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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트 Oct 13. 2022

걱정마, 다시 말면 돼

오늘의 식탁. 계란말이

#대왕 계란말이의 비밀 #어쩌다 마흔셋 #X세대 엄마의 MZ세대 딸 양육기 #사춘기 #이거나 먹자





계란말이를 할때면 늘 계획보다 커진 어마어마한 크기의 결과물이 나오곤 한다.

남편은 포장마차 스타일이라며 좋아하지만, 그건 사실....


망칠때마다 계란물을 더 부어가며 계속 더 말기 때문이다



오늘의 식탁. 계란말이




오랜만에 계란말이나 해야겠다. 자투리 야채들이 많아서, 시금치도 총총 다지고. 그래, 양파가 빠지면 안되지. 당근도 대파도 넣어야겠다. 잘게 잘게 잘게 .... 때로는 귀찮아서 야채를 넣지 않고 만들때도 있지만 그러다보면 무언가 부족한 맛이 나오기도 하고. 이럴때라도 야채를 넣어서 조금이라도 더 골고루 먹이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 오늘도 냉장고 속 갖은 야채가 총 출동 한다.


계란말이를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은 아닌데 숙련도가 약간 필요한 작업이다.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후, 키친타올로 한번 닦아내고, 계란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말아주면 된다.  어려운 것은 없다. 하지만 직접 해보는 것이 좋다. 처음엔 계란물이 타거나, 잘 말아지지 않아서 곤란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요령은 있다. 불을 약하게 하라는 것, 한번에 많이 붓지 말고 조금씩 부어가며 말아내라는 것, 속재료가 너무 많아도 잘 말아지지 않으니 속재료는 적당히 준비하라는 것 등등. 다시말하지만 결국 스스로 여러번 해 보면서 몸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다. 각자의 집마다 화력도 다르고 프라이팬의 상태도 다를 것이며 속재료로 무엇을 넣었는지 까지 계란말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때 마다 상황에 알맞은 불 조절과 손기술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에, 처음엔 성공했던 계란말이가 그 다음에 할 때는 망치거나, 늘상 잘 되던 게 어느 날은 잘 안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계란말이가 잘 안되서 찢어지거나 스크램블처럼 엉망이 되어도 

계란 몇 개 더 풀어 계란물을 부어주면서 다시 모양을 잡아주면 바로잡을 수 있다.  단지 좀 커다란 계란말이가 될 뿐이다. 그러니 언제든 계란말이를 바로잡을 기회는 열려있는 셈이다. 


작년 이맘때 쯤. 우리 큰애는 인생의 첫번째 좌절을 겪었다.  국악중 입시에 실패한 거다. 실패, 좌절,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작년에 나는 아이 못지 않은, 어쩌면 아이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었다. 


6학년이 되면서 큰애가 국악중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아래층 살던 새댁에게 취미로 가야금을 배웠던 큰애는 그 선생님을 통해 국악중, 국악고로 진학하는 것에 대한 로망 (어쩌면 부모를 벗어나 기숙사 생활을 하는 데 대한)을 갖게 되었고, 나 역시 그 선생님을 통해 국악쪽 진학이 얼마나 좋은 대학 타이틀을 가져다 줄 것인지에 대해 들으며 헛된 기대를 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단지 대학 타이틀을 보고 설레 한다는 게 속물같지만, 그당시에는 국악중에만 붙으면 국악고에 진학하고 서울대, 이대, 한양대, 한예종 중 한군데의 대학에 진학한다는 말에 최소한 아무리 못해도 한양대라니 하고 설렜던 거다. 만약 국악중에 합격한다면 대학까지 걱정없겠구나 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떨어졌고, 우리 큰애는 인생 최초의 좌절을 겪게 되었는데, 내 딸이 떨어질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현실을 제대로 느낀 계기였다. 부모들은 누구나 자기 자식이 특별하고, 똑똑하고, 굉장히 능력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 역시 그랬고, 현실에 그정도 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너무나 많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은 거다.  


