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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탈튼튼 김프리 Jan 22. 2024

엄마도 무엇이 되지 못했으면서

자식은 대단한 무엇이 되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


아들이 제천으로 동계 훈련을 갔다. 17일부터 갔으니 오늘로 6일째다. 첫날 같은 구단 아이들을 몇 명 싣고 함께 내려가서 숙소랑 식당 상태를 살폈고 당일 훈련에 필요한 물을 사다 넣어줬다.


장소 : 봉양건강축구캠프장

시간 : 2024 1월 17일~1월 27일 (하루 앞당겨짐)


의도치 않게 6학년 총무를 맡게 되니 아무래도 첫날은 함께 동행해서 숙소와 식당 상태, 훈련 환경과 주변 인프라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이 중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야식 배달 가능 식당 전화번호를 따오는 일. 봉양건강축구캠프장은 제천 시내와는 약 7~8km 떨어진 곳이고 주변에 초등학교 1개 말고는 다른 시설이 없다. 관리 사무실을 방문에 물어보니 배달 가능한 식당은 3개이고 배달 가능한 음식은 치킨 아니면 피자다.


뭐라도 일단 오니 다행이다만, 그 흔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하나 없는 동네라니. 벌써부터 첫날 야식이 걱정이다. 눈만 뜨면 운동하고 돌아서면 배고픈 13세 아이들인데 10일을 잘 견딜 수 있을까.

2024년 1월 22일 월요일 ㅣ 눈오는 날 9시 경기라니....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숙소에서 주는 밥이 맛이 있거나 없거나 세 그릇씩 먹는다고 하니 그나마 좀 안심이 된다. 동계 훈련이 끝나고 집에 오면 그간 먹지 못했던 고열량 음식들을 일주일 동안 사다 날라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기지만, 뭐 어쩌겠는가. 운동하는 아이들이니 잘 먹어주는 것 또한 행복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선수가 되기 위해 엘리트 축구를 하며 다양한 학부모들을 만났다. 체육 사교육을 몇 개나 시킬 정도로 열정 넘치는 학부모님들도 계시고, 묵묵히 아이의 길을 멀리서 지켜봐 주시는 학부모님, 나름 축구의 조예가 깊은 학부모님들은 아이 훈련을 직접 시켜주시기도 한다.


2024년 1월 21일 일요일 ㅣ 제천 동계훈련 중


나와 남편은 운동은 좋아하지만 직접 가르칠 수준은 아예 안되고, 그렇다고 개인 레슨을 몇 개씩 넣어 줄 경제력도 안된다. 어떻게 보면 아이의 꿈을 멀리서 지켜보며 가장 최소한의 것만 하는 약간의 방임형 부모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부부가 이런 스탠스를 취하는 이유가 있다.


세상에 태어나 40년을 넘게 살면서 엄마, 아빠도 그 무엇이 되지 못했고 여전히 50대는 어떻게 살지, 60대는 뭐 하고 살지 걱정하고 사는데 너는 축구 선수가 꿈이니 무조건 국가 대표가 되고 유럽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기 때문이다.


간혹 구장에서 아이 뛰는 걸 보러 갈 때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할 거면 그냥 빨리 그만 두면 좋겠어요" "저따위로 뛰는데 무슨 축구선수가 되겠어요"라고 말하는 학부모님들이 있다. 모든 학부모님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겪어보니 이 말이 정말 진심인 학부모님들이 있었다.


나는 아들이 이루고 싶은 목표를 쉽게 그만두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이 되지 못하면 어떤가. 이 무엇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니 세상이 정한 그 무엇이 되지 않는다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해 꾸준히 간다면 그 길을 가는 과정에서 분명 배우고 얻는 것이 있을 테고 사회적 통념상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길이 있을 뿐, 원래 삶에서 정해진 건 단 하나도 없다.



그래서 아들이 축구선수가 안되면 좋겠냐는 질문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운동선수가 되는 것은 아들의 꿈이고, 선수가 되고 안되고는 내가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다만 나는 엄마이니까 아들이 가는 길을 응원해 주고, 어려움이 생기면 함께 해결방법을 찾아가며 길고 긴 꿈의 길을 함께 걷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나도 그 무엇이 되고 싶었지만 그렇게 소망하던 그 무엇이 되지 못했다.  직장인, 강사, 대학 겸임교수, 출간 작가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역할을 지나왔지만 내 마음이 쏙 드는 그 무엇이 되지 못했을 뿐, 아무것도 아닌 내 인생이 보잘것없다는 말은 아니다.


살아갈 날이 아직 많은, 이제 고작 축구를 배운 지 4년째 되는 아이에게, 이제 시작인 아이에게 국대가 돼라, 손흥민이 돼라, 황희찬이 돼라, 꿈을 크게 가져라라고 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부모가 먼저  높은 기준을 정해놓는 것,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마음에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대못을 박고 싶지는 않다. 그게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압박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 큰 꿈을 마음속에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게 순서에 맞는 거라 생각한다. 꿈의 크기가 클수록 감당해야 하는 것들도 많아지는 법 아니겠는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 중에 사람만이 유일하게 자기 자식을 말로 때린다고 한다. 심지어 자식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는 부모들도 있다.


아이의 꿈이 정말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면 아이의 재능이나 운동 능력을 먼저 따지기 전에 부모부터 올바르고 건강한 메탈을 가지는 것이 첫 번째 해야 할 일 아닐까.




아들아.


너도 네가 원하는 그 무엇이 되고

엄마도 엄마가 원하는 그 무엇이 되어보자.

늘 한결같이 너를 믿고 응원한다.


사랑해 ❤️

건강히 잘 지내고 주말에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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