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간병_장인어른 편
남편이 퇴사하고 얼마 후 친정아버지는 2번째 뇌전이 수술을 하였다. 그동안에도 장인어른의 병원을 모시고 다녀주었듯이 수술을 하고 입원하는 기간 동안 싫은 내색 없이 아버지의 간병을 도맡아서 했다. 그런데 수술동의서를 작성할 때 남편이 씩씩거렸다. 병원에서 직계가족만 싸인이 가능하다고 하니 사위는 자식이 아니냐면서... 미안한 마음에 얼른 내가 가서 사인을 했다. 대놓고 말로 표한하지 못했지만... 참, 고마웠다.
사실, 남편은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고 대학교, 대학원, 군대까지 10년 이상을 부모님과 떨어져서 독립생활을 해서 누군가를 챙기는 일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이상했는데, 연애하고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지 참, 따듯한 사람이구나.'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미리 알아서 챙겨주길 바라기보다는 어떻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편이다. 그럼, 자기가 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을 다해 도와준다. '부탁하면 다 들어준다.' 이것이 내가 20년 동안 남편과 살아오면서 터득한 '판다남편사용법'이다~ㅋ
친정아버지는 두 번째 뇌수술을 하고는 급격하게 병이 악화되었다. 여러 번의 수술을 하고 난 후에는 집에 혼자 계시는 게 불안했다. 워낙 고집이 세서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억지로 본가인 친정오빠집으로 모시고 왔다. 강원도에 계시는 것보다는 걱정은 덜했지만 식구 모두 출근하고 없을 때 생각지도 못한 일들 일어났다.
다리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넘어지시면 일어나기 힘들어하셨다. 화장실을 가셨다가 일어나지 못해서 누군가 퇴근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목욕탕바닥에 앉아계셨다. 어느 날은 물 뜨러 가다가 넘어져서 갈비뼈가 여러 개 금이 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2차 수술하고 거동이 힘들어지고 혼자 계시는 동안 사고가 나서 어쩔 수없이 요양원이라는 대안을 선택해야만 했다. 요즘은 노인장기 요양보험이 잘되어있어서 요양등급심사를 거쳐서 일부 금액만 지불을 하면 요양원에 입소가 가능하다.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요양원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모두 직장에 다니고 남편에게만 간병을 부탁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요양원에 모시는 동안에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종합병원에 진료를 하러 가야 한다. 그때도 남편이 요양원에 가서 장애인 택시를 불러서 휠체어로 모시고 병원에 갔다가 진료를 마치면 약처방을 받아서 다시 요양원으로 모셔다 드려야 했다.
요양원으로 모신건 마음이 아프지만, 집안에서 사고 날까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좀 낫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매주 요양원과 병원을 오가며 하루종일 고생한 남편한테 너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퇴사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을까??? '퇴사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친정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시부모님만 계신다. 남편이 그랬듯 나도 시부모님이 우리 부모님이라고 생각하고 잘 챙겨드리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