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 신혼살림을 장만하여 그 해 가을 결혼을 한 22년 차 부부이다.
남편은 특목고를 거쳐 고2 때 졸업하고 입학한다는 K*** 대학원 출신으로 동네 이름난 수재였다.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가 가고 싶었을 뿐이에요!'라고 공부를 재미로 하는 나랑 너무 반대인 사람이었다. 나는 공부와는 조금 거리가 먼 미술전공으로 똑똑한 남편이 멋있기도 부럽기도 했다.
4년간의 장거리 연애 끝에 저의 직장 근처인 용인에 터를 잡고 남편은 장거리 출퇴근을 하면서 회사생활을 했다.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을 했지만 평소 좋아하던 게임회사를 창업하고 싶어 해서 신혼 초에 게임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남편은 게임기획자로 20년을 살게 되었다.
저도 결혼과 출산을 거치면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서 18년 간 일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의 인생과 꿈을 존중하면서 각자 참 열심히도 살았다.
동안 남편(연하 아님... 저보다 4살 연상입니다~ㅋ)
2019년 각자의 회사에서 저는 세일즈로,남편은 기획 PD로 둘 다 본부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동안 수고했다면서 서로를 응원하며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도 있듯이 아무래도 자리의 높이만큼의 부담감과 마음의 무게는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의 게임회사는 넷**의 계열사로 한때는 총망받는 게임콘텐츠였는데 워낙 빠른 시대의 흐름과 매일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기획자로서 부담감을 갖고 많이 힘들어했다. 우여곡절 끝에 PD자리를 내려놓고 PM으로 일을 했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얼마 간의 고민 끝에 남편이 폭탄발언을 했다.
"나... 퇴사해도 돼?"
...
아직 두 딸이 고등학생과 중학생이라 걱정이 앞서긴 했지만,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20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그에게 차마 안된다고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게임회사를 다니며 조금 일찍 퇴직할 것 알았기에 노후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크게 걱정하지 않고 퇴사의 마음을 먹게 되었다. 저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하기보다는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 가정은 내가 책임질게. 퇴사해!"
이렇게 크게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은, 조금만 쉬었다가... 인생 2막을 그려보자라고 했다.
명절을 앞두고 퇴사가 확정되던 날에는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는 '파란 장미'와 함께 그동안 수고했다고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두 딸과 함께 소소하게 퇴사기념 파티도 해주었다.
그동안 수고한 당신에게... 3년 전... 우리가 계획한 대로 인생 2막이 흘러가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가족은 언제나 최고의 가장인 아빠, 나의 기둥인 남편을 믿고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