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고파서 연기를 했는데 남들은 잘했다고 극찬하더라고. 그래서 예술은 잔인한 거야. 배우는 말이지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가장 잘해."
영화 <미나리>로 대한민국 영화사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 영화를 대표하는 여배우이자 대중문화 분야 최초로 금관문화훈장을 수여받은 윤여정 선생이 한 말입니다.
화려하고 남들이 모두 부러워할만한 업적을 이룬 배우의 입에서 나온 예술은 잔인하다는 말이 의외였습니다. 그만큼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없고 절박감과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 테죠.
'예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명언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불후의 명작 같은 예술 작품은 자자손손 대대로 남겨지는 거니까요. 그런데 이 말의 본래 의미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 명언의 주인공은 예술가가 아닌 의사였습니다. 바로 히포크라테스입니다. 제자들이 의술 수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의사 생활을 시작할 때 들려준 이야기라고 합니다.
인간의 신체는 신비롭고 너무나 복잡해서 그걸 다 배우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고 그 기술을(arte) 완전히 익히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이죠. 그러니 좀 배웠다고 우쭐대지 말고 좀 안다고 과신하지 말고 환자를 대할 때는 언제나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예술과 기술, 두 가지 뜻이 다 담긴 art는 주로 예술의 영역에서 쓰이면서 본래의 뜻이 희석되었다고 합니다.
절박해야 절실해지는 게 예술이라면 예술은 잔인합니다. 그러나 그런 게 어디 예술뿐이겠습니까? 예술을 하지 않아도 절박함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물고기 IQ는 10 미만이고, 사람 IQ는 평균 100입니다. 그럼 물고기를 놓친 어부의 IQ는 얼마일까요?'라는 재미있는 퀴즈가 있습니다. 비단 IQ의 문제가 아니라 절박감이 생사를 좌우한다는 의미입니다.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을 이기기는 힘드니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절박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밤새 열이 나는 아이를 업고 한밤 중에 응급실로 뛰어가는 부모 마음에도, 회사의 존폐가 달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온몸을 던지는 사람에게도 절박함이 있습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 보려고 때론 절박하게 발버둥치지만 현실은 잔인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한눈팔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는 시원찮고 계획하고 준비한 대로 되기는커녕 꼬일 때가 더 많습니다.
선한 마음은 왜곡되고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되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세상입니다. 노력과 과정은 알아주지 않는 현실이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이러니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살이가 쉬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점점 어렵고 버거워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산다는 건 고통받는 것이고, 살아남은 것은 고통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다"라고 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 울림 있게 다가옵니다.
하트 안에 또 다른 하트가 그려진 커피 한 잔, 하트 속의 하트가 예술입니다.
Heart. 심장, 가슴, 마음이라는 뜻인 하트의 스펠링을 하나씩 읽어봅니다. h.e.a.r.t. heart안에는 art가 담겨 있습니다. 마음 안에는 아트, 예술을 품고 있습니다.
이래서 인생사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트 속에 아트가 있다고 생각하니 일상을 예술처럼 살아보자는 마음이 듭니다. 니체가 말한 어떤 의미를 찾으면서 말입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자', 이런 다짐도,
'잘 안되지만 다시 해보자', 굳게 먹는 결심도.
위험한 걸 무릅쓰고 걸어가는 용기도 예술입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일 잘하는 것은 물론
쓸모없음에 쓸모를 인정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예술입니다.
소소하지만 가볍지 않은 마음가짐이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합니다만 짧은 인생마저 빨리 지나갑니다.
세상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산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멋진 운명일 때도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일어나기도 하니까요.
삶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운명을 결정합니다. 인생사 마음먹기 나름,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니까요.
생사가 걸린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한시름 놓은 직장 동료들이 커피 한잔을 하며 한숨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트 안에 하트가 그려진 커피 한 모금이 기분을 달달하게 합니다.
"오늘 커피 맛이 예술이야, 진짜 인생이 예술이지."라며 직장 선배가 웃으며 말합니다.
옆에 있던 경상도 출신의 후배가 이렇게 맞장구칩니다.
"맞아예, 인생은예, 술이지예."라고요.
절박했던 순간도, 절실했던 그때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면 모두 예술입니다.
인생이 별거 있나요? 이래사나 저래 사나 한 세상인데 예술처럼 사는 인생이 가치가 있을 테죠.
사랑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웃고 나누는 하나하나가 멋진 예술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루하루를 예술처럼 살아갑니다. 잔인한 현실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