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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Feb 11. 2022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

 배고픔에 먹이를 구하려는 황새가 논에서 개구리를 만났습니다. 개구리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웬 날벼락, 마주치지 말아야 상대를 맞닥뜨린 순간입니다. 도망치려고 폴짝 뛰는 개구리를 황새가 길고 억센 부리로 덥석 물었습니다. 먹이를 음미하며 꿀꺽 삼키려는 황새, 갑자기 목이 꽉 막혀 당황해합니다. 부리에 물려 발버둥 치던 개구리가 황새의 길고 가느다란 목을 두 손으로 꽉 잡고선 '니 죽고 나 죽자'라는 결사항전의 자세로 끝까지 버티고 있었으니까요.

 먹느냐 먹히느냐, 죽느냐 사느냐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과연 누가 이길까요? 


 디지털카메라가 득세했던 그때도, 스마트폰에 카메라가 장착되어 누구나 쉽게 사진 찍는 요즘에도 구석진 골목에 자리 잡은 오래된 필름 사진관이 있습니다. 디지털카메라에 밀려, 휴대폰 사진에 힘 한번 못 쓰고 곧 사라질 거라 생각했지만 사진관은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고장 난 카메라를 고치려고, 또 다른 누구는 필름 사진 한 장을 인화하기 위해 허름한 이곳까지 걸음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있기에 버텨낼 수 있었던 거겠죠.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일일이 초점을 맞추고 한 컷 한 컷 정성을 다해 작품을 만든다는 친구 녀석은 빛바랜 사진관 앞에서 필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감탄을 합니다.

 "역시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라고 하면서요.  




 울퉁불퉁한 삶을 살다 보면 피치 못한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며 겨우겨우 견뎌내는 이들에게 주옥같은 말로 위로를 건네곤 합니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어렵고 고된 일을 겪고 있으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깨지고 쓰러지고 아파하면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시련의 한 복판을 지나고 있으면 '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만큼의 시험만 주신다.'라고 하면서요. 


 열대야로 잠을 설쳤던 무더위도, 겨울 왕국이 된 엄동설한도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변하는 계절처럼 지금 괴롭고 힘들어도 언젠가는 멋진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가지라고 격려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기 위해서는, 고생 끝에 낙을 맛보려면, 아픈 만큼 성숙해지려면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이 고생이 끝날 때까지, 아픔이 성숙해질 때까지 잘 버텨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죽을힘을 다해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려놓았지만 바위는 곧바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집니다. 그걸 또다시 있는 힘껏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신의 형벌을 보며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신화 속 이야기라고 여겼는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사고 싶은 걸 샀지만 기쁨은 잠시, 금세 심드렁해집니다. 배고파서 배부르게 먹었으나 돌아서면 배가 고파지니 이게 어찌 된 조화인가 싶습니다. 사고 싶은 걸 사고, 먹고 싶은 걸 먹기 위해 우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어제도 오늘도 하는 일을 하고 또 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처럼 말이죠.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시련과 좌절 속에서 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만큼의 시험만 주신다고 위로하지만 가끔은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곤 합니다.

 신이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 건 아닌지, 다른 사람과 나를 착각한 건 아닌지. 그러다 낙이 없어도, 성숙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 시련이 얼른 끝났으면 하는 푸념 말입니다. 그 푸념이 소망처럼 간절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다고 별 수 있나요? 피할 수 없는 고생을 죽어라 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라도 작은 행복을 찾으며 버티는 수밖에요.

 산꼭대기에 올려놓은 바위가 바닥으로 떨어진 걸 본 시시포스, 무거운 바위를 또 굴리고 올릴 생각을 하면 한숨이 절로 나왔을 테죠. 이 형벌이 언제 끝날까? 기약도 없는 고생길이지만 시시포스는 웃을 수 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천천히 여유를 부리며 자유를 누릴 수 있으니까요. 


 일상을 꾸려 나가는 우리도 이렇지 않을까요?

 채우면 텅 비고, 먹어도 때가 되면 허기지고, 이 걱정이 없어지면 저 걱정이 생기니 인생이 허무하고 팍팍합니다만 그래도 일용할 양식을 먹고 일용할 근심을 떨치고 일용할 욕망을 다스리며 일용할 행복을 느끼며 하루하루 버텨내며 살아갑니다.  




 인생이 허무하다고 인생무상이 아니라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없다는 게 인생무상의 진짜 의미입니다.

 인생은 무상하기에 기쁨도 슬픔도 영광도 고통도 한 곳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길 때까지 버텨야 하고 그래서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고 하는가 봅니다.

 긴 부리로 개구리를 물고 있는 황새, 이에 질세라 황새의 목을 조르고 있는 개구리. 이 두 마리의 동물이 목숨을 걸고 있는 이 처절한 상황의 승자는 더 오래 버티는 쪽인 것처럼 말이죠. 


 2020년 백상 예술 대상에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으로 상을 받은 배우 오정세 씨는 수상소감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이 참 불공평해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데도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지 않거든요. 그래도 자책하지 마세요. 저처럼 이렇게 동백꽃 필 무렵을 만나게 될 겁니다."

 역병이 창궐하고 사는 게 답답한 오늘을 겨우 버텨내는 우리에게 이 세상은 그래도 기다려볼 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게끔 하는 말이었습니다. 


 인생에는 절대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갑작스레 찾아오는 행복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이 그날일 수 있습니다.

 다들 힘들어하는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행복. 힘든 데만 몰입하다가는 그 행복들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보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지는 말아야죠. 


 버티는 게 이기는 거죠. 버텨내다 보면 결국엔 승리하게 될 거니까요. 어쩌면 승리가 눈앞에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도 잘 버텨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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