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엔 화려한 문신, 얼굴엔 험상궂은 인상을 한 패거리들이 거친 말을 내뱉으며 내 옆을 지나갑니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어버립니다. 숨소리든, 발자국 소리든 조금이라도 내면 안될 것 같습니다. 조마조마 긴장의 극치를 달립니다.
일을 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성깔이 까탈스럽기로 소문이 자자한 상사한테 불려 가 야단들을 일만 남았습니다. 상상만 해도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간은 콩알만 해집니다.
내일이 인생사 중대한 시험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자신감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긴장감까지 사라지지 않습니다. 혹시나 잘못 볼까 하는 생각은 없을 수 없으니 떨리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누군가가 나를 툭 치기라도 하면 깜짝 놀랍니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쫄았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얼른 숨기며 이렇게 응수합니다.
"쫄긴 누가 쫄았다고 그래!"
남의 떡이 커 보입니다. 남이 하는 거는 쉬워 보이고요, 대충 봐도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벌벌 떨고 있는 녀석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리저리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해치우면 될 일인데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세상에서 장기를 가장 잘 두는 사람은 옆에서 훈수 두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훈수를 잘 둔다고 실제 장기까지 잘 두지는 않습니다. 이렇듯 쉬워 보이는 그 일을 지금 내가 한다면 별거 아닌 일처럼 보일까요? 그 친구처럼 벌벌 떨지 않을까요? 쫄아서 말입니다.
쫄면 티가 납니다.
“에이, 쫄긴 누가 쫄아”, “안 쫄았거든!”라며 아무렇지 않다면서 그제서야 자세를 고쳐 잡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미 굳어버린 얼굴, 씰룩대며 깨무는 입술, 초점 잃은 눈동자,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어디 둬야 할지 몰라 꼼지락거리는 손가락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발걸음까지 숨기려야 숨길 수 없습니다.
쫄면 창피합니다. 쫄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마는 쫄지 않고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건강 검진을 받기 전에 혹시나 큰 병이 있을까 봐 쫄고 있습니다. 길을 가다 뒤에서 큰 개 한 마리가 갑자기 짖어대면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이런 마당에 입시, 승진 같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시험을 앞두거나, 존폐의 갈림길에 서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쪼는 건 당연한 마음입니다.
"막상 도전했는데 실패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시작은 하긴 했는데, 계획과 다르면 어쩌지?’,
"혹시 망하기라도 하면, 잘못되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쫄지 말자'라고 여러 번 다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쫄고 있습니다.
나이 아흔을 바라보는 이어령 선생은 몇 년 전 이런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의 생전에 마지막 인터뷰가 될지도 모른다면서 한 인터뷰 도중 그는 틈틈이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쫄지 마. 2억, 3억 마리의 정자들이 죽어라 달려서 지금의 내가 왔어요. 수능 시험보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거야. 그러니까 쫄지 마, 쫄지 말라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쫄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고,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건데 말입니다.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했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 쫄지 말고 행동부터 하라고 합니다. 행동하다 보면 어려울 거라 쫄았던 문제도 의외로 아무 일도 아닌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처럼 공짜로 얻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도전했지만 실패하기도 하고, 황금 같은 기회를 꽉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눈앞에서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좌절에 이어 절망이 찾아오고 낙심도 하지만 그래도 소중한 경험의 힘은 남아 있습니다. 경험의 힘이 모여 실패를 성공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는 거겠죠.
한번 만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다 보니 해낸 크고 작은 경험들 다들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실패할까 봐 미리부터 쫄지 마세요.
'나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면 새가 되지만, 누군가 내 알을 깬다면 프라이가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는 이 말은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하늘을 날기도 전에 누군가의 입속으로 들어간다는 섬뜩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남이 깨기 전에 내 힘으로 깨고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알은 단번에 깨지지 않습니다.
알이 쉽게 깨진 만큼 날개도 부리도 연약해서 생존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알속에서 알을 깨기 위해 무수히 반복했던 연약한 날갯짓과 연약한 부리질이 하늘을 날아오르며 먹이를 잡게 하는 힘이 됩니다.
쉽게 얻어진 만큼 쉽게 사라지는 법이니까요.
어느 누구한테도, 그 무엇에게도 쫄지 맙시다.
담담히 기다리며, 담담하게 하다 보면 해내게 되어 있습니다.
진검승부는 지금부터라는 다짐으로 말입니다.
쫄지 마세요. 더 잘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다 잘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