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멍, 물멍, 숲멍, 바람멍. 멍 때리기를 아십니까?

by 공감의 기술

이색 대회가 열렸습니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생각 없이 넋을 놓고 있습니다. 이 대회의 규칙은 단순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참가자들은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몸에 심박 측정기를 지닌 채로 말입니다. 휴대전화는 금지고요, 잡담도 금지입니다. 시간을 확인하거나 웃거나 독서도 안된다고 합니다. 바로 '멍 때리기 대회'입니다.




멍 때리기 대회 뿐만 아니라 요즘은 멍 때리려고 일부러 조용한 장소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불멍'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캠핑장에서 불을 피워놓고 불을 바라보는 것을 불멍이라고 합니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를 들으며 타들어가는 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잡념은 사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불의 반대, 물로 멍 때리는 '물멍'도 있습니다. 조용한 강가나 바닷가에서 잔잔한 물결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바라보는 멍 때리기입니다. 물은 항상 아래로 흐르는 겸손함, 모든 걸 안고 가는 넉넉함. 어떤 형태로도 변할 수 있는 유연함. 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복잡하던 마음이 단순해집니다.


불멍, 물멍 뿐만이 아닙니다.

나무 그늘 아래 초록빛 숲을 보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지친 심신을 달래는 '숲멍'도 있고요,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바람이 부는 언덕에 멍하니 앉아 그저 바람을 즐기는 '바람멍'도 있습니다. 숲멍이나 바람멍은 한여름 더위를 날려줍니다. 아울러 밤하늘에 수놓은 찬란한 별을 바라만 봐도 찌든 마음이 상쾌해지고 넓어집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바 있는 ‘소리멍’도 있습니다. 노래하는 그릇 ‘싱잉 볼’을 이용하는 방법인데요. 청동 또는 크리스털 소재의 싱잉 볼을 나무 막대기로 치면 ‘웅~’ 하는 잔음이 30~40초 정도 이어집니다. 이때 눈을 감고 소리가 울리는 대로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몸과 마름이 편안하게 이완된다고 합니다.




멍 때린다... 멍 때린다는 건 뭘까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열변을 토하고 계신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 운동장을 멍하니 쳐다보곤 합니다. 모래가 날리는 텅 빈 운동장을 이유도 없이 그저 보고만 있습니다.

일을 하다 시선이 창문 너머로 향합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과 자동차, 서 있는 나무, 하늘을 떠가는 구름. 이런저런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습니다.

눈은 한 곳을 향해 있지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몽롱한 상태라고 할까요, 마치 영혼이 로그아웃된 듯한 그런 느낌을 말합니다.


우리 뇌는 24시간 풀가동을 합니다. 하루 종일 일상에 지친 심신은 잠을 자면서 휴식을 취하지만 뇌는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오늘 있었던 많은 정보와 기억을 저장하고 정리를 하는 건 두뇌만이 할 수 있으니까요.

뇌는 무게가 우리 체중의 2-3%에 불과하지만요, 에너지 소모량은 전체 20%를 넘을 만큼 다양한 감각과 기능을 감당하는 기관입니다. 이런 두뇌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일을 합니다. 평소보다 많은 일을 겪거나 머리를 사용하였다면 과부하가 걸릴 수 있고요. 이럴 때 두뇌가 휴식을 취하고 싶어 보내는 일종의 신호가 '멍 때리기'라고 합니다. 멍하니 있는 순간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멍 때리는 동안에 보이는 현상은 뇌파가 느려지고 맥박과 심박수가 낮아지게 되어 심신이 안정됩니다. 마치 명상을 하는 효과와 같다고 합니다.

멍 때리기만 잘해도 우리의 머리를 쉬게 하고 스트레스를 예방하고 감정도 잘 다스리게 됩니다.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기억력과 학습력, 집중력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멍 때리기를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불멍, 물멍, 숲멍, 바람멍, 소리멍까지. 요즘은 이런 멍 때리기를 찾아서 합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노력하지 않아도, 하려고 하지 않아도 멍하니 있는 그런 시간이 자연스럽게 많았던 것 같습니다. 멍 때린다고 선생님한테 야단맞기도 했으니까요.

원치 않아도 그렇게 쉽던 멍 때리기가 이젠 노력을 해도 잘 안될 만큼 왜 이렇게 어려워진 걸까요?

나이가 들면서 멍하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게 됩니다. 멍하게 있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면 세상을 힘들게 살다 보니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좋은 생각보다는 걱정거리가 많아졌고요. 생활이 힘들어지고 고민거리도 적지 않다 보니 멍하게 있으려고 해도 이런저런 상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 들어옵니다.


세상살이가 지칠 때면 이런 바람을 가지곤 합니다. '어디 경치 좋은 곳에 가서 한 1년 살다 오고 싶다'라고요. 그러면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것 같은 몸과 마음이 회복될 것 같은데 말이죠. 현실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만 하루 이틀이라도 멍 때리고 싶어서, 근심 걱정 모두 잊고 싶어서 아무 생각하지 않는 공간으로 찾아가는 거 아닐까요? 시원한 바다가 펼쳐진 해변으로,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으로,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는 울창한 숲 속으로 말입니다. 그런 공간에서 조금 더 쉽게 멍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심 걱정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으니 그게 바로 힐링이겠죠.


살아내기도 만만찮고 자고 나면 우울한 소식만 들려옵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요, 잠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이럴 때일수록 잠시 멍해지는 순간이 있으면 좋을 듯합니다.

머리를 잠시 쉬게 하는 휴식과도 같은 '멍 때리기'가 필요한 요즘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죽하면 멍 때리기 대회가 해마다 여러 곳에서 열리겠습니까?




지친 뇌를 잠시 쉬게 하는 멍 때리기, 집에서도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집에 촛불을 켜놓고요, 어항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봐도 좋고요. 그리곤 가만히 앉아서 그냥 멍~ 때리면 끝입니다.

정신이 건강해야 삶이 행복합니다. 가끔은 멍 때려도 좋습니다. 충전을 위한 휴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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