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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의 해피레터 Oct 29. 2022

열일곱 번째 레터 : 다정한 말들과 복닥복닥 모여있자

2022-10-02 발송 레터 


토요일 오전,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한 함박스테이크 집이 눈에 띄었다. 마침 점심때였고, 밖에 놓인 메뉴판의 사진도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들어갔다. 사람이 한창 많아야 할 시간인데도 넓은 식당에 손님은 나 하나뿐이었다. 천천히 식사하는 동안에도 손님은 더 오지 않았다. 고즈넉한 식당 구석에서 한 아이가 야무지게 사과를 먹고 있었다. 부부 사장님의 어린 자녀인 것 같았다. 곁에서 부부 사장님은 웃으면서 아이 입에 사과를 넣어주셨다. 친절하시게도 손님인 나에게도 사과 조각을 그릇에 담아 따로 건네주시기도 하셨다.


한산한 분위기에 부부 사장님들은 약간은 무료해 보이셨다. 그 상황에서 내 귀를 사로잡는 게 있었으니, 바로 식당의 음악이었다. 식당에서 무려 CCM(*대중음악의 형식을 취한 기독교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 익숙한 노래 가사들이 귀에 감겨왔다. CCM과 함박스테이크의 조합이라니. 생소하긴 했지만 웃으면서 생각했다. 함박스테이크를 먹으면서 이렇게 은혜롭게(?) 식사할 수 있구나. 식사를 마칠 무렵, 여전히 여유로운 식당을 보며 사장님들께 응원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계산대에 가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맛있게 잘 먹었다고. 그리고 이 식당이 잘 되고 사장님들께서 평안하시기를 기도하겠다고 했다. 사장님의 눈이 동그래지시더니 활짝 웃으시면서 고맙다고 하셨다. 식당을 걸어 나오면서 나는 부부 사장님들과 사랑스러운 자녀분의 평안을 위해 짧게 기도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바빴기 때문에 함박스테이크 집은 깜빡 잊고 정신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을 하고 나오다가 그때 그 함박스테이크 집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다른 메뉴를 먹어볼까?'라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다른 손님을 받고 계시던 사장님께서 날 보시더니 눈이 반짝거렸다. 사장님은 내 주변을 기웃거리며 나를 유심히 관찰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주문하자 사장님이 화색을 하시곤 말씀하셨다.


“아가씨. 아가씨 전에 여기 자리(*한 달 전 내가 앉았던 자리를 정확히 가리키셨다)에 앉았던 아가씨 아니에요?”


“아, 네 맞아요!”


사장님은 ‘목소리를 들으니까 그 아가씨가 맞아.’라고 말씀하시며 무척이나 반가워하셨다. 그리고는 따스한 눈빛으로 날 바라봐주시며 말씀하셨다.


“사실 아가씨가 왔을 때 우리가 힘든 시기였거든요. 그런데 아가씨가 그렇게 말해주고 가고 나서, 아가씨 말이 계속 생각이 났어. 힘들 때마다 드문드문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아가씨가 오면 그때 해준 말이 정말 힘이 났다고. 고맙다고 말해주려고 계속 기다렸어.”


그 말을 듣고 정말 놀랐다. 나는 그 뒤로 바쁘게 보내서 이 식당을 잊고 있었는데. 내가 건넨 말이 사장님의 마음에는 오래도록 남아, 사장님께 힘이 되어주었다니. 내가 앉은 자리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내 얼굴과 목소리를 알아봐 주시는 사장님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가 건넨 말 한마디가 사장님께는 정말 많은 힘이 되었던 것 같다고. 말 한마디가 사장님께 이렇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던 적이 많았다. 누군가의 말이 마음속에서 오래오래 남았던 적이. 방송 작가를 하면서 다른 진로를 고민할 때 친구 쁘이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난 왜 해윤이가 스타 강사하면 잘할 것 같지? 해윤이 강사 해 봐! 해윤이라면 분명 스타 강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강사를 하는 내가 잘 상상이 안 되어서 쁘이의 말을 웃어넘겼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방송 작가를 완전히 그만두겠다고 마음먹고 구인 사이트를 뒤적거릴 때였다. 번아웃이 온 채로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고 있는데, 한 공고가 눈에 띄었다. '논술학원 선생님을 모집합니다.' 그걸 봤을 때 이 일이라면 왠지 내가 재밌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경력은 전혀 없는 일의 분야. 이때 생각났던 게 쁘이의 말이었다. ‘해윤이라면 강사 분명히 잘할 것 같다고. 스타강사까지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때의 말로 용기를 얻어 논술학원 선생님에 지원하게 되었다. 지금은 나의 직장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언제는 동료 선생님과 함께 밥을 먹게 된 날이었다. 이날 학원 업계의 현실에 대해 대화를 하다가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해윤 쌤은 나중에 그냥 원장이 되세요."


