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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아피디 Jan 27. 2021

감사를 알게 해 준 불안

 브런치 어느 글을 보니 우울증으로 10년을 지낸 사람이 매일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치료가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아무 감흥 없이 지나갔을 문장들이다. 그런데 요즘은 감사라는 감정이 뭐지?라고 진지하게 그리고 새삼스럽게 묻게 된다.


 감사 사랑 이런 것들은 내 인생에서 좀 낯선 단어들이었다. 내 글들을 읽어 보신 분들이라면 짐작하시겠지만 나란 사람 외향적이고 웃고 떠드는 것만이 인생의 목적인 것 마냥 살아왔다.


 각박하고 치열한 방송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삶의 전부였다. 분투하고 생존하고 앞서가고 뒤쳐지고 하다 보니 세월이 이만큼 지나왔다. 머릿속이 멈춰진 적이 없다. 삶을 곱씹을 틈이 없었다. 그러한 틈이 생기면 큰일 난다고 생각했다. 틈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웃고 떠드는 속내에서는 늘 초조와 긴장과의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을의 위치에 있는 외주제작사의 피해의식, 갑 중의 갑 연예인들과의 밀당, 더 이름을 날리고 싶어 자신을 다그치는 것, 그리고 개인적인 성장도 함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들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감사 사랑 이런 것은 그저 문자로만 봐왔고 마음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왁왁대며 살아왔으니 말랑말랑한 감정들은 왠지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그런 것들은 얌전한 사람들이나 가지는 감정이라 여겼다.


 엔진이 꺼진 배 위에서 잔잔한 바다를 표류하는 기분으로 지낸 지 이제 4개월이 되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떠있는 기분이다. 정말 솔직하게 적응이 안된다. 기분이 평안하다가 불안하다가를 계속 왔다 갔다 한다. 씩씩하다가 풀 죽었다 반복한다. 원래 감정이 널뛰고 늘 웃었다 걱정했다 일희일비 잘하는 성격이지만 이번에는 진폭이 다르다. 마음이 평안한 만큼 불안할 때는 또 엄청 불안하다. 아마 처음 겪는 생의 전환이라서 그런 듯하다. 그때 읽은 글이 감사에 대한 글이었다.


 자기 계발 책들에 수도 없이 나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말 그대로 가슴을 쪼개며 파고들었다. 엇 난 그동안 뭘 감사하고 살았지? 거의 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가진 것 누리는 것은 전부 당연한 것이고 심지어는 늘 지금 이상태는 많이 부족하므로 더 가져야 되고 내 재능은 아직 다 발휘되지 못했다는 결핍감이 주된 감정이었다. 감사를 1도 모르고 살아왔다.


 상황이 많이 바뀌고 달리다가 멈춰 섰고 인생의 진로도 바꾸려니 마음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서 비로소 감사에 눈을 뜬다. 진로를 바꾸려는 나에게 응원해주는 동반자가 있다. 친구들이 지인들이 진정으로 격려해준다. 이전 같으면 그런 응원들이 내 마음에 감사함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많이 불안했던 만큼 그런 응원들이 진심으로 깊이 감사하다고 느껴진다. 처음으로 느낀 울림이 진한 감사함이었다.


 내친김에 나도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감사일기를 써보기로 한다. 매일매일 감사하는 일을 핸드폰에라도 메모하기로 한다. 불안을 잠재우는 것을 넘어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미 마음 깊이 감사가 주는 혜택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감사라는 개념을 알게 해 준 불안이라는 감정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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