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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Apr 22. 2022

조삼모사, 그 이면에 숨은 진짜 이야기

 누군가 나에게 100만 원을 그냥 주겠다고 합니다. 단지 지금 바로 받을지 아님 1년 뒤에 받을지만 고르면 된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대부분은 지금 당장 받고 싶어 합니다. 1년 뒤는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 무엇보다 지금 공짜 돈이 생기는 기쁨이 엄청 클 테니까요. 


 남자와 여자의 유전자 차이는 단 1%, 자매의 유전자는 99.95%까지 똑같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도 고작 1.3%입니다. 즉 인간과 침팬지의 DNA는 98.7%가 동일합니다.

 두발로 걷고 양손을 쓰고 유전자까지 닮은 인간과 원숭이, 이 둘 사이에 벌어진 신경전을 묘사한 우화가 있습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 이야기입니다.  




 송나라에 원숭이를 키우는 저공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름에 들어있는 '저(狙)'는 원숭이를 뜻합니다. 이름처럼 저공은 원숭이를 너무 좋아해서 많은 원숭이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원숭이를 좋아했는지 그는 가족의 양식까지 퍼다 먹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원숭이의 수가 점점 늘어나자 먹이인 도토리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저공은 원숭이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라고요.

 그러자 원숭이들이 모두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저공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라고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이에 원숭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했다는 우화로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원숭이에게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의 도토리를 준다는 뜻에서 유래한 조삼모사.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든,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든 먹이의 개수는 똑같습니다. 하지만 그걸 모르고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에만 급급한 원숭이처럼 어리석음을 지적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또한 저공의 제안을 얕은 속임수로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모습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근데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4개 먹겠다는 원숭이가 어리석다면, 지금 100만 원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뭘까요? 둘 다 욕심만 채우기에 혈안이 된 걸까요?

 저녁에 4개 받겠다는 원숭이나, 1년 뒤에 100만 원을 받는 사람은 인내심이 넓은 걸까요? 상대방의 잔술수에 속아 넘어가지 않은 똑똑한 존재일까요?  




 경제학적 관점으로 이자 개념이 있다면 먼저 4개를 받는 원숭이의 이익이 더 큽니다. 도토리에 이자가 붙을 리는 없겠지만 이자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금 100만 원과 1년 뒤 100만 원 중 어느 쪽이 가치가 더 있을까?' 하는 물음은 경제학적으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화폐의 가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합니다. 그러니 현재 화폐인 먹이가 미래의 화폐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100만 원짜리 물건은 물가가 올라 내년이면 100만 원으로는 살 수 없을 테니까요. 


 내일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세상, 그래서 늘 위험에 대비하라는 유비무환을 강조합니다.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위험을 고려할 때 먼저, 많이 받는 쪽이 훨씬 유리합니다. 혹시나 저공이 하루아침에 쫄딱 망해 먹이를 못 주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을 달리할지도 모르니까요. 


 한낮은 노동하는 시간, 그러려면 낮에 든든하게 먹어야 잘 움직이고 일도 잘합니다. 게다가 많은 이들의 평생소원인 다이어트, 저녁에 적게 먹어야 살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아침에 많이 받으려고 한 원숭이들은 똑똑한 선택을 한 셈입니다. 


 대인관계 측면에서 저공은 원숭이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갈등은 현명하게 조율한 인물입니다.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든,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든 도토리의 숫자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원숭이들은 처음 제안은 기분 나빠 반발하고 또 다른 제안은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저공은 기꺼이 원숭이들의 객관적인 상황에 맞추면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을 뿐입니다. 그로 인해 잃은 도토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있는 사실이나 명분은 그대로인데 지금 당장 손에 쥐는 이익만 따져 기뻐하거나 화를 냅니다.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기를 쓰고 달려들다 감정을 분출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욕심, 내 관점만 옳다고 고집부리는 편견이 감정을 요동치게 합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하는 게 인생, 그래서 어떤 인생이든 멀리 내다보면 그 합은 같다고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부귀와 성공, 건강과 행복 이 모두의 인생 총량도 합은 같다면서 말이죠. 장자는 이런 말로 마무리합니다.

 인생사는 결국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에 의해 그 좋고 싫음이 결정되는 것이지 본질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요. 


 생각을 조금 넓게 했더라면 서로 얼굴 붉히지 않았을 관계도, 먼저 이해하고 방법을 달리했더라면 원만하게 해결되었을 일도 참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지 못해 후회로 남은 행동들 다들 있지 않습니까?

조삼모사는 흔히 알고 있는 현실을 분간 못하는 멍청함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하죠. 불확실한 제안을 받고 반발하는 원숭이들에게 유연하게 대처하는 저공의 지혜를 강조한 우화이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쪽 모두를 고려해 올바르게 판단합니다.

 각박하고 삭막한 현실, 그럴 때일수록 현명하게 처신하는 저공의 지혜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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