"네?"


"해윤 쌤네 반 아이들을 보면, 해윤 쌤을 너무 좋아해서 학부모님도 학원에 안 보낼 수가 없겠어요. 해윤 쌤이 맡았던 아이들은 다른 반이 되어도 해윤 쌤한테 돌아가고 싶어 해요."


내가 약간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선생님이 말을 덧붙이셨다.


"그 재능을 살려서 원장이 되시면 좋겠어요. 저는 잘 가르치는 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측정할 수 없는 엄청난 재능."


이때 대화는 시간이 지났어도 내 안에서 두고두고 남았다. 일이 힘들거나, 마음이 낙심하려고 하여도 저 말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 아빠는 이과 쪽 계열의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셨다. 그래서인지 학생 시절, 대학교를 고민할 때 아빠는 내가 충남대 기술교육학과에 가길 원하셨다. 그 과를 나와서 학교 기술 선생님을 하라는 거였다. 하지만 문과였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술 쪽 계열 공부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거절했는데 아빠는 이때의 일이 두고두고 미련으로 남으셨나 보다. 내가 학원 일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릴 때마다 아빠는 이렇게 핀잔을 주곤 하셨다.


"뭐 적성에 맞는 길을 가겠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말하더니 고생하네! 아빠 말대로 했으면 편하게 학교 선생님하고 있었을 텐데."


그 말을 처음에 들을 땐 아빠에게 속상했는데 지금은 그 장난 섞인 핀잔을 넘길 수 있다. 왜냐하면 동료 선생님의 말이 내 마음을 단단히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료 선생님은 나보고 측정할 수 없는 재능이 있다고 했어. 나보고 원장이 되라고 했어. 그러니까 난 지금 잘하고 있어.'


자신의 마음이나 감상을 열심히 표현하고, 다정하고 곱게 말하는 걸 일각에서는 ‘오글거린다’, ‘낯간지럽다’라고도 한다.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너를 위한 말'이라며 독한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다. 격려해주고, 다정한 따스한 말은 그저 연약한 말뿐이라고. 그건 그저 듣기 좋은 꿀 바른 소리일 뿐 아무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다정한 말이야말로 연약하고 스러지기 쉬운 게 아니라, 강하게 누군가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말이라는 건 공기 중에 흩어져버려 비록 흔적도 안 남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뿌리를 내린다면 오래오래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으론 안 돼요. 수십 년 간 현장에서 아이와 부모가 아파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어요. 어떻게 도움이 될까. 초기엔 의학을 기반으로 아이의 마음을 분석한 ‘마음처방전(2008년)'도 내고, ‘못 참는 아이 욱하는 엄마' ‘화해’까지... 차근차근 대한민국의 육아 현실을 짚어왔어요.

그러다 결론을 내렸죠. 결국 ‘말이 바뀌어야 한다. 언어가 전부다. 아이의 행동을 바꾸고 싶으면 쉽고 정확한 사랑의 언어를 써야 한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아이는 부모를 항상 용서한다" 오은영의 정확한 사랑의 언어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1/14/2020111400143.html


“결혼 연구의 권위자인 가트맨 박사는 수많은 임상 연구를 통해 ‘경멸적 언어를 쓰는 부부는 99% 이혼한다’는 걸 발견했어요. 싸움의 횟수와 상관없이 그렇습니다.



언어가 중요합니다. 범주라는 영어 단어는 비난이라는 그리스어에서 기원했어요.저는 무심결에라도 젊은 기자들을 험담하면서 다른 언론인과 유대감을 강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다른 사람들을 한데 묶어서 ‘그들’ ‘저 사람들’이라고 부르지 않으려고도 조심하죠.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타인을 설득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라”


https://biz.chosun.com/topics/kjs_interstellar/2022/09/17/3YITJFIJRBE2ZBJ7GHVSVOI3ZQ/


이 기사들을 처음 읽었을 때 ‘말’의 힘을 새삼 실감해 잠시 멍했다. ‘그렇구나.. 정말로 말이 전부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것이 진실로 믿어졌다. 왜냐하면 해피레터 14편 ‘난 몰랐어, 언어가 이리 다채로운지’ (https://stib.ee/kR36) 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언어가 아이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입으로 내뱉는 말도 우리의 마음의 모양을 빚어낼 수 있다는 게 느껴졌다. 오은영 박사님이 육아는 결국 ‘말’부터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낄 정도로. 싸움의 횟수와는 상관없이 경멸적 언어를 쓰는 부부는 끝내 이혼한다는데. 사람들이 누군가를 ‘우리’로 호칭하지 않고 ‘그들’이라고만 불러도 그게 선 가르기의 시작점이 된다는 것을 보아도.



