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20여 년간 IT업계에서 일을 했다.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잘 다니던 대기업을 과감히 사직하고... 게임회사 창업멤버로 일을 시작하했다.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다가 넷**게임회사의 계열사에서 본부장으로 일하면서 힘은 들었지만 누구 보다 책임감 있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일밖에 모르던 남편이 어느 날부턴가 너무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게임아이디어 기획부터 음악, 디자인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면서 뿌듯해하며 일했던 사람인데... 결국은 타의로 인해 그런 성취감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20여 년 동안 한 길을 걷던 남편이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만의 쉼의 시간을 갖고 싶어 했다. 그때는 저도 활발하게 일라던 터라 생활비 걱정은 접어두고 남편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충분한 쉼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이제 겨우, 나이 40대 후반... 인생 2막을 새롭게 꿈꾸며 그려나갈 거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마침, 세컨하우스를 꿈꾸고 있어서 그곳에서 남편의 새로운 시작을 그려나갔다. 몸도 마음도 여유로운 곳에서 캠핑장을 운영하면서 남편이 하고 싶던 1인 게임기획을 해보라고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 내가 생각한 대로 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남편의 퇴사 후 얼마되지 않아서 친정아버지께서 폐암이 전이되어 뇌종양 수술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 시간적으로 여유로웠던 남편이 장인어른의 모든 치료과정을 함께 해주어서 무척이나 든든했다. 그 후로도 수술을 하게 되어 요양원에 모시게 될 때까지 보호자의 역할을 해주었다.
장인어른의 간병에 시간을 보내면서도 남편은 산림기사, 방수기능사등 다양한 자격등 공부도 병행하였다. 시간이 1년쯤 흘러서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실 무렵에... 더 안 좋은 상황이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유방암 2기 판정을 받았다. 친정아버지 암간병이 끝날 무렵에 다시 시작된 아내의 유방암수술... 그리고 항암까지 남편은 모든 시간을 내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었다.
그렇게 친정아버지와 저로 인해 남편이 꿈꾸던 인생 2막의 한 페이지를 쉬어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투덜대지도 않고 묵묵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남편이 너무 고마웠다. 수술과 항암을 마치고 나서는 나도 일을 쉬어야 했다.
캠핑장을 운영하면서 1인게임 기획자였던 남편의 제2의 인생에 노선변경이 필요했다. 취미 삼아하려고 했던 캠장보다는 조금 더 큰 사업을 해야 했다. 양평은 세컨라이프를 시작하고 싶은 곳 3위라고 한다. 누구나 쉬어가고 싶은 곳 그곳에서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 그래서 남편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철물점을 시작하게 되었다.
워낙 공부가 취미인 사람이라 저의 간병을 하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 1차에 참 쉽게 합격했다. 올해 저의 퇴사와 동시에 시작한 철물점 사업은 어느덧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10월에는 공인중개사 2차 시험을 앞두고 있다. '주경야독' 하듯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늘 공부를 하는 남편을 보면 존경스럽다.
정말 어쩌다 철물점 사장님이 되었지만 스마트하고 멋진 '나이스 철물점' 대표님이다^^
게임 PD, 캠장, 철물점사장님, 공인중개사! 무엇이 되든 책임감으로 잘 해내는 남편과 함께 퇴사 후 인생 2막을 시작한 나도 힘들다고 주저앉지 않고 작가로, 라이프 코치로 성장해야 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