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윤의 해피레터 Oct 02. 2022

열다섯 번째 레터 : 영원할 순간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

2022-09-18 발송 레터 




오은영 박사님이 아이의 학습 고민으로 찾아오는 부모님들께 두 가지 질문을 하신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수학 점수가 기억이 나는지."


이 질문에 대부분 기억이 안 난다고 답한다고 한다.


반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느라 밤을 새우고, 허벅지를 꼬집은 그런 순간은 기억하는지."를 물으면 대부분 자신이 열심히 공부한 순간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성취한 결과물은 내 기억에서는 사라져도,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은 오래도록 남는 것이다.



나도 있었다, 그런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찰나의 시간일지라도, 나에게는 영원히 생생할 순간.


그 기억이 앞으로 내가 무언가를 해내게 해줄 원동력이 되어줄 때가 있다. 그 영원할 순간을 또 맛보고 싶어서.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런 순간은 있을 것이다. 짧은 기억인데도, 그때를 떠올리기만 하면 남은 시간 동안 오래도록 행복하고 충만해지는 경험 말이다.


아마 내 친구 백하에게는 유럽에 갔던 순간이 그런 순간이었던 것 같다. 백하는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 유럽-특히나 프랑스에-과 완전히 사랑에 빠져버렸다. 백하는 학교에서 프랑스 단기 교환학생을 지원해준다는 걸 알게 되자 망설임 없이 곧바로 유학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백하가 학비를 준비하기 위해 휴학한 뒤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하는 거다. 휴학을 했으니 쉬고 싶기도 할 텐데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이나 하는 저 열정과 체력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하면서도 백하는 피로해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에 갈 미래를 생각하는 백하의 눈은 즐거움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백하는 나한테도 프랑스 교환학생 신청을 해서 자신과 같이 가자고 했다. 그때 나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그 당시엔 복학하면 4학년이니 취업 준비에 더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유럽에 가 프랑스 파리의 땅을 직접 밟고 누벼봤던 백하는 자신이 본 것의 감동을 나에게 다 전하지 못해 무척 답답해했다. 백하는 프랑스 땅을 직접 밟아봤고, 가보지 않은 나는 백하가 찍은 사진만을 보았다. 그리고 그건 정말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백하는 정말 손수 프랑스 교환학생으로 갈 돈을 마련한 것이다. 그 과정을 옆에서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원동력이 나올 수 있는 건 백하가 유럽에서 평생 잊지 못할 어떤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일 거라고. 교환학생을 준비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백하를 보며 나도 해외에 가게 되었을 때 어떤 순간을 마주하게 될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가 복학한 해 코로나가 시작되어 그 해는 해외 교환학생을 아예 모집하지 않았다.)


나와 백하는 코로나로 프랑스로 가지 못했지만, 이런 시국을 뚫고 현재 기어이 해외로 간 언니가 있었다. 바로 허그 언니였다. 허그 언니는 우리는 못 갔던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다. 프랑스를 다녀오고 나서 우리에게 이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처음 알려준 것도 언니였다. 언니는 블로그에 프랑스에서 썼던 일기를 옮겨 적어두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마무리했다. 이 글을 자주 꺼내 볼 것이라고. 꺼내 볼 때마다 행복해진다고 말이다.


그리고 허그 언니는 이십 대가 다 가기 전에, 더 늦으면 영영 해외에서 살아볼 기회가 없을 것 같다며 해외 취업을 도전했다. 취업에 당당히 성공한 언니는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나는 허그 언니가 프랑스에서 ‘영원할 순간’을 맛봤기에 미국으로 떠날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백하와 나는 프랑스에 결국 가지 못했지만 허그 언니는 프랑스에서 여름 방학 동안 직접 살아보았다. 그리고 그건, 그녀가 혈혈단신의 몸으로도 미국으로 떠날 정도로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영원할’ 순간은 과거의 사건인데도 시간을 초월하여 현재의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고 미래의 나의 모습까지 빚어낸다.


이제 나는 나의 '영원할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영원할 순간 하나, 절대 포기하지 말기


고등학생 때 논술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논술시험의 문제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출제자 선생님께서 우리를 고등학생이 아니라 대학생으로 생각하고 내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글자를 읽는데도 지문의 뜻이 전혀 독해가 안 되는 경험을 처음 해보았다. 지문이 한글도, 영어도 아니고 이탈리아어로 써 있는 기분이었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공부를 잘한다고 소문이 난 우등생들도 답안을 다 쓰지 못한 채 나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자 나도 포기하고 일찍 일어나 나가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저 우등생들도 포기하고 일찍 나가는데 나도 그냥 나가버리면 안 되나?’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나의 머리를 쥐어 짜내 답안지 한 바닥은 다 채우는 데 성공했다. 물론 나도 내가 뭘 쓴 건지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엉터리 답안이었다.