인터넷에서 본 건데, 어떤 아이가 쓴 사랑스러운 시가 있다. 나는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밑에다 이 말도 추가하고 싶었다.


다정한 말도 공짜.


공기를 마시는 것도,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도, 하늘 보는 것도 공짜라서 감사하듯이. 다정한 말을 하는 것도 나에게 전혀 어떤 비싼 값도 들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것만으로 서로 힘을 북돋아 줄 수 있으니 정말 행운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다정한 말은 거창한 말을 바라는 건 아니다. 언제는 학원에 내가 새로 개시한 원피스를 입고 간 적이 있었다. 원장님께서 날 보자마자 ‘해윤 쌤 지금 입은 옷 잘 어울려요.’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기분이 좋아서 웃으면서 수업 준비를 했다. 그렇게 수업 준비를 마치고 동료 선생님들과 밥을 먹으러 나갈 때, 한 선생님께서 내게 슬며시 다가와 말했다.


“해윤 쌤, 저도 선생님 보자마자 그 생각했어요. 지금 입고 있는 옷 잘 어울리신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깜빡해서 지금 말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원장님께서 내 옷에 대해 칭찬하는 걸 듣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며 상대에게 그 말을 한번 더 꼭 전해주려는 마음을 느껴서. 내가 이렇게 따스한 동료 선생님들과 일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날 기분 좋게 수업을 한 것도 모자라서, 지금도 그 원피스를 볼 때마다 그때 선생님의 말이 떠올라서 배시시 웃게 된다.


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조금만 더 친절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정한 말들을 나누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상처 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앞에서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으면 좋겠다. 그 말을 약으로 써보겠다고 참다가 속이 뒤집어지지 않으면 좋겠다. 차라리 일부러 다정한 말들에게로 찾아가 자신을 보듬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나를 성장시킨 말들은 기를 꺾게 하고 상처 주는 말들이 아니었다. 나를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진심 어린 말들만이 내 안에서 오래 머물렀다.


고등학교 때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해윤이는 어른 되면 재단 하나는 세울 것 같지 않아? ‘해윤 재단’ 뭐 그런 거.”


아마 그 친구는 그 당시의 내가 ‘세계 빈곤 문제’ ‘복지의 사각지대’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걸 알아서 그렇게 말해줬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로 신이 났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어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복지 재단을 세운다면, 정말 내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한껏 상기된 표정을 짓는 나를 보고 친구가 종이 위에 뭘 끄적였다.


“‘해윤 재단’ 로고는 뭔가 이렇게 생겼을 것 같아.”


친구는 ‘해윤 재단’이라고 글씨를 쓴 뒤에, ‘해윤’ 쪽 옆에 둥근 해가 빙긋 웃고 있는 캐릭터를 그려주었다. 그 로고와 친구가 해준 말은 내 마음속에 아주 오래오래 남았다.


그 친구와는 졸업하고 나서 연락을 하지 않게 된 지 오래되었지만, 그 말만큼은 내가 두고두고 기억했다. 훗날 그 뒤로부터 8년이 지나 ‘해윤의 해피레터’를 구상할 때 로고에 방긋 웃고 있는 해 캐릭터를 떠올리게 될 정도로 말이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친구가 그 말을 해준 게 지금까지도 참 고맙다. 나는 이 보석 같은 말을 오래오래 간직할 거다. 그렇다면 언젠가 정말 ‘해윤 재단’을 세울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니까

친구의 말 한 마디에 아이디어를 얻어 해피레터의 로고가 완성되었다.

말은 그 정도로 힘이 세다. 나에게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닥쳤던 적이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때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도 우리 축복의 말을 서로에게 해주자. 불평하고 냉소하는 말보다는 낙관하는 말을 하자. 나는 서로에게 해주는 그런 말들이 우리를 앞으로 살아가게 할 걸 믿어.”


나도 그 말을 믿는다. 실제로 지금의 나를 살게 하는 건 그때의 통화로 오갔던 온정 어린 말들 덕분이었으니까. 다정한 말들 사이에 복닥복닥 모여 있자. 나 역시 최대한 둥글고 따스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될 거다. 그런 말만이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말이니까.




Q.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다정한 말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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