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샤가 울었다 내 앞에서

나도 울었다. 도서관 사서 앞에서

by 해피걸

아이샤가 갑자기 문을 두드렸다.

뭐지?

그녀의 손에 홍차가 들려있었다.

왜?

아이샤: 나 들어가도 돼?

나: 응

아이샤: 내가 직접 키운 허브를 띄운 차를 가지고 왔어. 너 마셔보라고...

나: 그래?... 흠...(평소에 입도 짧고, 향신료 같은 것이 들어간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가 내민 홍차를 받아 들었다.

그런대로 마실만 했다.

아이샤를 소파에 앉힌 후, 나는 거실 바닥에 않았다.(이번주에 두꺼운 방석을 주문함)

남에게 피해를 끼지는 것을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에 난데없이 문을 두드리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는데...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녀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나:너도 차를 줄까?

아이샤: 아니야, 나는 집에서 마셨어.

나: 아~

그리고 나는 조금 기다렸다.

그녀에게 말할 시간을 주기 위하여... 급한 나의 성격은 어떨 때는 상대방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아이샤: Conny~

나: Yes, 아이샤~

아이샤: 딸은 2층에 있어?

나: 응, 그런데 신경 쓰지 마, 딸은 에어포드끼고 노래를 들으면서 공부하니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안 들려. 괜찮아~(본인의 넷째 아들이 현재 A레벨을 공부하고 있음)

나: 요즘 아이들은 이상해. 노래를 들으면서 공부하면 나는 도저히 집중이 안 되는데???

아이샤: 요즘 애들은 다 그러는 것 같아.


아이샤는 조용히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그녀는 아침에 GP(한국의 동네의원급 의사)를 만났는데, 자신이 고혈압과 당뇨병이 있다고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고혈압은 지금부터 약을 먹어야 하고, 당뇨병은 지금은 아닌데,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고...

너무 속상하다고 한다.

아이 5명을 다 키우고 이제야 자신도 자기를 위하여 아주 작은 일이라도 시작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몸이 문제라고... 희망이 없어졌다고...

아이샤는 18살에 결혼하여 5명의 아이들을 낳아 잘 길렀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은 없었고, 아내와 엄마라는 자리를 지키며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패션에 관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었다고...

그런데, 아이 5명을 남편이 벌어다 주는 적은 월급으로 살아왔야만 했다고...


그래서 언젠가는 자신들의 아이들이 더 이상 자신의 손을 빌리지 않게 되면, 그때는 반드시 자기가 좋아하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무료 봉사가 아닌 돈을 받는 일을 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고...

이제야 막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고, 올초부터 작은 일이라도 찾아보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런 천천병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올랐고, 어느 순간 차오른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울고, 우는 그녀를 보며 나도 울었다.

한동안 그녀는 눈물을 흘렸고, 나는 그녀에게 티슈를 넘겨주며, 나는 거실바닥에서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 처음 구입한 2개짜리 소파는 옆으로 나란히 앉으면, 그 사람의 눈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면, 내가 거실 바닥에 앉고, 상대방은 소파에 앉도록 권한다,)

아이샤가 눈물을 훔치며, 내가 왜 그랬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도서관.jpg 만든 도서관증: 내것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딸 것이다. 그래서 카드그림에는 아이들 사진이 들어있다^^두 개 중에 한 개는 키링에 달 수 있도록 만든 것

드디어 내가 이야기할 차례가 왔다.

나: 아이샤~ 나는 사실 2달 전에 너처럼 울었었다. 그것도 도서관 사서 앞에서...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아이샤: 왜?

나: 너무 힘들었어. 오래된 집이 여기저기 고장이 났잖아. 남편이 없으니까 고칠 수도 없고, 사람을 쓰려고 했더니, 수리비가 너무 비싸서 못하고, 생활이 너무나 불편했어. 더욱이 몸도 너무 아팠어.

그런데, 2달 전 어느 날, 근처에 있는 도서관 알지? 그곳에 도서관증을 만들러 갔었거든. 그때 도서관증 만들면서 너무 속상해서 처음 본 사서 앞에서 울어버렸어. 도서관에 사람들도 많았는데, 너무 창피하더라.

아이샤: 너도 많이 힘들었겠다. 몰랐네.

나: 그러니까, 오늘 네가 내 앞에서 운 것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나도 그랬는데 뭐^^ 그리고 아이샤, 언제든지 네가 힘들면 우리 집에 문을 두드려도 괜찮아.

너희 집은 식구들이 많아서 너의 공간이 없잖아.

(물론, 나는 안다. 그녀가 오늘처럼 나의 문을 두드리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그녀는 남을 불편하게 하거나 예의 없이 행동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음)


그렇게 그녀를 보낸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그랬었지... 나도.

사실 나는 제주도에 너무 오랫동안 살았었다.

처음에는 2~3년 후,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남편의 계획이었다.

역시 삶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처음 제주도에 입도한 후, 1년 동안은 너무 힘들었었다.

