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다 원하는 색깔이 없을 때 이것저것 섞어 봅니다. 빨강, 노랑, 파랑. 이 세 가지 색만 갖고도 어떤 색을 얼마만큼의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색이 나오니까요.
색깔을 가지고 저마다의 감정을 표현하고, 다양한 성격을 색깔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색깔마다 여러 가지 상징이 있고 상징마다 좋고 나쁨이 있습니다.
기운이 하늘까지 뻗치는 정열의 색 빨강. 저돌적인 빨강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파랑을 섞어봅니다. 빨간색이 점점 모습을 달리합니다. 파랑을 추가하다 보면 어느새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보라색이 나옵니다. 욕심이 나서 섞는 게 지나치면 촌스러울 수도 있고요, 자칫 크레이지 보라가 되어버립니다.
바다의 색인 파랑은 냉정해 보입니다. 너무 파랗게만 보이면 우울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때는 희망의 상징 노랑을 섞어봅니다. 노랑의 유쾌, 경쾌함이 우울한 파랑을 실록의 초록으로 점점 변화시킵니다. 덩달아 가라앉았던 기분도 상쾌해집니다.
밝은 노랑이 정도를 지나쳐 경솔해질 때가 있습니다. 때마침 넘치는 기운을 주체하지 못하는 빨강과 마주합니다. 피 터지는 싸움이 일어날까 봐 걱정이 됩니다. 오히려 서로 눈이 맞아 오렌지색 진한 연인 사이가 됩니다.
그림에 관심이 없더라도 좋아하는 색깔은 하나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파란색을 좋아해서 파란색의 종류를 찾아봅니다. 세상에, 파란색 종류가 셀 수 없이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랍니다. 게다가 이름도 재미있습니다. 기껏해야 알고 있는 파랑은 푸른색, 파란색, 시퍼런 색 정도였는데 파란색의 종류만 10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름도 멋스럽게 어떤 건 재즈 블루, 또 어떤 건 비 오는 런던 블루라고 부릅니다. 이 말고도 스카이 블루, 시안 블루, 오리엔탈 블루, 인디언 블루, 로열 블루... 파랑만 해도 이 정도니 다른 색깔도 마찬가지겠죠.
색깔의 비율에 따라 달라지는 색도 그렇지만 그 이름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제법 그럴싸한 작명법을 보면서 내가 알지 못한 색깔의 세계가 이리 다양한 줄 미처 몰랐습니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쿨한 것도 있고 어떤 것들은 운치도 있습니다. 그리고 왜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조금 의아해할 만한 그런 색깔들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여럿 색깔로 하루 일상을 표현해봅니다.
베이지색을 좋아합니다. 이왕 좋아하는 베이지색에 화려한 노랑을 입힙니다. 베이지색에 금색이 나더니 골드 베이지가 됩니다. 좀 있어 보입니까? 촌스럽지 않나 싶은데 옷가지는 물론 머리 염색이나 네일에도 즐겨하는 색깔입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화가 났습니다. 직장에서 열 받고 집에서는 아이들이 말썽만 피우고요,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분노의 빨간색인 화가 분출합니다. 어제의 색깔인 분노의 빨강을 영어로 표현하자면 앵그리 레드였습니다. 앵그리 레드, 느낌이 확 오지 않습니까?
오늘은 어제의 나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마음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사소한 일에 짜증 내지 않고요,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마음을 비우며 조용히 지내려고요. 그래서 오늘 색깔은 투명 화이트로 정했습니다. 무색무취, 마치 무소유가 된 것 같아 정신이 맑아지고 차분해집니다.
추운 겨울에 햇살 좋은 날이면 앙고라 그레이가 생각납니다. 그레이 회색은 조금 칙칙한 느낌이지만 추운 날씨에 따뜻한 목도리나 모자 색깔로 너무나 잘 어울립니다. 앙고라 그레이, 포근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양털 같은 이불을 덮은 따뜻한 느낌이 추위를 잊게 해줍니다.
같은 색상의 계열이라도 자세히 보면 저마다 특징이 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활발하고 정열적인 빨간색의 성격이지만 핑크빛 분홍의 섬세함과 편안함을 가진 사람도 있고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냉정한 파란색의 사람도 깊은 내면에는 오렌지색 주황의 친밀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밝은 노랑의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도 있고요, 촌스럽게 보이던 보라의 사람이 센티멘털 파란색 사람을 만나 고급스러운 인격으로 변모하기도 합니다.
내향적이니 외향적이니, 감성적이니 논리적이니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단정 짓기에는 사람 성격도 그리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색깔과 색깔이 만나 또 다른 색깔을 만들어 내듯이 나를 변화시키고 내 안의 부족한 색깔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갖고 싶은 색깔이 있으면 찾아가서 채워도 보고요.
하루에도 여러 번 변하는 감정 때문에 지치고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지금 마음 상태에 색깔을 입혀보면 어떨까요? 꿀꿀한 기분에 근사한 색깔을 붙이면 흔들렸던 감정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은데 말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수많은 색깔과 이름을 보면서 내가 살아온 삶의 색깔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단순히 파랑이라고 하기엔 밋밋합니다. 파랑이면 어떤 종류의 파랑이었을까요?
다양한 파란색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보는 만큼, 내가 구별해서 색을 보고 표현하는 만큼 존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비단 색깔뿐이겠습니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아는 것만큼 본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 세상을 좀 더 크게 넓게 멀리 바라보며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내가 물감의 색깔이라면 어떤 이름을 짓고 싶습니까? 멋진 이름 생각해 보시죠? 색깔을 하나 만들어 내듯이 오늘 기분에 맞는 이름도 지어보면 어떨까요? 지루한 일상이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다양한 색깔의 세계, 오늘은 어떤 색깔로 살아가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