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복잡하게 느껴질 때는 아이에게 배워봅니다
나이 들수록 많아지는 게 있습니다.
할까 말까 망설이고, 될까 안될까 고민하고, 괜찮을까 안 괜찮을까 걱정을 합니다. 전후좌우 위아래를 재고 또 재고만 있는 생각입니다.
보이는 대로 보고 믿다가도 행여 숨겨진 다른 의도는 없는지 의심부터 듭니다.
'이 일이 안되면?', '저 일이 꼬이면?' 생각은 날개를 답니다.
'이 사람이 이런 게 레알이야?',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실망을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런저런 생각이 얽혀서 한 편의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뭐가 진짜인지 헷갈리기만 합니다.
나이 들수록 세상을 알 법도 한데 오히려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그러니 걱정은 많아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이리저리 뒤엉킵니다. 그럴수록 삶은 오리무중, 복잡한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세상일이 고단할 때 아이의 얼굴을 보며 힘을 내곤 합니다. 아이를 바라보고 함께 놀면서 세상 시름을 잠시 잊기도 하고요. 그런 아이를 마주하며 깨닫는 것들이 있습니다.
처음 걸음마를 하는 아이를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돌 무렵이 되면 아이는 걷기 시작합니다. 겨우겨우 안간힘을 다해 한번 일어선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번 다시 기어 다니지 않습니다.
엉덩방아를 찧고 다리가 꺾여도 기어이 걸어보려고 합니다. 일어서는 게 힘들다고, 넘어져 아프다고 그전처럼 기어 다니는 아이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두발로 서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만하면 불굴의 의지 아닌가요?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묻습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러자 한 아이가 궁금한 듯 질문을 던집니다.
"그럼 안 마려워지나요?"
아이들의 생각은 딱딱하지 않고 유연합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기상천외한 대답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정말이지 대단한 사고의 소유자 아닌가요?
아이들은 사물이든 생물이든 그 어떤 것이든 표정을 읽고 얼굴을 봅니다. 이를테면
구구구 소리를 내며 먹이를 먹는 비둘기를 보면서
"비둘기가 웃고 있어",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이 한들한들 흩날리는 모습을 보면
"바람이 부니까 나무가 좋아해"
구름에 가려 달이 제모습을 다 보이지 않으면
"달이 찡그리고 있어."라고요.
아이들은 사물이든 뭐든 사람 보듯이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생각나는 그대로 표현합니다. 아이들에게만 보이는 세계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비밀스럽고 따뜻한 그러면서 순수한 세계 말입니다.
아이들은 뭘 하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모든 것이 느린 아이는 아침부터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까르르 대며 웃다가 잠이 듭니다.
별것도 아닌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마치 온 세상이 놀이동산인 마냥 즐기는 아이들의 마음이 부럽습니다.
한 달이 금방 지나갑니다. 그러다 일 년은 물론 십 년도 마치 엊그제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옛날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일 년이 금방 지나가고 시간이 후딱 간다고 느껴지는 그게 나이 들었다는 거야."라고요.
나이가 들면 뭐든지 참견하고 싶고 고민도 많아지고 그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걱정하느라고 말이죠.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고 되도록이면 쉽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게 어른들의 속마음입니다. 하지만 매사에 그리 쉬운 건 없습니다. 살면서 당연한 일도 없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처럼 그저 얻어지는 일은 없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돌 무렵 아이가 걷기 위해 수없이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넘어지면 아프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고, 울다가도 일어서려고 기를 씁니다. 두발로 당당히 걸을 때까지 말이죠. 마치 삶의 모습은 그런 거라고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삐치고 화내고 울다가도 다음 날이 되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곧잘 놀곤 합니다. 뒤끝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그러기가 쉽지 않죠.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에 밤새 뒤척이기도 하고, 미처 지우지 못한 감정의 잔해들로 다음날 컨디션까지 엉망으로 만들곤 합니다.
그 어떤 것에서든 얼굴을 발견하고 표정을 읽어내는 건 마음이 하는 일입니다. 세상사는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은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그 의미는 마음은 부리기 나름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때는 온 세상을 다 품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바늘 한끝도 들어가지 못하기도 하니까요.
이것저것 재고만 있기보다는 넘어져도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이 후회가 덜합니다.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솔직함이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소소하지만 즐길 거리는 사방에 널렸는데 보이지 않은 행복을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를 마주하며 깨닫습니다.
생각이 많아지고 머리가 복잡해질 때는 마음을 부려 단순하게 생각하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그 무엇에든 얼굴이 훤해지도록 내 안에 있는 아이의 마음을 작동시켜야겠습니다.
지나간 일은 되새김질하지 말고 매일 새롭게 느끼는 아이들처럼 우리도 딱 오늘 하루치 감정만 소화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