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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한 클래식이야기

커피마니아

커피를 사랑한 작곡가 바흐

추운 겨울

카페에 앉아 마시는  따스한 커피 한잔은 추워 움츠려져 있는  차가운 몸에 온기를 넣어주고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줍니다.


저는 요즘 부쩍 커피맛집들을 검색하여 커피향기에 취하고 맛에 감동하며  겨울나기를 하고 있는데요. 클래식음악 작곡가들중에서도 유독 커피를 좋아해 심지어 커피맛을 찬양하는 작품(커피 칸타타 )을 작곡한 작곡가가 있습니다.


바로 요한 세바스찬 바흐(J.S.Bach 1685-1750)입니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바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요?

우선 그의 이름 바하인가? 바흐인가?

 어떻게 발음하는 것이 옳은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답을 이야기하자면,

 “바흐”라고 발음하는 것이 맞습니다.

 1986년 우리나라의 표준어 표기법이 “바하”에서 “바흐”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독일어로 바흐 Bach는 “시냇물”이란 뜻인데요

바흐는 종종 자신의 이름을 두고 시냇물이라는 농담을 했다고 합니다.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도 되고, 바다가 된것처럼 바흐의 음악을 기반으로 하여 오늘날의 음악이 이루어졌으니 그의 이름이 더욱 예사롭지 않게 느껴집니다.


-바흐의 음악인생-

대대로 내려오는 독일의 음악가 가문이었던 바흐.

타고난 성실함으로 열심히 음악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이마르Weimar의 궁정 음악사로 일하면서 10년간 그곳에 머물렀고 바흐는 이 시기에  많은 오르간 곡들을 작곡하였습니다.

바흐는 특히 오르간 연주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고 오르간을 무척 열심히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독일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프랑스의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들의 음악적 스타일을 익히고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서 독창적인 작품들을 탄생시켰습니다.

대표적인 그의 오르간 작품으로는 <프렐루드와 푸가>, <토카타D단조>,<오르간소곡집>등이 있습니다.


바이마르에서 음악가로 활동하던 중 쾨텐의 영주 레오폴드로부터 궁정의 책임 음악가로 일할 것을 제안 받게 됩니다.  

월급도 아주 높게 제시받았는데요, 바흐는 슬하에 20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문제가 중요했을 터,그래서 레오폴드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쾨텐의 궁정에서 책임음악가로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레오폴드 영주는 음악을 무척 좋아하며 악기 또한 아주 잘 다루었다고 하죠.

 그 때문에 자신의 궁정 악단에 큰 관심을 두었고 바흐 뿐만 아니라 악단의 모든 연주자가 좋은 조건에서 음악활동을 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바흐는 이러한 최고의 음악적 환경에서 악기를 위한 많은 명곡들을 탄생시키는데요.

여러분 잘아시는 무반주 첼로를 위한 6개의 조곡,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3개의 소나타와 3개의 파르티타, 관현악 모음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등이 이 시기에 창작된 작품들입니다.

그러나 바흐는 성공적인 음악가로서 삶은 살았지만 여러 가지 개인적인 아픔들을 겪게 되는데요.

바로 사랑하는 아들과 부인 그리고 두 명의 형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흐가 6년 동안 쾨텐에 머물며 작곡한 작품들 속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그의 슬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바흐의 삶을 보면서 가끔 저에게 주어진 환경이 힘들어질 때, 제 삶을 원망하며 포기하려 했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쾨텐에서 생활을 하며 머물던 바흐는 이사를 결심하게 되는데요. 이사를 하게 되는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음악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레오폴드 영주가 재혼을 하게 되는데요.

새로 맞이한 부인은 음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하죠.

그러니 레오폴드 또한 음악에 점점 소홀해 졌다고 합니다.

두번째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으로 더는 쾨텐에 머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


바로 자녀 때문이었는데요,

바흐는 아이들이 더 큰 도시에서 대학공부를 하길 바랬습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부모님들과 같은 마음이었겠죠? 바흐는 아이들을 열심히 공부시키기 위해 독일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명문대학이 있는 라이프치히로 이사를 합니다.

또한 라이프치히에는 유명한 루터파 교회들(성토마스 성당, 베드로교회 등)이 자리잡고 있었는데요.

독실한 루터파 신자였던 바흐는 고민없이 성토마스 성당의 음악감독으로 취직하였습니다.

그리고  27년동안  독일을 떠나지 않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바흐는 라이프치히 성토마스 성당에 취직하여 많은 일들을 하였는데요, 성토마스 성당의 책임 음악가로 매주 미사를 위한 미사곡들과 장례식, 결혼식을 위한 미사 곡들 및 오르간을 위한 곡들 그리고 성토마스성당의 부속 여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도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매일 쉴 틈도 없이 일했지만 바흐는 음악가라는 직업이 자신의 삶이자 소명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의 작품들에는 자필서명으로 “soli deo gloria“-(오직 주님께 영광을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요.

독실한 신앙이었던 바흐는  음악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바흐는 그가 세상을 떠난지 80여년이 지나 독일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죤( F.Mendelssohn-Bartholdy 1809-1847)에 의해 재조명됩니다. 멘델스죤은 바흐의 열성 팬으로 바흐의 음악들을 찾아 복원하려 여러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멘델스죤이 지휘한 바흐의 최고 걸작품 <마태수난곡>(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장면으로 되어있는 일종의 오라토리오)으로 인해 바흐의 음악이 다시한번 세상에 부활하게 됩니다.   


독일의 라이프치히에 가면 아직도 바흐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바흐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했던 성토마스 성당 앞에는 여전히 바흐의 동상이 세워져 있기 때문인데요.

또한 성당내부에는 바흐의 묘소가 있고 매년 6월이 되면 바흐의 작품들로 페스티발이 열리기도 한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렇게 음악의 아버지 바흐를 기리며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음에도 재미있고 유익한 클래식이야기와 만나요. ^^


<추천곡>

1.골드베르그 변주곡

2.브란덴부르크 협주곡 1번 BWV.1046

3.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BWV.565

4.칸타타 BWV. 147 <주는 인간의 소망기쁨>

5.칸타타 BWV.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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