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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Nov 15. 2021

미루기에 도가 튼 분들에게


 일과 시간은 길어도 점심시간은 짧습니다. 일과는 처리하지 못하고 남겨도 점심은 남김없이 다 해치웁니다.

 오전에 다 못한 일과를 처리하려고 시계를 보니 시간은 12시 52분, 아직 정각이 아니라는 생각에 시작하려던 마음은 휴식 모드를 이어갑니다. 


 수업 시간은 느림보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가지만 노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게임을 그만 끝내고 이제는 공부해야겠다 싶어 핸드폰 화면 시계를 보는데 6시 23분. 순간 6시 30분부터 공부하면 잘 되겠다는 근거 없는 생각을 하며 도로 핸드폰 게임의 세계로 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자고로 시간은 딱 떨어져야 제맛, 공부든 일이든 무조건 깔끔하게 정각이면 좋고, 30분도 괜찮습니다. 하다못해 10분 단위로 시작해야 할 맛이 납니다. 7시 53분부터 시작?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그렇지, 나하고 성향이 비슷하네' 하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뭐든 정각에 시작만 하고 싶어 할 뿐이라는 말에 가슴은 뜨끔, 기분은 머쓱해집니다.  




 미루는데 도가 튼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봄옷 꺼내는 걸 미루다가 덜컥 여름이 와서는 길 가다가 더워서 반팔 티셔츠를 사 입는 사람,

 겨울 준비해야지 몇 번 생각하다 첫눈이 내려서야 부랴부랴 겨울 이불을 꺼냈는데 세탁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인 이불을 보면서 '이걸 왜 안 빨았지?"라며 의아해하는 사람,

 냉장고가 안 먹고 못 먹는 음식으로 차고 넘치는데도 다음에 버려야지 하며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들,

 심지어 계약 기간이 끝나가는데 집 알아보는 걸 미루는 사람까지.

 주위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고요. 


 사소한 거라도 잘 미루는 성격이 대개는 매사를 제때 하지 않고 미루고 미루다 근근이 하곤 합니다.

 아침에는 퇴근하면 '해야지'라고 결심하지만 늘 그러하듯 퇴근하면 내일로 미룹니다.

 '나중에 꼭 해야지' 다짐하지만 '나중에'가 오면 '좀 있다 반드시 해야지'로 말만 바뀔 뿐, 미루는 게 일상다반사입니다. 


 그러니 청소나 정리를 미루는 건 당연지사,

 다이어트는 내일, 아니 깔끔하게 다음 달부터,

 영어 공부도 절약도 금주 금연도 다 다음 달부터, 이도 안되면 내년으로 몽땅 이월합니다.

 잘못 계산한 물건 환불도 미루고. 마음 안 맞는 사람과 관계 정리도 미룹니다. 결혼도 미루고 삶의 즐거움도 미루고 이래저래 미루는 거 천지입니다. 


 미루는 버릇이 일상인 사람은 인생에서 해야 할 중요한 과제도 '나중'으로 미룹니다.

 "나중에 성공하면 그때 가족들에게 잘하면 되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할 거야."

 "나중에 인정받고 사는 게 안정이 되면 친구들도 만나고 인생을 즐길 거야."라고 하면서 말이죠.  




 인생의 중요 과제를 미룬 사람 치고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중에 성공하고 돈 많이 벌고 안정이 될지 안 될지 장담 못 합니다. 인생이 어찌 될 줄 알아서요.

 설령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그때까지 부모님이 옆에 계신다는 보장 없습니다. 서먹서먹해진 자녀들의 마음 얻기도 쉽지 않습니다. 다 늙어 만난 친구들과 잘 어울리기도 어색하고, 인생을 즐기고 싶어도 놀 줄 몰라 뭘 해야 할지 막막할 수도 있습니다.

 소원 성취해서 돈 있고 시간 있고 사람 있어도 몸이 골병들어 골골거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중에라는 길을 통해서는 이르고자 하는 곳에 결코 이를 수 없다"라는 스페인 속담이 있습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나중에'라고 말하는 건 아주 쉽지만 '지금 당장'하는 건 어려우니까요.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가 큰일을 당했거나 크게 상심한 사람을 위로해 줄 때 동네 할머니께서 그러셨습니다.

 "어이, 최선은 몸으로 때우는 거고 차선은 돈으로 때우는 것이라면 최악은 입으로 때우는 것이란다."

 문상을 당한 이를 찾아가서 함께 밤을 새우며 슬퍼하는 행동이 최선이라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혹은 애매한 사이에서는 조의금으로 때우는 게 차선입니다. 이도 저도 없이 말로만 위로를 건네는 건 최악입니다.

 몸으로 때우는 게 제대로 하는 거라고, 말보다 실천이 우선이라는 이름 없는 할머니의 말씀이 와닿습니다. 


 말만 내세우고 행동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모르지 않습니다.

 지금 작은 시도부터 하나씩 행동해야 나중에 더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30분 일찍 일어나기, 하루 30분 이상 책 읽기, 30분 이상 걷기,

 한 입 덜먹기, 물 1리터 마시기, 많이 웃기, 오늘 하루는 짜증 내지 않기.

 소소하지만 이런 작은 행동을 미루지 않고 매일 해나가면 인생은 분명 좋은 방향으로 바뀔 거고요,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은 인생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래도 미루고 싶다면 미룰수록 도움이 되는 걸 미루면 어떨까 싶습니다.

 툭하면 화내고 구차한 변명이나 늘어놓고 마음에 안 들면 미워하는 감정들, 별 도움도 안 되면서 되씹는 걱정이나 근심 같은 건 미루면 미룰수록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게으름도 마찬가지이고요.

 결혼을 미루었어야 했다고 도저히 못 살겠다며 당장 헤어지자고 했던 말, 아직까지 살을 부대끼고 아웅다웅하면서 미루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새 마음 새 뜻으로 하겠다며 내일로 미루어왔던 분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올해도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오늘 미루면 다음 달로 넘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럼 진짜 내년입니다.

 '그럼 내년부터!'라고 한다면 그 내년은 언제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머리를 쓴 그 계획, 미루지 말고 당장 시작하는 결단이 필요한 시간이 오늘 이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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