제주영어교육도시가 처음 조성되다 보니, 도로도 없고, 당연히 인터넷도 안되었으며(엥? 한국에서도 인터넷이 안될 수가 있구나! 경악했었다. 주민등록주소지에 읍과 리가 붙는 것은 인생의 처음이었음.)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가계조차 없었다. 당연히 버스도 다니지 않았던 오지 중의 오지였다.

요즘 제주영어교육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최소한의 사림이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환경이 조성된 것은 도시가 조성되고 약 1년이 걸린 것 같다.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흘러갔다. 지금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렇게 편리해진 도시를 떠나, 체감상 오지 중의 오지인 아주 영국, 그것도 내가 극혐 하는 추운 곳에 도착해 있다.

마치 30년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와 있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때, 나를 힘들게 했었던 것은 오래된 집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점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했었던 점은 집의 전주인이 허접한 기술로 직접 만든 컨서버 터리에 있었던 피아노벌레 때문이었다.

원래 피아노는 거실에 있었다. 그런데, 임차인이 피아노를 거실에서 컨서버 터리로 빼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옮겼고, 그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벌레퇴치를 하기 위하여 전문업체를 통하여 백만원가량 되는 금액을 지불해서 퇴치를 했는데, 임차인이 환기를 제대로 시키지 않아서 다시 생긴 것이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만 해도 토할것만 같다.

인간의 생활환경에서 위생이 가장 중요한 나에게, 이 일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왜 사람은 저마다 가장 못 견디는 그 무엇인가가 있지 않은가!


한국 같으면 돈만 주면 아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이곳에서는 불가능했다.

너무나도 비싼 금액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 문제 외에도 화장실의 세면대누수, 욕조 누수, 그리고 주방의 수도꼭지 누수, 심지어 복도전등까지 나가버렸다.

고장난전등.jpg 고장 난 전등: 전구만 갈아야 하는지? 아니면 또 다른 문제가 있는지?


제기랄!!! 한국에서는 집안의 전등까지도 친절한 관리사무소 아저씨께서 전등만 준비하고 있으면, 집으로 오셔서 직접 교체해 주셨는데... 아저씨들 너무 고맙습니다.~ 아주 편한 일상생활을 누렸습니다~

그런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나는 영국의 삶이 너무나 힘들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그리고 타고난 성격인 급한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성격이 느긋한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르게 반응하지 않은가!


신체적으로는 심장판막증 1단계와 백내장을 진단받고, 백혈구수치가 너무 낮아서 지켜보아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채,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다 보니, 아주 죽을 지경이었다. 잠이 안 오는 어떤 날은 불안감에 심장이 엄청 빨리 뛰었었다.

그러한 상황에 처해있었던 어느 날, 나는 잠시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도서관증을 만들기 위하여 갔었다.

그곳에는 30대 초반의 젊고 아름다운 사서가 않아있었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웠다.

나:도서관증 만들고 싶어요.

사서; 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가 있나요?

나는 수도요금청구서를 보여주었다.

이곳은 주민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관공서와 은행에서 보내는 우편주소에 너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거주지 확인을 한다.


그녀는 컴퓨터에 입력하면서 물었었다.

이름이 특이한지, 혹시 외국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서울에서 왔느냐고 다시 되물었다.

자신은 여행을 좋아해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는데, 아직 한국은 가보지 못했는데, 아름다운 나라라고 들었다면서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겠다고 했다.

나는 여행이야기라면, 밥을 세워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녀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는지, 아니면 그녀의 따듯하고 선한 기운을 느꼈는지, 아니면 30대 초반의 건강하고 밝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나의 속마음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물었다.

영국으로 역이민을 왔는데, 생활은 어떠냐고?

그 순간 나는 그동안 영국에 도착해서 겪었던 많은 어려움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속에 꽉꽉 눌러 담아놓은 억울함(?)과 속상함이 터져버렸다.

결국 나는 울어버렸고, 그녀는 조용히 나에게 티슈를 건네주었다.

주책맞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그것도 나이도 아주 어린 젊은이 앞에서...(꼰대마인드)

그런 그녀와의 시간 후, 나는 심적으로 조금 숨통이 트였는지, 눈앞에 당면해 있었던 문제들이 조금은 덜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세면대누.jpg 세면대 누수는 언제 해결할 수 있을까?

그랬었다. 나는 아주 많이 힘들었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마음이 평안해졌다.

나는 이곳에 와있다. 지금은 실내온도 17도이지만, 추후 더 떨어질 것 같다ㅠㅠ적응해야만 한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기 위하여 그동안 쓰지 않았던 두뇌를 풀가동해야만 한다.


희망적인 것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구입해서 입었던 내복으로 인하여 신세계를 경험했다. 실내온도 17도가 마치 24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러시아의 어느 나라는 –70라는 곳이 있는데 그런 추운 나라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이겠구나~

이번주에는 시내에 나가서 내복을 1벌 더 구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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