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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Nov 22. 2020

잠시 쉬었다 하실래요?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고개가 절로 흔들흔들. 눈을 비비고 앞을 바라보다 선생님의 두 눈과 마주칩니다.

 순간 깜짝 놀라며 고개를 마구 흔들어요. 혼미한 정신을 차리려 애써보지만 다시 꾸벅꾸벅. 분필이 날아오지 않을까, 선생님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을까, 알면서도 본능을 거스르지 못합니다.

 '딩동댕’, 수업 끝.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전쟁터인지, 도떼기시장인지 정신없는 사무실. 빗발치는 전화를 받고 예상치 못하는 업무에 다들 바짝 긴장을 합니다.

 '빨리빨리!', '연락은 했어? 뭐래?' '결재 올렸어?' 여기저기 큰소리가 오갑니다. 전화기를 붙들고 연신 고개 숙이는 사원, 서류 뭉치를 들고 황급히 달려가는 직원. 배경음악은 절대 빠질 리 없죠. 타닥타닥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는 잠시도 멈추지 않습니다.

 '밥 먹고 하자' 이 반가운 말 한마디에 여유를 되찾습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은 먹어야죠.   

 

 '수험생에게 주말이 어딨어? 일요일은 또 뭐야?'

 '지금 일분일초가 아쉬운 마당에, 공부는 다 때가 있는 거라고!'

지금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격려를 가장한 협박을 받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는 시기가 어디 있을까요? 이 시험이 끝나더라도 다음 시험이 기다리고 있음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주 5일이라며 여가를 즐기고 여유로운 생활을 장려하지만 부담스러울 때가 적지 않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눈앞에 두고 마음 편히 쉬는 배짱을 가지기란 쉽지 않죠.

어차피 해야 할 일, 내가 안 하면 누군가가 해야 합니다. 처리 기간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잡무는 넘쳐나고 업무는 끊이질 않아요. 해도 해도 일에 쫓깁니다.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해 보입니다.  


'대학에만 가면!' '취업만 되면!' '승진만 되면!'

지금은 고달프고 힘들어도 이 고생이 끝나면 크나큰 보답이 올 거라 굳게 믿습니다. 오늘 즐겨야 할 여유는 서랍 속에 넣어두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말입니다.

치열한 입시를 뚫고 대학을 가고요, 다들 어렵다는 취업이 되어 어엿한 직장인으로, 사회인으로 면모를 갖춥니다.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그것도 잠시, 으쓱해진 어깨 위에 책임감이 올라타 마구 짓누릅니다. 기대한 보답은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 아닌가 싶어요.

 

'이번 일만 끝나면', '조금만 버티면', '아직은 괜찮다'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자신을 다그칩니다.  

이번 일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일이 놓여있고요, 조금만 버텨보지만 그래 본들 더 버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아직은 괜찮다고 했지만 언제까지 괜찮을지 장담할 수 없는 현실,

서러운 건 괜찮으려면 끝까지 괜찮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안 괜찮아지는 순간 이 자리는 온전하지 못할 거니까요.


1년 365일, 쉼 없이 달려왔지만 쉬지 못하고, 쉴 줄도 모르는 일상이 심신을 번아웃시킵니다.

불꽃같은 열정만 보이다가는 어느 순간 타다 남은 재가 될지 모르는데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컴퓨터가 버퍼링에 걸리지 않으려면 잠시 전원도 끄고 때가 되면 업그레이드해줘야 하듯이

삶에도 버퍼링에 걸리지 않으려면 쉬어주고 다독거려주는 관심이 있어야 하죠.


수업시간 끝,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반가운 것처럼

기지개 켤 시간도 없이 일에 파묻혔다가 '밥 먹고 하자'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듯이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 중의 하나,

작은 휴식이 작은 즐거움이 되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휴식은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작은 휴식과 작은 여유만으로도 삶은 즐거워질 수 있으니까요.

버퍼링에 걸리지 않으려면 작은 대가만 있어도 때론 충분합니다.

흠뻑 땀 흘리며 일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캔처럼 말이죠.


그러고 보면 모든 게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나요?

한숨 나는 괴로움도 작은 해소부터 해야 다 털어버릴 수 있고요.

눈물 나는 서러움에도 먼저 작은 다독임이 필요합니다.

거창한 인류의 평화도 소박한 가정의 평화에서 비롯된다고 하잖아요.


빡빡한 하루, 빠듯한 일상, 깝깝한 현실, 답답한 세상.

공부할 때나 회사 다닐 때나 빡빡 안 한 적이 있었나요?

시험은 늘 빠듯했고 성적이나 성과는 언제나 깝깝했죠. 이런 나 자신은 항상 답답했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 없이 시간은 흐르고 삶은 이어집니다.


삶의 무게가 버거워도 힘든 일이 끝나고 나면 작은 보상이 있을 거라는 작은 기대를 해보렵니다.

없더라도 실망하지 않아요. 없으면 나 스스로가 작은 보상을 하면 되니까요.

작은 사치도 부려보고, 작은 기쁨도 마음껏 누리고요.

행복도 작은 행복에서 시작되는 거니까요.


지금 힘드세요?

그럼 잠시 쉬었다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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