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킨 곳, 잘 풀고 계십니까?

by 공감의 기술

어릴 때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했습니다. 열심히 받아 겨우 다 썼는데 틀린 개수만큼 손바닥을 맞았습니다. 그 뒤부터는 이래저래 받아쓰기가 싫어졌습니다.

숫자를 처음 배울 때 1+1=2부터 익힙니다. 더하고 빼는 건 할만한데 구구단을 외우라고 합니다. 기껏 다 외웠더니 이젠 나누라고 하네요. 산 넘어 산, 외울 게 너무 많고 하기도 싫어 몸을 비비 꼬곤 했습니다.

그 와중에 좋아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하얀 종이 위에 뚜렷한 형체는 없고 숫자가 적힌 점만 있습니다. 점과 점을 따라 이어서 그려나가면 마지막에 어떤 그림 하나가 완성됩니다. 그게 무엇인지 맞히는 숫자 그림 잇기입니다.


1, 2, 3, 4.. 숫자를 제대로 모르는 아이는 숫자 하나하나 고민을 하며 이어갑니다. 중간에 잘못 이어버리면 그림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괴물로 둔갑하고 맙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숫자를 어느 지점에서 잘못 연결했는지 찾아냅니다. 숫자를 알고 제대로 이어가면 예쁜 그림이 그려집니다.

지금도 아이들 교육 교재로 나와 있던데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납니다만 어찌보면 지금 사는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다 보면 잘못 이어 엉키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설명서대로 잘 따라 만들다가도 부품 하나 잘못 끼우는 순간 뒤죽박죽은 시작됩니다. 잘못 끼워진지도 모른 채 겨우겨우 완성하지만 한눈에 봐도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픈 수학 시험. 근데 오랜만에 아는 문제가 나와 기분 좋게 풀었습니다만 숫자 하나 착각하는 순간 모든 수고는 헛수고가 됩니다.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지내다가도 상처 주는 말 한마디로 관계가 꼬이기도 하고요, 섣부른 행동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계획을 세우면서 고민에 빠지고 혹시나 잘못될까 봐 플랜 B도 만들기도 하지만 계획대로 착착 들어맞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문제는 술술 풀리기를 원하고, 하는 일은 별 탈 없이 무사히 끝내고 싶습니다.

척하면 알아듣는 사람들만 있으면 좋겠고요.

시도하는 일은 실패 없이 성공했으면 하고 바라지만 어디 그러기가 쉬운 가요?

문제는 엉키기 마련이고 문제 하나 겨우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이어 터집니다.

남이 먼저 나를 알아주기만을 바라다가는 관계는 시작도 못하고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격려해 주지만 그렇다고 실패가 반가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이 엉켜 있을 때는 풀어보려고 애를 쓸수록 더 꼬이기도 합니다. 시도하는 것마다 얽히고설켜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한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당장 급한 마음에 한꺼번에 해결하려 들면 전후좌우 상하가 꽉 막혀 오리무중에 빠집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베어버리고 싶지만 그건 알렉산더 대왕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일개 백성으로선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엉킨 곳이 있거나 문제가 꼬였을 때는 걱정만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처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몇 번이고 봐도 내가 이은 그림이 무언지, 다음 단계는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난감합니다.

숫자 하나 잘못 이어 그림 자체가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엉망이 된 지점 주위를 아무리 쳐다봐도 꼬인 점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럴 때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처음부터 숫자를 다시 따라가는 겁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점을 이어나가다 보면 어딘가 잘못 이어진 곳을 발견합니다.

세상 일도 어딘가 엉키고 꼬인 곳이 분명히 있습니다. 더 멀리, 더 크게 내다보지 못하고 내 주위에서만 맴돌며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꼬인 문제를 처음부터 차근히 들여다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뒤엉켜 있는 것을 발견해 내니까요.


뭔가 잘 안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그냥 '이것도 과정이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합니다.

'일이 왜 이렇게 되지?' '나는 왜 안되지?' '나만 이 모양인가?'라는 생각은 도움이 안 됩니다. 조급해지기만 하고 원망도 생깁니다. 삶을 살다 보면 누구나 겪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면 꼬인 문제가 조금은 편하게 대해집니다. 그리곤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처음부터 살피는 게 어쩌면 가장 빠른 해결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엉킨 곳 잘 풀고 계십니까?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내가 그려낸 것이 무언지, 다음 스텝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도, 답도 보이지 않으십니까? 다시 한번 차근히 1번부터 꼭짓점을 따라 이어나가 보세요. 어딘가 엉킨 곳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답이 없는 삶에 오늘도 답을 찾아 하루를 살아갑니다.

엉킨 곳은 차근차근 풀고 점과 점을 이어 선이 되며 만들어지는 우리의 삶.

오늘도 무난하게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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