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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새로운 정체성을 찾게 되다

by 멘탈튼튼 김프리

직장인으로 살고 싶지 않아 퇴사를 목적으로 한 휴직을 했습니다. 운 좋게 자녀가 두명 있는 저는 퇴사 전에 나라에서 제공해주는 육아휴직이라는 좋은 제도를 쓸 수 있었고 덕분에 직장인 신분을 좀 더 누릴 수 있었습니다. 육아휴직을 했으니 육아휴직수당 수령을 위해 형식상 유지만 하고 있던 개인 사업자도 휴업했습니다. 콘텐츠로 수익을 내는 것은 아직은 너무나도 먼 일이고, 어디서부터 뭘 해야할지 몰라서 영업상태에서 발생하는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 같은 고정비는 일단 줄이기로 했습니다.


휴직중이었지만 제 미래엔 더 이상의 직장생활은 없었기에 해보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마음 먹고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동생과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팟캐스트를 처음 시작한 게 2019년, 그 때도 직장인이 개인방송을 하는 건 흔한 일이었습니다. 무명의 크리에이터였고, 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것이 저에게 잘 맞는 일인지 천천히 테스트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퇴사 이후, 다시 시작될 프리랜서 생활을 위해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활용해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2014년에 만들었던 네이버 까페도 꾸준히 운영을 유지했습니다. 다행히도 회사는 제가 출퇴근 할 수 없는 지역으로 이전을 해서 복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회사가 이전할 수도 있다는 변수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퇴사예정이었던 저에게는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었지요. 이렇게 저는 육아맘과 직장인, 콘텐츠 크리에이터, 스몰 비지니스의 경계에 있는 예비 퇴사자 겸 예비 창업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가끔 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실 때가 있을겁니다. 김프리님은 종교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왜냐면 저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속상한 일이 있거나 마음을 다독이고 싶을 때에는 산이나 절에 가기 때문입니다. 아빠한테 "나 개종해도 돼? "라고 질문했다가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여러번 혼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인가요, 불자인가요? 대답하기 애매해서 그냥 무교라고 할 때도 많습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김프리님은 무슨 일을 하시죠? 라는 질문을 받으면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현재를 기점으로 했을 때 4대보험 납부 여부로 소개한다면 그냥 백수,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업으로 소개한다면 육아맘, 수입이 가장 좋은 분야를 택한다면 주식투자와 블로그, 가장 좋아하는 일을 기준으로 한다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한다고 소개를 해야할지 여러번 생각을 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백수입니다라고 대충 흘려 말하고 얼른 화제를 돌려버립니다.


저는 엄마입니다. 가장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육아에 쓰고 있습니다만 엄마가 되는 것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된 이 후에는 싫으나 좋으나 평생 엄마로 살아가야 합니다. 엄마는 제가 가져야 될 수많은 사회적 역할의 하나이고 삶 속에서 주어진 필연적인 역할이지 직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자녀로 태어나면 선택의 여지 없이 평생 부모의 자녀로 살아가지만 <제 직업은 ㅇㅇㅇ씨의 자녀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아요. 엄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1인기업가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철학을 담은 닉네임이나 브랜드 메세지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1인기업가, 김프리라는 이름 석 자로 생존 시장에 발을 딛으려면 저를 제대로 표현해주는 단어나 문장을 찾는 것은 꽤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직장인이라는 단어처럼 사회적 위치를 표현할 적확한 단어가 없으니 머리속은 복잡해졌고 정체성의 혼란이 왔습니다. 직장인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부족한 취업준비생, 대학생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재수생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질 때는 고민들을 주섬주섬 꺼내 천천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나를 한마디로 요약해 변호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대답은 분명하고 일관돼야 하며

다른 사람이 들었을 때 바로 수긍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출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P.67


새벽기상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이 책의 구절을 읽고 난 후 제 자신에게 참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퍼스널 브랜딩 관점에서 봤을 때 김프리는 SNS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걸까? 나를 어떻게 정의하고 변호해야 할까? 오늘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나의 사회적 위치는 무엇일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파고들수록 직업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직업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제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생각날 때마다 두서없이 반복적으로 적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은 없지만 매달 받는 월급처럼 따박따박 통장에 돈이 들어왔으면 좋겠고, 하고 싶은 것들을 시간에 구애없이 소소하게 다 하며 살고 싶고, 토끼같은 두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제 손으로 키우고 싶은 모든 마음, 이 마음이 다 뭉쳐서 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인데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저만의 키워드를 무엇으로 잡아야 할지 진지한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써 놓은 것들을 종합해보니 뭔가 이상하고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돈많은 백수나 막연하게 N잡러를 꿈꾸는 몽상가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재테크 공부를 열심히 하고 돈을 잘 굴리면 자산은 늘어날테고, 제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게 될테고, 좋은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다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지는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원하는 삶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은 오랜 시간 제 몸과 마음에 깊게 박혀있는 직장인의 마인드를 털어내고 생산자, 창작자의 마인드 세팅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드는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왕관을 쓰기 전에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단단한 마음근육을 키우는 것이 제가 먼저 해야되는 일이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저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저만의 브랜드 메시지를 한번 만들어보았습니다. 뭔가 더 그럴 듯한 것이 떠오르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으니 너무 깊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다양한 일들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읽고 쓰는 것이고, 읽고 쓰는 삶을 기본으로 제가 원하는 인생을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Be happy and everyday reading and writing.

행복하게 매일 읽고 매일 씁니다.


조금씩 열 가지 재주가 많은 사람은 밥을 굶는 법이고 모든 능력치가 높은 선수는 프로가 될 수 없다 말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운동선수는 운동만 하지 않습니다. 유튜브도 하고 책도 쓰고 요리도 하고 방송에도 출연합니다. 육아맘도 아이 키우고 살림만 하지 않습니다. 공동구매로 돈을 벌고, 강의를 하고, 책을 씁니다. 저 역시도 살아가는 동안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놓치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처음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실눈을 뜨고 봐야 겨우 보이는 메뉴얼의 깨알같은 글씨를 밤새도록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나요? 얼마나 집중하고 있나요? 나라는 사람은 유일하기 때문에 메뉴얼 같은 게 존재할 수 없고, 설령 존재한다 치더라도 그 메뉴얼을 내일 쓸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도 매일 변하고, 주변의 환경도 매일 변하기 때문입니다.


새벽을 만나는 것은 지나온 날들만큼 겹겹히 쌓인 내 안의 수백가지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오늘을 살아가게 해줍니다. 그래서 저는 있는 그대로의 저를 긍정하며 매일 행복하게, 매일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매일 읽고 쓰면서 느끼는 행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로 했습니다.


새벽을 만난 덕분에 저는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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