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마치고 한 달쯤 지났다. 수술하며 떼어낸 조직검사를 해보니 유방암 2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리고 림프절로 1개 정도 전이되어서 항암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것만을 안 했으면 하고 바라었는데... 그랬다면 주위의 몇 사람에게만 알리고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항암이 시작되면 외모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병원 코디네이터 선생님과 항암시작일을 잡기로 했다. 일정을 잡으려고 나도 스케줄러를 폈다. 다음 주에 바로 시작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5월 27일에 첫 항암 시작하시죠?
그날은 안 되는데요?
하지만 나도 일정이 있어서 그날은 안된다고 하니 코디네이터샘이 당황했다. 병원에서 일정을 잡는데 안된다며 자기 스케줄에 맞는 날에 시작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제가 6월 8일에 제주연수가 있어서요. 다녀와서 다음날로 잡아주세요.
어이없어하며 웃으시면서 내가 원하는 날로 일정을 잡아주었다. 회사에도 수술한 얘기는 기획팀장에게만 말린 상태라 연수를 빠지면서 다들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름 항암 전에 힐링여행이라고 생각하고 다녀오고 싶었다.
연수가 시작되고 낮에는 관광을 하며 맛있는 음식을 맘껏 먹었다. 제주의 바닷바람을 쐬며 그동안 답답하고 힘들었던 마음과 스트레스를 날려 벼렸다. '아르떼 뮤지엄'에서 펼쳐진 아름다운 미디어아트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중에도 한참 생각날 정도로 정말 감동이었다. 다음에 아이들과 꼭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숙소는 '포도호텔'이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쓰면 쉬기 어려울까 봐 2인실을 나 혼자 쓸 수있록 배정해 주었다. 회사의 배려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핀크스포도호텔'은 제주에서도 유명한 곳이다. 26개의 객실이 단층으로 모두 숲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 힐링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회사에서 연수가 아니었다면 가족여행으로 가기는 부담스러운 곳이기는 하다. 아침 일어나서 커피 한잔을 들고 대청마루에 않으니 내일 시작될 항암의 걱정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포도호텔에서 유명한 조식까지 든든하게 먹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울로 나섰다. 다행히 내가 한 달 전에 수술한 일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왜, 혼자 방을 쓰냐고 여러분들이 묻긴 했지만, 홀수라서 한 명이 모자란 걸로...ㅎ
나는 평소에도 걱정을 미리 하는 편은 아니다. 사서 미리 걱정한들 벌어질 일이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이왕 벌어질 일이라면 해결방안을 찾는 편이 빠르다고 생각한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
아마, 내일이 항암시작일이면 걱정하느라 여행을 다녀오는 일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녀오지 않았으면 후회할 만큼 너무 좋고 마음 편한 여행이었다. 밤에 혼자 자면서 생각정리도 하고 아침에 커피 한잔을 하면서 앞으로의 계획도 세우는 시간이었다. 멋진 관람을 하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힘든 상황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여행가방을 풀고 다음날 항암 준비물을 챙겼다. 첫 항암이라 남편이 함께 가주기로 해서 흐뭇한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렸다.
앞으로 험난한 일들이 기다릴 테지만... 또 그때가 되면 해결할 방법이 있겠지.
그러게 죽을 만큼, 힘들지만은 않았던 6개월간의 항암일기는 다음에...
카르페 디엠 carpe di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