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11월은 내복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이다.
영국의 11월, 본격적인 혹한이 시작되었다! 나의 입장에서는 혹한,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는 조금 추운 것 정도. 같은 상황 다른 느낌!, 하루에도 비가 오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큰 폭풍이 지난 후에는 체감온도가 영하 1도까지 떨어지는 나날들이 되고 있다.
비가 오는 것은 그러려니 하는데, 햇빛을 보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버렸다.
재수가 좋으면, 하루에 햇빛을 1~2시간 정도는 볼 수 있는 것 같다.
지인의 남편에게 책을 하나 빌려주었는데, 그 책을 돌려받고 싶어서 전화를 드렸더니, 부부는 일주일 동안 회사에 휴가를 내고, 영국의 남쪽 지방에 계시다고 하셨다.
그분들은 1년 이내에 이곳에 있는 집을 팔고, 따듯한 남쪽지방으로 이사를 가려고 열심히 집들을 알아보고 계시다.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시고 있는 것으로 보아, 1년 이내에 이곳을 떠날 수 있으실 것이다.
11월이 되면, 영국의 상류증들은 가까운 유럽의 따듯한 지역인 스페인으로 추위를 피하여 여행을 떠난다.
얼마 전에 길거리에서 만난 돈 많은 말레시아계 중국인 부부 역시, 일주일 동안 가족들 전체가 스페인으로 떠날 것이라고 했었다.
하루종일 히터를 틀어도 70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 집은 여전히 춥다.
이러다가 이번달 가스비만 100만 원 나오는 것 아닌가 싶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tmi: 처음 제주영어교육도시가 세워질 때, 싱가포르에서 오신 부부가 있었다. 그 부부에게는 8개월짜리 아기가 있었다. 사계절이 여름인 싱가포르 인들에게 제주도의 겨울은 엄청 추우셨는가 보다. 특히 제주도에는 서울처럼 도시가스가 없어서, LPG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때 그 부부는 너무 추워서 난방을 한 달 동안 틀었더니, 가스비가 100만 원 나와서 한탄을 하셨다.
그 이야기가 떠올라서 난방을 적게 틀었더니, 안 그래도 저체온증인데,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이 말을 들은 나의 또 다른 지인께서는 그러다가 암이 걸릴 수도 있다시며, 빨리 전기장판이라도 구입해서 몸을 보호하라고 조언하셨다.
어떡하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아서인지, 흙수저임에도 난방만큼은 신경 쓰지 않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나에게 고민할 거리로 다가왔다.
그분 말대로 아마존에서 전기장판은 구입하면 되는데, 그 외에 추위를 물리치는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가만히 생각했다.
그러다가 떠오른 생각은 바로, 나의 어릴 적, 한국이 그렇게도 못살았던 초등학교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빨간 내복을 입고 학교에 갔었고, 학교 교실의 가운데에는 커다란 난로가 있었다.
아하! 내복을 구입하면 되겠군!
그래서 유니클로의 히트텍 제품을 검색했다.
제기랄, 히트텍 매장은 이곳에 없군!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나?
막스 앤 스펜서(M&S)가 떠올랐다.
그곳에 가면 괜찮은 것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날씨도 춥고, 몸도 안 좋아서 11시가 넘어서 집을 나섰다.
요즘 체감온도가 마이너스 1도가 되는 날이 많고, 오죽하면, 낮 12시가 넘어서야 그나마 5~6도가 될 때도 많다.
시내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토요일이다 보니, 버스의 배차시간이 길어져서(이곳은 평일과 토요일 일요일 버스가 다니는 시간이 다름. 한국의 대중교통에 감사해야 함)
기다리다 보니, 갑자기 짜증이 올라왔다.
그래서 걸었다.
그렇게 40분 정도를 걸어서 시내에 도착했고, 몸과 마음이 얼어버렸다.
특히 얼어버린 마음을 녹이기 위하여 나의 최애 백화점 내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핸드메이드스콘과 홍차를 마셨다.
역시 추위에는 우유를 넣은 따듯한 홍차가 최고다.
그 후, M&S에 도착한 후, 나와 딸을 위한 내복을 구입했다.
20만 원이 넘었다.
원래 내복이 이렇게 비싼 거였나?
아무튼간에 40년 만에 처음으로 내복을 사서, 집에 돌아온 후, 입어보았다.
물론 팔길이가 긴 것(영국인들은 팔다리가 긴 편임.) 외에는 얇으면서도 따듯했다.
이제는 더 이상 겨울에도 실내에서 반팔은 입었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겨울에도 아파트의 실내온도를 평균 25도로 맞추어놓고 살 수 있었던 삶과는 정말 안녕을 고해야 한다.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너무 오랫동안 따듯한 제주도의 날씨를 누리고 살았다.
저녁이 되어 따듯한 2개의 핫워터보틀에 물을 가득 채워서 이불아래 두고, 두꺼운 수면잠옷 안에 내복까지 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참 따듯했다.
역시 사람은 죽으라는 법은 없다.
단지 방법을 모를 뿐..
그렇게 잠이 들락 말락 할 즈음에 앞집들 중의 한집에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앰뷸런스는 오랜 시간 동안 머물러 있었다.
왜 그럴까?
이유는 2가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지금 당장 사람의 목숨이 넘어가는 상황이 아니라서, 구급대원들이 집안에 들어가서 응급 처지를 한 후, 상황을 지켜보는 경우일 것이다.
그곳에는 연세가 드신 분이 사시고 계시다.
벌써 2번째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아무래도 그분은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
이번 겨울은 누군가에게는 삶의 끝자락에 있을 수도 있고, 나같이 온갖 혜택을 누렸던 누군가에게는 현실의 냉혹함(?)을 맛보아야 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어차피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나 역시 올해가 지나면 재수 없고 혹한처럼 느껴지는 영국의 겨울이 그러려니 하고 느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 조금만 능동적으로 안 쓰던 머리를 써서 오늘도 파이팅 하기로 결정하고 선택했다.
그러나 저러나, 깜빡했다.
내복을 상의만 사 왔다.
하의를 사 오지 않았다.
왜 세트로 팔지 않는 거지???^^
하아ㅠㅠ. 내일 다시 시내로 가야겠군.
왕복 버스요금 7.000원을 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