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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Nov 01. 2021

이 시대의 진정한 능력자들, 덕질과 덕후

 몇 해 전 모 TV에서 방영된 '능력자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앵무새 덕후, 소방서 덕후, 마요네즈 덕후, 매운맛 덕후, 롤러코스터 덕후 등등. 듣도 보도 못한 덕후들이 나와 자신의 덕력을 선보였던 이 예능은 '개개인의 전문성이 나라의 경쟁력이 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국민 지식 증진 교양 향상 프로젝트를 표방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인류는 덕후들의 능력으로 인해 진화되었다.'

 '당신의 덕심이 바로 당신의 능력이다.'

 이런 말들과 함께 우리 시대의 진정한 능력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재미난 시간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점잖고 행동거지가 똑바른 친구가 있습니다. 근데 오늘따라 무슨 즐거운 일이 있는지 표정이 밝아 보입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조카 뻘 되는 좋아하는 가수의 기념 앨범이 출시되었답니다. 주문한 음반이 곧 도착해서 직접 감상을 할 생각을 하니 설레는 마음에 기분도 좋아진다는 거였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지식과 자료를 찾거나 모으는 행위를 '덕질'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덕후'라고 부릅니다.

 예전에는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어릴 때 우표를 수집하거나 음반을 사고 옛날 화폐를 모으는 취미를 즐겼습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브로마이드를 사서 벽에 붙일 때마다 뿌듯했습니다. 용돈 모아서 콘서트 티켓을 사고 전날부터 줄 서서 기다리곤 했습니다.

 만화책을 사 모았다가 부모님께 야단받고 갈기갈기 찢겨 버려지기도 했고요, 애써 맞춰놓은 조립품을 하찮게 여겨 한방에 박살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알고 보면 이 모든 행동도 덕질, 처음 등장할 때는 사회성이 결여되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곳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요즘은 덕질이라 부르려면 적어도 특정 분야에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덕질은 그 뜻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무엇'이 있는 사람이고, 덕질을 해본 사람은 열심히 할 수 있는 기본 자질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덕질 그리고 덕후, 적어도 이 정도 수준의 능력자가 되려면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가 있어야 하니까요. 


 좋아하는 가수한테 팬레터를 쓰고 답장을 받아 좋아했던 소녀, 그 답장에는 공부 열심히 해서 멋진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열정으로 공부해서 수능 대박 난 덕후들이 여럿 있다고 하죠.

 자수성가해서 성공한 사업가 중에 철부지 시절에 게임 덕후였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자칭 미쳐 있던 에너지를 사업에 몰입함으로써 사업 덕후로 성공한 케이스였습니다. 


 페이스북 CEO이자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로 유명한 마크 저커버그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 덕후였고요,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만들어 히트시킨 피터 잭슨 감독은 소설가 덕후, 특히 원작 소설을 쓴 작가 J.R.R 롤킨 덕후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모든 걸 쏟아부었던 그때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 당시의 열광했던 것만큼 그런 열정이 아직도 있을까요?  




 오늘도 친구 녀석은 아재 팬으로서 그 가수에 대해 일거수일투족을 거의 모두 꿰차고 있을 만큼 무지막지한 순애보를 바치고 있었습니다.

 잠깐 짬이 난 사이에 그 가수를 검색하는 친구의 뒤통수를 보며 '저게 그렇게 신나는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가 눈치챘는지 고개를 이쪽으로 휙 돌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말이야, 하루 24시간 중에 모든 걱정을 다 내려놓고 순수하게 즐거운 시간이 있냐? 보시다시피 난 있는데."

 순간 그 친구 멋져 보였습니다. 그런 낙이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했고요. 


 오늘도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아이의 뒷모습을 쳐다봅니다. 하긴 나 역시 저 녀석 나이 무렵에는 동네 오락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흠뻑 빠진 적이 있었으니 아이 탓만 할 수는 없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게임 좀 그만 해라고 잔소리를 했을 텐데 오늘은 게임을 향한 저 열정과 몰입을 어떻게 하면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돌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봅니다.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내어 기분은 다운되고 무기력할 때는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을 휘젓으며 분위기를 역전시키는 엄청난 존재감을 가진 즐거움이 있다면 팍팍한 일상에 활기가 생길 테니 말입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몰입하는 열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힘이 됩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스트레스도 이겨내고 나의 발전도 이뤄낼 수도 있으니까요.  




 생각만으로 가슴을 뛰게 하는 그런 것들이 있으십니까?

 요즘 상황이 워낙 짜증 나고 불편하고 답답합니다. 이런 기분을 거뜬히 날려주고, 더 격렬하게 열정을 다해 미친 듯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덕질 말입니다. 


 연예인 가수나 게임이 아니더라도 덕질을 할만한 대상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누구를 열렬히 응원 중이십니까? 무엇에 푹 빠져 있습니까? 꼭 사람이나 생물이 아니어도 되고요. 내가 좋아서 푹 빠지는 대상이라면 뭐든 괜찮습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능력자가 되는 덕질에는 경계가 없고 덕후에는 자격도 필요 없으니까요. 


 쓸데없는 짓 하고 다닌다고 욕먹었던 덕후들이 지금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전문가로 인정받는 세상입니다.

 누군가에겐 아니 우리 모두에게 눈치 보지 않는 순수한 즐거움이 있다면 설레지 않으십니까? 덕질이 삶을 윤택하게도 한다면 금상첨화일 테고요. 그러다 보면 삶도 달라질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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