대략 이 정도의 엉터리 답안이라 생각하면 된다.


글쓰기에 평소 자신이 있는 나였는데도 이번 대회에서는 입상조차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포기하지 않고 중간에 나가지 않은 것, 답안지를 다 채운 것만으로 나 스스로 뿌듯해했다. 시간이 흘러 결과 발표 날이 되었다. 선생님 심부름을 하느라 그저 복도를 걷던 나는 잊지 못할 어떤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 학교에는 복도에 전광판 역할을 하는 작은 TV가 걸려있었다. 그 전광판에는 학교 행사 안내나, 학교 공지 그리고 학교 대회의 수상자 이름이 올라오곤 했다.


그날 복도의 전광판에 2015년 논술대회 수상자 명단이 적혀 있었다. 맨 첫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상 박해윤


절대 내가 글을 잘 써서 입상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그때의 나는 문제가 요구하는 것도 파악하지 못했다.- 논술 대회에 참가한 절반이 답안지를 채우지 않고 중간에 나갔기 때문에, 내용이 어떻든 답안지를 다 채웠다는 것 자체에 큰 가산점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 경험은 나에게 두고두고 큰 힘이 되었다.


어떤 일에 놓였을 때 간절히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희망 고문’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순간이 너무 괴로워 차라리 포기를 택하고 싶을 때. 그런 순간마다 내 머릿속은 나에게 과거의 기억을 되감아 어떤 장면을 보여줬다.


그 장면은 주로 고등학교의 복도를 걷는 나로 시작된다. 그 뒤엔 ‘다음 수업이 뭐였지’ 같은 시시한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걷던 내가, 전광판을 향해 고개를 든다. 전광판엔 입상조차 기대하지 않은 대회의 수상자가 되어 가장 맨 위에 나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걸 보고 멍하니 우뚝 서는 모습까지.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에 슬로우 모션처럼 그 장면이 복기가 된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이를 악물면서 포기하지 않을 힘이 생기게 되는 거다.


문예창작과 대학 동기 중 현재 유일하게 자신의 작품을 출간해 작가가 된 미니언니가 있다. 언니는 혼자서 뚝심 있게 100편가량 회차의 웹소설을 완결했다. 언니는 출판사에 투고를 했는데 초반엔 답변으로 다 반려 메일을 받았다고 했다. 계속되는 거절 메일에 언니는 속상함이 너무 커서 ‘어차피 반려겠지..’ 라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온 메일을 열흘 간 열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 메일에 언니의 작품으로 출간 계약하자는 소식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 언니에게도 앞으로 ‘포기하지 않게 해줄’ 영원할 순간이 생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영원할 순간 둘, 맨땅에 헤딩하기


한 독립 출판사가 입상자의 작품을 책으로 출간해주는 공모전을 열었다. 나는 입상을 했지만, 나중에 그 프로젝트는 엎어지고 말았다. 나의 책이 나올 거라 꿈에 부풀었던 나는 큰 실망감을 겪었다. 상심한 것도 잠시, 곧 오기가 생겼다. 나는 내가 원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독립 출판사를 세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계획을 세우다 보니 독립 출판사는 무리였고, ‘텀블벅을 통한 출간’이라는 좋은 방식이 있어서 그 방법을 택했다.


꿈은 일단 시작해야 가능한 거였다. 나는 나의 꿈을 친구들에게 일부러 말하고 다녔다.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직접 출간할 거야!”


그렇게 하도 말하고 다니니 ‘그래서 그 프로젝트 언제 시작할 건데?’ 식으로 물어봐 주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한 친구들이 아이디어도 보태주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계획이 구체적으로 잡히자 나는 더 이상 행동을 미룰 수 없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프로젝트의 멤버들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했다.


과제와 시험에 바빴던 와중에 나는 학교의 복도와 계단, 화장실 앞 등등에 포스터들을 붙이러 돌아다녔다. 당연히 프로젝트의 멤버들을 모집하기 전이었으므로, 혼자서 100장가량을 붙였다. 더운 여름, 포스터 백 장을 옆구리에 끼고 넓은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혼자 포스터를 붙이러 다닌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는 속으로 ‘나는 꿈을 이루는 중인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헛둘헛둘 열심히 계단을 올랐다. 이때를 시작으로 나는 나를 도와준 사람들 덕에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의 프로젝트를 한 줄로 평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무식해서 용감했다.’


