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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Jul 01. 2022

오늘도 척, 척, 잘 해내고 계십니까?

 '마음에 드는 남자와 있을 때 많이 못 먹는 척하기'

 '실제로 지저분하지만 깔끔한 척하기',

 '남자 앞에서 약한 척하기',

 '남자 말에 동의하는 척하기'

 한 조사 기관에서 발표한 여자들이 마음에 든 이성 앞에서 보이는 내숭 순위라고 합니다.

 여자들은 남자 앞에서 하는 '내숭'을 "보기 싫다", "얄밉다"라며 절반 이상이 부정적이라고 답을 하는 반면 남자들은 "대체로 애교로 봐준다"가 절반 넘게 차지할 정도로 내숭을 애교로 받아주는 경향이 많습니다.

 내숭이 애교로 보이려면 척하는 게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마치 몸에 밴 듯이 그럴싸하게 말이죠. 


 말이라고는 안 듣고 '싫어, 안 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미운 일곱 살 난 아이, 치열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온 아빠는 그런 아이를 달래 보기도 하고 제압도 했다가 좋은 말로 타이르고 가르치기까지 합니다.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으면서요.

 그런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이 한 마디 합니다.

 "오호, 아빠가 되더니 진짜 어른이 다 됐네."

 그 말을 들은 아빠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인 줄 아는데 강한 척이라도 해야지"  




 어디 척하는 게 남녀 사이, 부모 관계뿐이겠습니까? 주위 환경이 바뀌면 몸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척, 척하면서 사는 게 일상다반사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시당할까 봐 없으면서 있는 척, 무식이 탄로 날까 싶어 모르면서 아는 척,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괜찮은 척, 힘든 일을 하기 싫어 아픈 척, 연인의 마음을 얻으려고 배고파도 배부른 척을 합니다.

 호감 가는 이성 앞에서 일단 이쁜 척, 귀여운 척을 하고 보는 여자, 반면에 남자는 너그러운 척, 강한 척한다고 하죠. 관심받고 싶어 잘난 척도,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 똑똑한 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척, 척'하는 이유는 어쨌든 잘 살아보려는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착하지도 않으면서 착한 척하며 남을 속이는 건 기만입니다.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 이른바 3척은 위선 같다며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하지만 기만이나 위선과는 거리가 먼 척하는 척을 오늘도 알게 모르게 하며 살아갑니다.

 아이 앞에서는 아파도 안 아픈 척,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을 해야 부모를 든든한 버팀목처럼 느낍니다. 재미없는 상사의 농담에 재미있는 척,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에 웃는 척을 해야 사회가 원만하게 돌아갑니다. 심지어 화가 치밀어 올라도 사랑하는 척이라도 해야 분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예쁜 척, 멋진 척, 아는 척, 아닌 척, 그런 척, 강한 척, 재미있는 척, 괜찮은 척 심지어 사랑하는 척. 그런데 많고 많은 척, 척 가운데 제일은 모르는 척이라고 합니다. 


 까마득한 후배 결혼식 날,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신랑 신부가 입장을 합니다. 그리곤 주례 앞에서 사랑의 서약을 합니다. 이윽고 시작된 주례사,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라는 뻔한 레퍼토리가 이어집니다. 살짝 지겨워질 찰나 주례사 하시는 분이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려면 이렇게 하라는 이야기이었습니다.

 "눈치챘으면서도 웬만한 일은 눈 감아 주기,

 왜? 왜? 자꾸만 캐묻는 대신 말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기,

 빤히 보이는데도 가끔은 못 본 척하기,

 상대의 불안이 가라앉을 때까지 때론 무심한 척하기.

 그런데 이건 아무나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죠. 강호의 고수들도 하기 힘든 일, 무엇보다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부부라는 게 서로 이런 마음을 갖기 위해 평생 동안 함께 노력하는 사이가 아닐까요?"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척하는 행동은 자칫 위선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느끼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 살아가는 세상 그러기가 어디 쉽습니까?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척하기'라는 일종의 의무이자 상대를 위한 배려일 수도 있으니까요. 


 다들 저마다의 책임감을 가지고 각자의 역할을 어디에선가 수행하고 살아갑니다.

 어린아이들과 있을 때는 믿음직한 어른인 척, 후배들과 함께 있으면 위엄 있는 상사인 척, 노부모 앞에서는 아무 문제없는 괜찮은 자식인 척. 그렇게 어른 노릇, 선배 구실, 부모 자식의 임무를 오늘도 꿋꿋하고 의연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척척해야 하는 것들이 점점 더 늘어나죠? 나이가 들면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더 그렇습니다.

 주변 상황을 미리 파악하고 분석하고 맞춰 살아야 하기에 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척하는 척하며 살아가야 하지만 척하는 척만큼 다정하고 즐거운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척, 척, 잘 해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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