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나무처럼
아직도 활개 치는 코로나 때문에 생활 반경이 제한적입니다. 어디를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고 누구 하나 마음 편히 만나지도 못하니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아무리 즐거운 나의 집이라고 하지만, 피와 살이 섞인 가족이라고 하지만 매일 부대끼고 시달리면 지치고 짜증이 나기 마련입니다. 차라리 그럴 바엔 산책이 낫겠다 싶어 동네를 한 바퀴 걷습니다. 산책을 하다 어제도 그 자리,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와 눈이 마주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늘 한결같은 나무를 바라보며 심란했던 마음을 진정시켜 봅니다.
나무는 혼자 힘으로 살아갑니다. 이 땅에 힘차게 뿌리를 내렸지만 돌보아주는 이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생명을 먹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자연이 주는 햇빛을 받아 광합성으로 살아갑니다. 욕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무는 순환의 균형으로 살아갑니다. 뿌리로 물을 빨아들이고 잎으로 수분을 증발시킵니다. 좋은 산소를 마음껏 내뿜어 사람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선사합니다. 1년 365일 매일 선사해도 대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나무는 자랄 때와 멈출 때를 알아서 스스로 비우며 살아갑니다. 푸르른 실록으로 세상을 파랗게 수놓았다가 빨간 단풍으로 낭만을 선물합니다. 때가 되면 모든 걸 내려놓으며 다음을 준비합니다. 아쉬워하거나 미련도 없어 보입니다. 물론 원망도 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반려 식물의 매력에 흠뻑 빠진 친구가 알려준 식물 예찬론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무를 비롯한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고 귀띔해 줍니다. 햇빛과 습도 그리고 적당한 거리의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적당한 거리의 무관심'이라... 사람도 다를 바 없습니다.
믿고 사는 밝은 사회를 만들려면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한결같은 관심을 기울이라고 합니다만 늘 관심만 받는 입장이라면 엄청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사람 사이에도 필요한 건 적당한 거리의 무관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살다 보면 멀어질 때가 있습니다. 점점 무관심해지다 소원해집니다. 안 보면 마음도 영영 멀어집니다. 반면 가까이 지낸 친구나 동료와 하루아침에 사이가 잘못되어 등을 돌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특히나 믿었던 사람과 관계가 틀어지면 가까웠던 사이만큼이나 충격 또한 큽니다.
지나치게 가까이하면 뜨거운 불꽃에 대여 상처를 입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외로움에 시달립니다.
가까워질수록 존경과 사랑을 기대하는 마음은 커져갑니다. 멀리서는 아름답게 보입니다만 막상 가까이서 겪다 보면 오히려 실망하고 마음만 아팠던 적도 있지 않았습니까?
불가근 불가원 (不可近 不可遠)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너무 가까이도 하지 말고, 너무 멀리도 하지 마라"라는 뜻입니다. 서로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느슨해지고, 너무 멀어지면 자칫 끊어질지 모릅니다. 인간관계는 어느 정도 팽팽함을 유지하고 있을 때 최적의 상태가 됩니다. 마치 연애할 때 밀당하듯이 말입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것이 좋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을 한자로 쓰면 사람인(人)과 사이 간(間)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틈이 있어야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人)이 된다는 뜻입니다.
빼곡한 숲을 이룬 나무들은 멀리서는 꼭 달라붙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저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나무들도 적당한 거리가 있기에 스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늘 높이 가지를 쭉쭉 뻗어 햇볕을 듬뿍 받고요, 세찬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흔들리며 이겨낼 공간이 됩니다.
나무와 나무가 만든 사이는 무더운 여름엔 푸르른 실록을 이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요, 삶에 지친 이들이 편히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적당한 거리가 없는 나무들은 잘 자라지 못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외로워 보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아이에게 관심이란 이름으로 엉뚱한 짓은 안 하는지 시시때때로 들여다봅니다.
직장에서 관심이란 이유를 달고 일은 제대로 하는지 시시콜콜 보고를 받고 틈만 나면 확인합니다.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어도 한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으면 애틋함은 고사하고 숨 막혀 죽을 지경이 될지 모릅니다.
관심이 아니라 감시가 되어 모두를 힘들게 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적당한 거리의 무관심이 마음의 여유와 서로의 믿음을 가져옵니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 불행을 몰고 오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행복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되기도 합니다.
친해지려고 빨리 다가가기보다는 천천히 오랜 시간 서로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면서 마음을 쌓아가는 인연이 오래가지 않을까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무심한 듯 함께 자라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는 것만큼이나 어느 정도 무관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끼리도 적당한 거리의 무관심, 불가근 불가원입니다. 그렇다고 불가근과 불가원을 떼어버리면 곤란해집니다. 불가근하면서 불가원도 함께 해야 합니다. 적당한 거리의 무관심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