사실 떨어질거라고 까지는 생각못했지만 조금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긴 했다. 봄에만 해도 선생님이 얘가 절대음감이라며 합격을 자신하셨었는데 여름이지나고 9월무렵부터 수업중에 졸려 한다며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것 같다고 몇번이나 얘기하셨고, 내가 보기에도 얘가 사춘기인가 싶게 이성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렇다고 이상한 짓을 한건 아니지만 6학년짜리 여학생이, 놀이터에서 잡기놀이를 하느라 수업에 늦고 틈만 나면 놀이터에 달려 나가는 것이 영 마뜩치 않았던 거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 엄마를 통해 우리 큰애가 남자아이들과 틈만나면 놀이터에서 뛰어논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참 암담한 기분이었다. 하필 이 중요한 시기에 이성에 관심이 생겨 버리다니. 그저 놀이터에 뛰어 노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린 애도 아니고 그 묘한 느낌적인 느낌을 알 것 같았다. 그 설렘이 좋은 거겠지. 썸도 아니고 쌈도 아닌.  


내 아이는 아무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그저 놀이터에서 몇번 뛰어 놀았을 뿐이지만 그 순간에도 시험준비에 매진했던 아이들이 합격했을 거다. 시험이 끝나고 나오며 마치 대입 시험이 끝난 듯 오열하는 아이들 속에서 그저 해맑게 웃으며 나오는 내 딸을 볼때 들었던 불안감은 바로 그거였다. 이 시험에 인생을 건 아이들과 그렇지 않았던 우리 딸. 이 시험의 중요성을, 단 몇 점 차이로 당락이 좌우되는 것을 알고 준비해온 아이들과 별 생각 없이 준비한 우리 딸. 


사실 국악중 입시에 떨어지고나서 거의 한달을 나는 우울했다. 딸을 야단칠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말 안하고 넘어가기도 답답한 상황에서, 남편은 스스로 깨달았을 거라고 아무 말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놀이터에 뛰어나가는 딸애를 보며 너무나 속상했었다. 입시에 실패하고도 반성은 커녕 영어 시간 마다 졸고 있다는 과외선생님의 말에 내가 알았던 내 딸이 아닌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붙잡고 대체 왜 그러느냐고 묻고 싶었다. 몇번이나 다그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본인이 제일 속상하지 않을까 싶었고, 남편에게 상의하면 남편은 지켜보자며 말렸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이러다 내가 답답해서 병이 나겠다 싶었던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결국 시간이 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큰 애는 사춘기였다. 대부분 사춘기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반항하는 시기라 생각하는데, 우리 딸은 아무런 반항적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춘기였다.  사춘기는 아이의 몸이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는 시기를 의미한다. 우리 큰애는 그 당시 아이에서 성인의 몸이 될 준비를 하느라 호르몬이 나와 자꾸만 졸렸던 거고, 이성에 관심이 생겼던 거다. 당연한 일이다. 그 당연한 몸의 변화가 하필 입시준비를 하던 시기에 일어났을 뿐이다. 


그 당시 내가 한달 가까운 시간을 불행했던 것은 단지 내 마음이 속물적이어서 였다. 국악중 입시를 준비한답시고 들인 돈이 아까웠고, 떨어져서 주변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웠고, 가지 못한 4개의 대학이 마치 붙었다 떨어진 것처럼 아쉬웠다. 문앞까지 다 갔다가 놓친 기분이었다. 결국 내 불행은 내 마음 때문임을 깨닫고 다시 우리 딸을 진심으로 사랑스럽게 바라 볼 수 있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국악중에 진학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우리 아이의 긴 인생에서 그렇게 좌절할 사건은 아니다. 120세 시대, 고작 열 세살에 인생을 정할 필요는 없다. 그때는 그 당연한 이야기가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힘들었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실패가 아니라 그저 한 과정이었던 거다. 

 

계란말이를 말다가 좀 미워지면, 좀 찢어지면, 계란물을 더 붓고 다시 말아내면 된다. 계란말이를 망쳤다고 내다 버릴필요는 없다. 실수를 경험삼아 불을 조절하고 계란물을 더 부어가며 인내심을 가지고 말아내면 좀 더 커지고, 어쩌면 좀 더 맛있는, 대왕 계란말이가 탄생할 수 있다. 



-계란말이를 하며 인생을 공부하는 나, 진지충?

-요리하는 시간이 마음 수련하는 시간 ㅜㅜ

-오늘의 식탁, 계란말이- 따듯할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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