책을 만들고 유통하는 게 어떤 괴로움을 수반하는 과정인지 알았다면 절대로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서도 그 프로젝트를 또 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에 선뜻 긍정의 답이 나오지 못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프로젝트를 성공한 이후로 ‘맨땅에 헤딩하는 법’을 배웠다. 진실로, ‘해피레터’를 오픈할 수 있었던 건, 프로젝트를 시작해본 경험 덕분이었다.


이슬아 작가님과 봉현 작가님의 메일링 서비스를 구독하면서 언뜻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내 에세이를 메일링 서비스로 보내고 싶다.’


그 내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바로 대답해줬다.


‘하고 싶어? 그럼 지금 시작하자.’


프로젝트를 완수한 나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 두려움을 거의 갖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첫 시도의 결과물이 보잘것없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걸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떤 작가가 이렇게 말했다. 엉망진창인 원고는 언제라도 퇴고할 수 있어도, 빈 원고지를 퇴고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어느 날,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번에도 내 내면의 목소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최근에 아이패드를 샀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충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패드를 사지도 않으면서 그림을 잘 그리는 꿈을 이룰 수는 없다고 믿는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엇이든 가볍게 시도부터 해볼 것이다.

아이패드로 햇살이에게선물해줄 그림을 처음 그려봤다.계속 그리다 보면 늘겠지?



영원할 순간 셋, 끝까지 써보기


2020년 1월 16일, 나는 1년간 준비한 장편 소설을 완결 냈다. 소설 마지막 장에 찍혀있는 139페이지라는 숫자를 보며 나는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공모전에 장편 소설을 내기 위해 1년간 규칙적으로 글을 썼다. 휴학하던 시기에, 오전 알바를 끝내고 점심을 먹은 뒤 노트북을 들고 2-3시쯤 카페를 갔다. 그리고 카페 마감 시간인 밤 10시 반까지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카페에서 짐을 두고 자리를 오래 비우는 건 폐가 되므로, 아예 저녁을 굶었다.


그렇게 거의 1년간 매일매일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그게 습관이 되자 이런 일이 있었다. 완결이 코앞이었을 때, 나는 아마 글을 다 쓰는 날짜가 금요일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목요일에 정신없이 쓰다 보니 그날 안에 에필로그까지 다 쓴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냥, 매일 쓰다 보니까 어느새 완결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장편 소설을 완결한 뒤 그 순간에 대해 예전에 적어둔 글이 있었다. 해피레터를 쓰면서 그 글이 다시 읽고 싶어져 찾아 읽어보았다. 작품을 탈고한 2020년의 나는 그 순간을 겪고 얻은 것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언니 그런데 나는 분명 작가가 되어 있을 것 같아. 왜냐하면 나 내가 스스로 글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걸 위해 지금 또 얼마나 많이 쓰는지 알거든. 나는 내가 등단을 못해도, 여흔이 되든 아흔이 되든 계속 글을 쓰게 있을 게 그려져. 그렇게 계속해서 써간다면 꿈을 완전히 이루진 못해도 분명히 내가 바라는 모습에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                                  


2년 전 쓰고 다시 읽지 않은 글이라, 내용이 마치 남이 쓴 글처럼 생소했다. 그래서 특히 나는 이 부분을 읽고 2020년의 과거의 나에게 조금 놀랐다.


‘나는 이때부터 내가 글쓰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구나.’


과거의 나는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쓸 거라고 나 자신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그런 과거의 나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맞다고. 너는 글을 계속해서 써왔다고.’


저 글 이후로 졸업해서 방송작가가 되었을 때는 블로그에 부지런히 글을 썼다. 지금은 해피레터를 통해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쓰고 있다. 꾸준히 써서 장편 소설 하나를 완성해 본 경험. 그 경험은 내가 나 스스로 글쓰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그리고 나는 분명히 글을 꾸준히 쓸 것이라는 확신을 내게 심겨주었다.


