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속담은 뭐니 해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타생지연(他生之緣), ‘다른 생의 인연’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 길에서 소매를 스치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전생의 깊은 인연에서 비롯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옷깃만 스치는 그 찰나의 순간, 찰나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75분의 1초, 0.013초라고 합니다. 현생에서 찰나의 순간이 전생에서는 깊은 인연이었다고 하니 지금 만남을 소중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어느 구름에 비 들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초겨울이 되면 여기저기서 첫눈이 내렸다고 야단법석입니다. 첫눈 내리는 날 연인과 함께 첫눈을 받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길래 연인들은 첫눈 내리기만 학수고대합니다. 근데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여기는 눈 내린 흔적이 없어 하루에 몇 번이고 흐린 하늘 어느 구름에 눈이 들어 있는지 자주 살펴보게 됩니다.
농경시대에는 첫눈이 내리면 다음 해에 풍년이 든다고 좋아했습니다. 눈이 오지 않으면 겨울 가뭄이라고 해서 내년 농사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합니다. 기다리던 첫눈이 내리면 다음 해 농사의 첫 삽이 잘 떠졌다는 의미였기에 모든 백성들이 기뻐했습니다. 첫눈 오는 날은 임금을 속여도 벌을 받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첫눈은 귀한 존재였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지만 좋은 인연이 있으면 나쁜 인연도 있기 마련입니다.
둘도 없던 단짝, 남몰래 가슴속에 흠모했던 짝사랑, 마음 한편에 아직도 어렴풋이 남아 있는 첫사랑까지, 모두 아련한 추억의 인연이었습니다.
가슴 찢어지는 아픔만 주고 떠나간 사랑, 두 번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간들은 그리 유쾌한 인연이 아니었습니다.
살아가는 순간마다 어느 찰나가 마지막이었는지 모르는 숱한 만남도 있었습니다.
인연은 때에 따라 변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소중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날수록 부담만 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좋게 만들어가면 좋은 인연이 되고 나쁘게 만들면 악연이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연을 맺고 끊는 게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인연들이 내 주위를 왔다가 떠나갔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물 흘러가듯 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인연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어디엔가 다들 잘 있겠지'라며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옛 추억이라는 단어로 소환도 해봅니다.
<인연>의 저자 피천득 선생은 인연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라고요.
인연으로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귀인을 만나 어려움이 술술 풀리는가 하면 진절머리 나는 악연을 만나 삶이 꼬이고 애먹기도 하니까요.
만나야 인연이 되는 걸 보면 삶 자체가 인연, 삶은 인연을 맺고 함께 만들어가는 여정입니다. 삶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듯이 인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단순할 때도 있지만 복잡하고 오묘할 때도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 우리들 곁에 있는 인연, 당연히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려면 내가 먼저 마음을 나누고 진심을 다해 사랑을 주고받으며 소중히 간직해야겠다는 당연한 다짐을 해봅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다 보면 나쁜 인연이라 해도 좋은 인연으로 바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언제 내릴지 모르는 첫눈처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귀한 인연.
저 하늘 어떤 구름에 눈이 들어있는지, 이 땅 어느 길목에서 귀인을 만나게 될지 모르니 조심스레 옷깃 여미는 마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어떤 인연이든 소홀히 하지 않고 소중하게 이어가다 보면 귀한 인연이 되리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작은 인연들로 아름다울 수 있는 인생이기에
첫눈이 오는 만큼이나 귀한 인연으로 맺어지길 기대하며 삶을 열어갑니다.
오늘은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