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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03. 2020

마음은 눈물로 닦으세요

인터넷을 검색하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몸은 비누로 닦고, 마음은 눈물로 닦아라."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마음은 눈물로 닦아라. 그러고 보면 내가 마음 놓고 펑펑 울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떠올려봤습니다. 지금껏 꾹꾹 참으려고만 했지, 실컷 울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코흘리개 시절, 그때를 회상하면 참 많이 울었습니다.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며 울고, 야단맞아 울고, 형제끼리 티격태격하다 울고, 무서워서 울고, 친구와 싸우다 울었습니다. 장난치다가도 울고, 넘어져서 울고, 숙제 안 해서 매 맞다가 울었습니다.  

훌쩍거리는 녀석들을 보며 선생님이 훈계하셨습니다.

"그만 울어라. 자고로 남자는 일생에 딱 3번만 울어야 한다. 태어날 때 한 번,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한 번, 그리고 나라가 망했을 때 한 번!"

순간 나는 '끝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생에 3번은 고사하고 하루에 3번 넘게 운 적도 있었는데??

 

갓난아기는 하루에도 시도 때도 없이 울고요, 말 못 하는 걸음마 아기는 1달에 수십 번 넘게 웁니다. 아파서, 슬퍼서, 심심해서, 축축해서, 배고파서 웁니다. 운다는 의미는 자기를 봐달라는 표현 방식이니까요.

아이가 말을 하면서부터 우는 횟수는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10대 전까지는 남자 아이나 여자 아이나 비슷하게 운다고 합니다. 10대를 지나면서 남자아이들이 우는 빈도는 훨씬 적습니다.

여자들이 많이 웁니다. 여자가 의존성이 강하고 사회 분위기는 아직까지 여성의 눈물에는 관대합니다. 감정이 남자보다 풍부한 것도 한몫하고요.

나이 들면서 감정이 메말라갑니다. 자연스레 눈물도 줄어듭니다. 더군다나 자라면서 웃음을 자주 보이면 헤픈 녀석으로, 눈물을 자주 보이면 나약한 인간으로 여깁니다.

어릴 때 남자아이들의 싸움은 눈물로 승패가 갈라집니다. 싸움을 잘하다가도 눈물을 보이는 순간 지는 걸로 간주됩니다. 남자의 눈물은 놀림감이 됩니다. 그러니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습니다.

웃음도 눈물도 자연스러운 감정의 반응인데도 마음대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며 살아갑니다.   




눈물에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슬플 때는 누구나 눈물을 흘립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는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대성통곡을 합니다.

아파도 눈물이 납니다. 병이 깊어 통증이 극심할 때도 눈물이 절로 나고요, 마음의 상처를 받아도 눈물을 흘립니다. 분하고 억울할 때도 눈물이 글썽거립니다. 화를 주체할 수 없을 때 흘리는 분노의 눈물도 있습니다.

기쁨이 극에 달했을 때도 웁니다. 행복에 겨운 환희의 눈물입니다. 오랜 노력 끝에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가 애국가가 울리는 동안 감격에 겨워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 말입니다. 그동안 힘겨웠던 고통을 이겨낸 값진 눈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가 극적으로 재회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말할 것도 없고 헤어진 연인이 서로를 그리워하다 다시 만나면 눈물부터 터뜨립니다.

우는 모습도 다양합니다. 대성통곡을 하고, 펑펑 울기도 하고, 훌쩍거리기도 하고, 애써 눈물을 참으려 하늘만 쳐다보기도 합니다. 타인의 가슴에 안겨 서럽게 울기도 하고요. 너무 기뻐 깡충깡충 뛰며 울고, 고마워 눈물 흘리기도 합니다. 입가는 함박웃음이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는 모습입니다.


약해 보이는 눈물이 우리에게 주는 이점은 많습니다.

펑펑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는 걸 느낍니다. 감정이 정화됩니다.

스트레스받을 때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은 우리 몸에 남아 독이 됩니다. 눈물은 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합니다. 스트레스를 낮춰 준다는 의미입니다. 눈물을 꾹꾹 참을수록 우리 몸에 독을 쌓고 있는 거라고 합니다. 가슴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을 밖으로 내버리지 못하면 마치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화병에 걸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펑펑 울며 흘리는 눈물은 고통과 답답함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혼자 있을 때는 울지 못하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깨에 기대 그제야 울음을 터트립니다. 슬픔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자연스레 표현되고 같이 엉엉 울고 나면 서로가 더 친밀해집니다. 재회의 기쁨도 눈물로 표현하면 관계가 회복됩니다.

자국 선수가 진 사실에 화가 난 관중들이 승자가 흘리는 눈물을 지켜보다 마음에 일던 시기심이나 적개심이 완화되기도 합니다. 여자의 눈물에 약해지는 남자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울면서 왔다가 눈물로 인생을 정리하며 돌아갑니다. 인생의 시작은 울음, 마무리는 눈물입니다. 그런데 사는 동안 우는 건 왜 안된다고 할까요?

“흐르는 눈물은 괴로우나 그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흐르지 않는 눈물이다”라는 아일랜드 속담이 있습니다.

운다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악어의 눈물도 있지만 눈물은 긍정적인 기능이 많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워하지 말고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게 놔두라고 합니다. 힘든 감정을 표현하고 마음에 담긴 부정적인 감정을 꺼낼 수 있게 말입니다.

다 큰 어른이라고 절대 눈물을 참아야 한다는 생각도 버리라고 합니다. 눈물을 흘린다는 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슬픔, 이기심, 집착, 미움,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려는 시도입니다. 나이 들수록 눈물을 잘 흘려야 한다고 합니다. 눈물이 건강의 필수 요소라고 하면서요. 그러니 힘겨울 때 펑펑 우는 것도 괜찮습니다.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할 때는 마음껏 울어야 합니다.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실컷 말입니다.

어차피 나이 들면 드라마를 보다가 괜히 눈물짓고 그러지 않습니까?

몸은 비누로 닦아 내듯이 마음은 눈물로 닦아냈으면 좋겠습니다.



P.S

여담으로 요즘도 대한민국 남자는 3번 울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어떤 때 울어야 하는지는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고 합니다.

남자는 3번만 울어야 하는 이유, 대체로 남자들은 타인에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 자체가 매우 수치스럽고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아무튼 달라진 3번은  태어나서 한 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한 번. 또 한 번은 그곳을 맞았을 때(!) 아님 거울을 보니 이마가 허허벌판이 되었을 때라고 하네요.

다행히 대한민국이 망할 리는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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