나는 해피레터를 십 년은 연재할 거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닌다. 이제 나는 그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잘 안다. 나는 정말로 십 년 뒤에도 해피레터를 연재하고 있을 것 같다. 다섯 번째 레터에서 말한 적 있듯이, 그때는 원장님이 되어 원장님이 되었을 때의 소재로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어서도 부지런히 글을 써서, 독자들과 소통할 미래의 나를 믿는다. 영원할 순간이 나를 그렇게 이끌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영원할 순간’이 있고 그 기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백하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교환학생 자금을 마련해봄으로써,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졌을 거라는 걸 안다. 그 자신감이 앞으로 백하가 도전해야 할 순간에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도. 장편 소설을 완결해서 출간 계약까지 이끌어 낸 경험이 있는 미니 언니이기 때문에 지금 새로운 장르의 소설을 연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막판에 다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두려움을 딛고 해외로 발을 내딛은 허그 언니가 미국에서 나는 모를 어떤 ‘영원할 순간’을 만들어 올 것을 믿는다. 그 순간들이 앞으로 우리는 상상도 못해 볼 방향으로 언니를 성장시킬 것도.


나에게는 지금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써서, 61명의 구독자님들께 메일로 발송하는 해피 레터도 영원할 순간 중 하나이다. 출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신나게 메모하며 글을 써나갔던 순간, 누군가에게 닿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숙고하여 글을 완성해본 순간, 가슴 뛰게 하는 피드백을 만나 충만한 기쁨으로 밤을 설쳤던 순간. 그 순간들의 기억으로 미래의 내가 또 어떤 새로운 시작과 도전을 하게 할지도 무척 기대된다.


“뇌는 감정을 자극하고 예측을 벗어난 경험을 기가 막히게 가져옵니다. 첫 키스, 대학 졸업식 날, 자녀의 탄생 같은 주요 장면들… 이런 일화 기억의 사건들은 대개 15~30세에 몰려있어요. 첫사랑, 첫 직장 등 첫 경험이 가장 많기 때문이죠. 긍정적인 사람의 기억 극장은 웃음과 경외로 편집돼 있고, 부정적인 사람의 기억 극장은 비극의 이미지로 플레이되겠지요.”

계속해서 새로운 걸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과 같은 평생 학습해야 합니다. 과거로 플래시백 하는 것을 멈추고, 현재에 머무르는 연습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하는 연습을 하세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치매로 기억 사라져도 행복감 남아... 뇌는 우리 말 잘 듣는다”


https://biz.chosun.com/notice/interstellar/2022/06/11/DLQSCLVY2BCN7M5A5HHNBTQ2YM/


한 기사를 읽었는데, 치매에 걸려도 잊히지 않는 생생한 기억들이 있다고 한다. 기억의 예시를 읽으며 저 기억들이 ‘영원할 순간’이겠구나 생각했다.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보면, 사후세계에서는 죽은 자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영화로 만들어 준다. 망자는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서, 그 기억을 안고 천국으로 가게 된다.


망자의 추억을 영화로 만들어준다는 사후세계에 대한 영화 <원더풀 라이프>


죽음에 가까워져 내 기억 극장을 튼다면 어떤 장면들이 나올지는 지금의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뉴스 기사의 인용처럼 나의 기억 극장은 웃음이 많은 아름다운 장면들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런 장면들이 너무 많아서 내 기억 극장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추억들이 차고 넘치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런 영원할 순간은 ‘지금’의 살아있는 나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니까.

그리고 ‘앞으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이끌어가 줄 걸 믿으니까.







Q. 

당신의 '영원할 순간'은 무엇인가요?







<글에는 빠진 비하인드>


'영원할 순간' 소재를 구상하면서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뮤지컬에 빠지게 된 순간'이었어요. ㅋㅋㅋ 첫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관람하고 전율한 뒤, 그 전율을 또 느끼고 싶어 한창 뮤지컬들을 보러 다녔는데.. 코로나 이후 시들해져버렸네요. 글의 분량 초과로 삭제되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또 분량상의 문제로 빠진 저의 또 다른 '영원할 순간'은 산책입니다. 저는 새벽에 일어나면 산책을 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요. 제가 산책할 때 본 새벽 하늘은 독자님들께도 꼭 보여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비하인드를 작성하게 되었어요.

저는 이날 한 폭의 수채화 안으로 제 두 발로 걸어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이런 하늘을 보면서,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려고 태어났나보다..'같은 생각도 했답니다. 여러분들의 영원할 순간은 무엇일지 정말 궁금해요. 





해윤의 해피레터의 가장 최신글을 매주 받고 싶다면?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76216

해윤의 해피레터는 시즌 2는 매주 일요일 밤 9시에 이메일로 발송됩니다. 


이전 14화 열네 번째 레터 : 난 몰랐어 언어가 이리 다채로운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