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살아가는 것이죠. 생명, 목숨 그 자체를 말합니다. 이것이 끝나는 순간은 죽음입니다.
삶과 죽음, 철학과 종교는 이 두 가지 의미를 탐구하는데 2천 년이 넘게 걸렸습니다만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삶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점점 자라납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라면 말이죠.
육체는 성인이 되면 다 자라지만 정신은 생이 다할 때까지 자람이 멈추지 않습니다. 편안함보다는 고통과 번뇌가 더 많은 게 삶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삶의 무게에 할 때 삶.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그 삶.
이 삶이라는 한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삶의 윗부분에는 ㅅ과 ㅏ가 있습니다.
한자로 ㅅ은 사람인(人)을, ㅏ는 점 복(卜)을 닮았습니다.
사람 人이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서있는 모양처럼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앞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삶의 길흉화복을 점쳐 보지만 미래는 언제나 미지의 영역입니다.
내일 당장 어찌 될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서로를 믿고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삶의 받침에는 ㄹ과 ㅁ이 들어가 있습니다.
ㄹ은 직선이 아닙니다. 평탄한 탄탄대로가 쭉 펼쳐지나 싶다가 힘겹게 올라야 할 오르막이 나오고, 때론 가파른 내리막을 만납니다. 마치 사람이 평생 다녀야 하는 길을 닮았습니다.
ㅁ은 한눈에 봐도 입 구(口) 자와 비슷합니다. 한편으로는 내 몸 하나 뉘고 쉴 공간인 집을 닮았네요. 먹어야 사는 것이요, 적어도 내 몸 하나 누울 자리는 있어야 한다는 의미 같습니다.
삶이란 한 글자에 한평생이 담겨있습니다.
산다는 건 앞날은 어찌 될지 모른 채로 사람과 사람이 미지의 세상에서 만나 길을 만들고 걷고 달립니다. 먹고살기 위해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 날이 저물면 방 한 칸에 들어와 오늘을 마무리합니다. 다들 이러지 않나요? 그러지 않는 인생이 있을까요?
사는 건 즐거울까요, 아님 괴로울까요? 인생은 고해라는 말처럼 고통의 바다 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통의 바다에만 있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고통이 많다고 하지만 삶에는 즐거움도 있기 마련입니다.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만은 변치 않는 사랑과 우정은 얼마든지 나눌 수 있습니다. 앞날은 모르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좋은 인연을 만들고 신비한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생명을 키우는 일은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분명 힘든 일이지만 그보다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가치가 있듯이 힘들어도 즐거움은 언제나 손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그러니 삶을 전체적으로 보면 그 고통과 즐거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갑니다. 한 치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이 ㄹ과 ㅁ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듯이 말입니다.
삶은 끝끝내 오리무중입니다.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 지금 아무리 잘 살고 잘 나갈지라도 앞날은 모르는 법이니까요.
그럼에도 오늘은 오늘의 시간이 주어졌고 다들 자기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찮아 보이는 받침 같은 ㄹ과 ㅁ은 삶의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받침 ㄹ과 ㅁ사이에서 우리는 오늘도 밥을 먹고 휴식을 하며 힘을 내고 있으니까요.
기댈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오늘도 ㄹ을 따라 걷습니다. 오늘을 잘 버텨낸 저녁에는 나만의 쉼터 ㅁ에서 두 다리 뻗고 편안한 휴식을 즐깁니다.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는지 이 역시도 모릅니다. 그저 지금을 충실히 사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일 거예요. 한 번뿐인 삶인데 후회는 덜 남기고 보람은 많이 남겨야 잘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