전,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나는 처음으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아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것이 아니라 그녀의 남편과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 집을 임대를 해야 했야 때문에 우리 짐을 전부 빼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그녀의 남편이 찾아와서 자신들이 구매하고 싶다고 했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그리 좋은 물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드렸었다.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서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내가 기억하는 그날의 그녀는 조용히 남편옆에서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던 굉장히 수줍음을 타던 히잡을 쓴 젊은 여성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말하지 않았고,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대신하여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20년이 흐린 지금, 그토록 젊었던 그녀의 얼굴은 사라졌지만, 연륜이 묻어나는 중년의 성숙한 얼굴과 당당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약속한 날이 찾아왔고, 나는 작은 초콜릿케이크를 준비하여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1985년에 QDshop의 첫 번째 상점이 오픈한 곳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도시라는 점에서 조금 특별하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어떤 슈퍼에서 식료품을 구입하는지를 알면, 그 사람의 경제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가 티브이스킷을 QDshop에서 구입했다는 의미는 그녀는 영국의 저소득층에 속한다는 뜻이다.
그녀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아이샤(Ayesha)이고 무슬림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내가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46살이며, 큰딸은 26살이라고 했음: 외국에서는 나이를 묻지 않는 경향이 있음)
그녀는 어쩌면 이민 1세대로서 먹고사는 것이 바빠서 영어를 배울 시간이 없었을 것일 수도 있다. 이도 아니면, 가부장제도가 강한 그들의 문화적인 이유로 남편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하고, 아내는 가정생활을 담당하는 역할분담 때문일 수도 있다.
이에 반하여 아이샤는 이민 2세대로써 벵갈어, 영어, 아랍어까지 말할 수 있는 능력자이셨다.
그녀는 18살에 결혼을 하여 딸 2명과 아들 3명의 다섯 명의 자녀를 둔 46살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나와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잘 웃었으며, 호탕하게 자신의 상황을 드러냈다. 더욱이 말을 빠르게 했다. 그래서 가끔씩 나는 그녀의 말을 다시 되묻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녀는 나와 많이 닮은 사람이었다.
20년 전에 내가 알고 있었던 수줍음 많던 젊은 그녀는 사라지고, 이제는 친근함과 성숙함으로 휘감은 여성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의 기도시간이 다가와서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나는 그녀의 집을 나왔다.
아무래도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나는 그녀와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