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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Jan 14. 2021

하얀 거짓말, 누구나 속마음 그대로 이야기한다면?


 어려서부터 부모는 아이한테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에게 망설임도 없이 거짓말을 합니다. 그것도 뻔한 거짓말을요.

 장난감 진열대 앞에서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며 이런 말을 하죠.

"다음에 사 줄게. 착하지."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갔습니다. 주사를 맞아야 한다네요. 아이는 주삿바늘이 무서워 더 울어 젖힙니다. 엄마가 아이를 달래려 또 거짓말을 합니다.

"주사 하나도 안 아파. 괜찮아."  


 학교에서 선생님이 거짓말하는 학생은 혼을 냅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이번 시험은 아주 쉽게 출제했다."

-쉽게 출제했다고 생각하는 건 선생님뿐일 걸요?

"좋은 대학만 가면 이쁜 여자들이 줄을 섰다. 그러니 공부만 열심히 해라!"

-요즘 이런 말 했다가는 낭패 보는 거 아시죠? 더군다나 좋은 대학 가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듣기만 해도 다 맞출 수 있는 문제였다."

-열심히 들었지만 수업이 어디 5분, 10분 만에 끝나나요? 그리고 한번 듣고 다 안다면 천재 아닌가요?


 사회생활을 하면 으레 강조하는 말은 신뢰, 믿음. 이런 말들이죠. 그러나 사장님도, 상사님, 말단 직원들도 다들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장님이 비장한 표정으로 전 직원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번 일만 잘 되면 보너스야"

-일이 잘 된 게 여러 번이었는데 대체 보너스는 언제 주시나요?

 상사가 훈시를 늘어놓습니다. 상사가 끝으로 묻습니다. "내 말이 맞지? 안 그래?" 그럼 번개같이 "네, 맞습니다."하고 감명받은 표정도 함께 짓습니다. 괜히 토를 달았다가는 밤을 새울지도 모르니까요.

 아침에 늦게 일어나 지각을 했습니다. 어영부영 보내다가 늦게 도착하기도 하고요. 그럼 으레 하는 말은

"차가 막혀서요"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는데, 차 막힌 거랑 뭔 상관일까요?


 가정의 평화를 위해 부부 사이에도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굳건한 믿음을 위해 거짓말이 난무하죠.

 헤어스타일을 바꾼 아내가 남편에게 머리 스타일이 어떻냐고 물어봅니다. 그럼 환한 표정으로 오버액션을 하며 "머리 진짜 잘 어울리는데"라고 합니다.

 술을 마시고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옵니다. 잔소리하는 아내 앞에 절대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는

"딱 한 잔 밖에 안 했어."

 아내가 지인과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외출 시간이 훨씬 지나 눈치를 하자 마지못해 전화를 끊습니다. 그리곤 이 말을 하죠.

"자꾸 왜 그래? 아직 할 말도 다 못 했는데." 세상에, 2시간 넘게 통화했으면서 할 말을 다 못 했다네요.  


 나이 드신 부모님을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바쁜데 왜 왔냐고 하시지만 엄청 좋아하십니다. 반가움으로 맞이했다가 그동안 뜸했던 자식에게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시기도 하죠.

"나이 들어 아프면 죽어야지. 이리 살아서 뭐 하겠냐?"

 이런 말 듣고 마음 편한 자식은 없습니다. 말씀은 이렇게 하시면서 손자 손녀 재롱에 함박웃음을 지으십니다. 그리곤 걸음마 손자를 보며

"우리 새끼, 장가갈 때까지는 살아야지"

 부모님의 말씀 중 도대체 진실은 무엇인가요?  




 만약에요, 누구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거짓말은 절대 나쁜 것이니 어떤 거짓말도 안된다면요. 그래서 진실만을 말한다면 세상은 그만큼 살기 좋아질까요?

 주삿바늘이 무서워 우는 아이에게 주사는 엄청 아플 거니까 단단히 각오하고 맞아라고 하면 아이는 순순히 "예" 할까요?

 지각해서 온 직원에게 이유를 묻자 "재미도 없고 노동력만 착취하는 사장과 아부만 할 줄 아는 상사가 보기 역겨워 오기 싫어도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출근했습니다"라고 하면 책상 빼고 짐도 정리해야겠죠?

 거금을 주고 머리 스타일을 바꾼 아내에게 "그걸 돈 주고 한 머리야? 백날을 바꿔보라. 그 얼굴이 그 얼굴이지. 다 늙은 얼굴이 어디 가냐."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순간 이승과 작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을 자주 하는 부모님께 화가 나서 "언제까지 말만 하실 건가요?"라든가, 손자가 장가갈 때까지 살아야지 하는 말에 "그럼 100살이 넘을 건데요? 그때까지 계시게요?"라고 했다간 천하에 불효자로 남을 겁니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일상의 평화를 유지하고 주위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려면 하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살다 보면 마음에도 없는 말도 숱하게 해야 하고요, 보기 싫고 아니꼽고 치사해도 안 그런 척해야 합니다. 마치 온갖 척을 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너무 척하고 사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을 정도로 말입니다.

 진짜 치사하고 더럽고 아니꼬은 그런 상황에서도 "네, 그럼요, 괜찮습니다. 아주 좋죠."라고 밝은 표정으로 응대합니다. 그리곤 뒤돌아서서 뒤틀린 속을 진정시킵니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소리를 해야 될 때는 하고, 하고 나서 마음은 좋지 않고.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까?  


 선의의 거짓말, 안 좋은 상황에 빠져 있는 상대방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줄 수도 있고요, 겉으로 보기엔 부당하지만 안으로는 좋은 뜻을 담고 있으니 해도 괜찮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적당한 선의의 거짓말은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해도 결국 남을 속이고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행위이니 신뢰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속으로 좋은 뜻을 가졌다 해도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거짓말은 언젠가 들통나기 마련입니다.

 하얀 거짓말을 두고 찬반 토론을 밤새워해도 결론 나지 않을 주제입니다.


 그럼에도 하얀 거짓말은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고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한 방법임은 분명합니다.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처세술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얀 거짓말이라고 해도 정도가 지나쳐 나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는 순간들이 쌓일수록 사는 게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세상이 진실은 은폐되고 거짓과 권모술수에 마음 둘 곳이 없는 게 다들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면 아니라고, 보고 느낀 그대로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는 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눈치 보고 속에도 없는 말을 하며 비위 맞춰야 할 때가 많으니까요. 그럴 필요가 없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한편으로 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가감 없이 속마음을 터놓지 않고 상대방의 기분을 적당히 맞춰주는 하얀 거짓말이 세상을 이 정도라도 돌아가게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뭔가 뭔지, 뭐가 옳은 건지 진짜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얼마만큼의 하얀 거짓말을 하고 살아야 할까요? 새빨간 거짓말보다야 낫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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