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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Nov 23. 2020

소리소리 잔소리

말만 들어도 힘이 나는 잔소리,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웁니다. "수리수리 마수리. 나타나라 짠~"

힘차게 외운 주문과 달리 아무것도 없거나 엉뚱한 게 나타나 웃음을 줍니다.

만화에서 자주 나왔던 장면인데요, 엉터리 주문이나 장난스러운 주문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수리수리 마수리'. 원래는 불교의 경전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원뜻은 소원 등이 성취하게 해 달라는 뜻이 있고요. 세 번 연거푸 외우는 것으로 입으로 짓는 모든 업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주문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 물어보나 마나 부모의 잔소리입니다. 부부간에 가장 듣기 싫은 소리도 당연히 서로의 잔소리이죠. 직장인이 가장 듣기 싫은 소리도 두말하면 잔소리, 상사의 잔소리입니다.

소원이 성취되는 수리수리 마수리를 외우고 들어도 힘든 세상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1년 365일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지 소리소리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 현실입니다.




아내가 몇 겹 접힌 뱃살을 보며 푸념을 합니다.

“이놈의 살은 도통 빠지질 않아. 요즘은 하루에 밥은 1끼만 먹는데 왜 이런지 몰라.”

듣고 있던 남편이 그동안 보였던 아내의 행동에 조언을 빙자한 잔소리를 합니다.

“밥은 많이 안 먹어도 이것저것 조금씩 먹잖아, 쌀만 줄었다 뿐이지, 먹는 거는 오히려 더 많은 것 같던데? 그러니 살이 빠지겠어?”

남편의 뼈 있는 지적에 아내의 인상이 점점 굳어집니다. 지나가는 아이가 결정타를 날립니다.

“엄마는 운동도 안 하잖아, 맨날 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면서.”


진실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순간 통곡의 벽이 찾아옵니다.

바로 다음날 엄마는 아이에게 뻔한 레퍼토리를 늘어놓습니다.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 주냐?” 공부하라는 말에 명분도 들어있습니다.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 제발 공부 좀 해!”


남편은 더 혹독한 응징을 당합니다. 모처럼 회식에 술이 조금이라도 취해 들어오면

“술 좀 작작 퍼마셔! 맨날 술이야!”

어쩌다 한번 한 회식이 맨날 술만 퍼마시는 사람으로 둔갑합니다. 당연히 명분도 빠지지 않습니다.

“애가 지금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 줄 알아? 지금 당신 제정신이야? 저 배 좀 봐, 몸 생각도 해야 할 것 아냐?” 아이의 중요한 시기에 회식을 하면 큰일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유는 이해불가이고요. 배 나온 지가 언젠데, 본인 배도 만만치 않으면서 퍼붓는 잔소리에 마음만 상합니다.


비단 잔소리는 집에서만 있는 건 아니죠. 회사에서도 상사가 읊어대는 레퍼토리를 주야장천 듣습니다.

'일처리가 어떠하니', '태도가 그 모양이니', '나 때는 말이야~'

어제도 듣고 1달 전에도 들었던 잔소리를 오늘도 듣습니다. 앞에서는 마지못해 “예” 하지만 돌아서면 한숨만 나오죠. 존경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사라집니다.




잔소리, 말 그대로 쓸데없는 말 혹은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개 처음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근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감정적이 되고 염려하던 마음이 화가 나서 잔소리로 무한 반복되고 맙니다.

하던 이야기하고 또 하고, 예전 이야기도 꺼내고, 남들하고 비교하고 결국엔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됩니다.

공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엄마는, 남편 술버릇을 고치고 싶은 아내는 필요 이상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다 보면 말하는 사람은 흥분, 듣는 사람은 짜증,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잔소리는 내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지적하고 고치기 위해서 하는 거죠. 근데 잔소리를 해서 효과를 본 적이 있었습니까?  

잔소리를 했더니 아이가 “아! 맞아, 언제나 옳은 말만 하는 우리 엄마, 너무 사랑해”하며 엄마에게 안기는 일도, 남편이 “그래, 언제나 바른말만 하는 당신이 너무 사랑스러워”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잖아요.

직급상 어쩔 수 없이 숱한 잔소리 앞에서 '예’하던 부하직원이 시간이 흘러 상사를 추월하는 날이 오면요. 그 상사는 어딜 가겠습니까? 평소 잔소리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했다면 찬밥 신세라도 마음 둘 곳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거라면, 나쁜 습관을 고치고 싶은 거라면, 목적이 진심으로 그런 거라면 방법을 달리하는 게 좋습니다.

살이 안 빠져 고민하는 아내에게

“내일부터 나랑 같이 운동하는 건 어때?”

“폰을 보면서도 집에서 홈트레이닝하는 건 어떨까?”

잔소리가 조언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잔소리와 조언은 항상 경계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나는 조언이 필요하다고 느끼더라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죠. 여기서 잔소리와 조언의 경계는 갈라집니다. 아무리 옳은 말, 바른 말이라도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없다면 의미 없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합니다.

듣기 좋은 말도 2번 이상 하면 잔소리가 되고요.

상대방이 정말 알고 싶어 물어본 게 아닌데도 상대방을 위한 답시고 뻔한 소리만 해대는 건 자기만족에 불과합니다. 살 안 빠진다고 푸념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한 말처럼요.




입안에 맴돌고 턱밑까지 차고 올라와 내뱉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잔소리, 근데 잔소리를 해봤자 좋게 끝난 적이 없을 거예요.

잔소리가 나쁜 습관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미 내뱉고 있는 자신을 종종 발견합니다. 아이의 엄마도, 한 남자의 아내도 실컷 퍼붓고 나면 개운하기는커녕 괜히 미안해지기도 하고요.


잔소리는 서로 기분만 나빠지고 반항심만 자극합니다. 긍정이라고는 1도 없습니다.

얼마 없는 긍정 에너지마저 쏙쏙 빼버리는 마이너스 에너지만 있는 게 잔소리죠.

하고 싶어도 조금은 자제하면서 좋은 말, 따뜻한 말을 대신하면 화기애애할 텐데, 알면서 왜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날씨도 추워지고 코로나는 다시 대유행을 할지 모른다고 하니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스트레스도 많은데 잔소리만이라도 조금씩 줄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잔소리는 승자가 없습니다. 모두 패자로 만들 뿐이죠. 모두가 윈윈 해도 시원찮을 판에 말입니다.


말만 들어도 힘이 나는 잔소리,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소리소리 잔소리 대신 기운 나는 따뜻한 말과 꿈을 이루는 수리수리 마수리를 외우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마이너스 에너지의 원천인 잔소리, 오늘부터 평소보다 조금씩 줄여보는 1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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