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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Jun 29. 2021

나만의 쓸데없는 짓이 인생의 보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어렸을 때 어른들께 자주 혼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짓은 그만하고 공부나 열심히 해!."

 "쓸데없이 이것저것 하지 말고 한 우물만 파!" 


 자라면서도 핀잔을 듣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말고 니 일이나 똑바로 해."

 "야, 넌 왜 맨날 쓸데없는 짓만 하고 돌아다니냐?" 


 어른이 되고 나서 생각을 달리하고 행동을 남다르게 하려니 또 같은 말을 듣습니다.

 "쓸데없이 오지랖이야?"

 "또 쓸데없는 생각 하네. 좀 현실적으로 살아!"  




 연필을 입에 물고 교과서 대신 밤하늘 별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습니다.

 세상은 전쟁이 끊이질 않는지, 모두가 다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지 고민도 했었고요.

 연습장에 문제 대신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무는 낙서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들키면 야단을 들었고 나이 들수록 잊혀진 지난날의 쓸데없는 짓이었습니다. 


 목표 의식이 뚜렷한 세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목적 없는, 목표 달성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면 쓸모없는 짓들로 단정 짓고 가차 없이 버리는 교육 시스템에서 돌고 돌았습니다.

 지성인이라는 대학은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취업을 준비하는 곳으로,

 고등학교는 이름 있는 대학으로 가기 위해 공부하는 곳이며,

 중학교는 더 좋은 대학에 많이 입학시키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위한 곳이었습니다.

 초등학교도, 유치원도 하다못해 어린이집까지 다니는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사회가 인정하는 쓸모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길이자 방법이었습니다. 그 이외의 것은 모두 쓸데없는 짓이었습니다.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나의 쓸데없는 짓은 억누르며 살았습니다. 사회가 원하는 역할을 완전무결하게 해내려고 발버둥 치면서 말입니다.

 윗사람을 존경하고 맡은 바 소임은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완수해내는 자세,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이익이 되느냐 안되느냐로 판단되는 일의 가치,

 개인보다는 조직, 조직보다는 나라가 우선이라는 사명감으로 무장해야 성실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잘못될지 몰라 조마조마하며 이 역할을 떠맡아야만 했습니다. 그럴수록 쓸데없는 짓은 잊혀져만 갔습니다.  




 누가 봐도 쓸데없게 보이는 짓이 세상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캘리그래피를 배웠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한 이는 훗날 인문학과 기술을 결합한 아이폰을 만든 혁신의 대명사, 스티븐 잡스였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껌이나 콜라, 신문을 팔고, 할아버지의 채소가게에서 일을 하고, 핀볼 기계를 이발소에 설치해 장사를 하며 돈을 벌고 모으는 데 관심이 많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오마하의 현인, 위대한 투자자 워런 버핏이었습니다.

 그때는 쓸데없는 행동일지 몰라도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꿈을 이룬 위인들을 보며 학문과 교육은 무엇이 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말을 되새겨 봅니다. 


 쓸데없는 짓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정할까요?

 어릴 때는 쓸데 있고 없고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갈수록 쓸모 있다며 해야 하는 일들에 치여 내가 하고 싶은 꿈은 쓸모없는 짓이 되어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이제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쓸데없는 짓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쓸데없는 짓을 하던 그 시절이 이제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그리워집니다.

 쓸데없는 짓이라고는 하지만 그 짓은 하고 싶은 고민이자 놀이였습니다.

 어른들 가르침대로 쓸모는 있을지 몰라도 재미없는 일에 치여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게 안타깝다 못해 억울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쓸데없이 보여도 그 사람에게는 목표일 수 있고,

 보기에는 하등의 쓸모없이 보여도 그 사람은 꿈을 향한 도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쓸모 있고, 없고의 가치관에 묻혀 진짜 원하는 삶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살아왔습니다. 




 쓸데없는 짓이라 핀잔 들었던 일들을 꾸준히 했다면 어쩌면 지금쯤 사회에 기여하는 쓸모 있는 일이 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있으나 마나 한 쓸모없는 존재가 아닌 쓸모 있는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하며 지난날의 꿈을 떠올려봅니다. 그러고는 가슴에 묻어놨지만 어영부영 미루어 왔던 질문을 슬쩍 꺼내봅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뭘까?'  


 평생 쓸모 있는 일이라며 시키는 대로 하느라 쓸데없는 짓을 하지 못하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쓸모 유무의 판단이 논리적이나 모두가 가야만 하는 길이 아닌, 타인의 잣대를 가지고 자신의 호기심과 능력을 판단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이제는 쓸모 있고 없고를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가슴에게 판단을 맡깁니다. 


 유용, 무용을 떠나 마음에서 하고 싶어서 하는 일,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이 질문의 답을 열심히 찾아봐야겠습니다.

 '나만의 쓸데없는 짓이 숨겨진 보물이다'라는 말처럼 인생을 보물처럼 찬란하게 빛나게 해 줄지도 모르니까요.  







사진출처 NAVER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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