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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Jan 13. 2019

Z코드-정신과 치료받은 적 있네요?

희귀 난치성 질환 산정특례제도

"기며니씨 정신과 치료받은 적 있네요?"

며칠째 감기에 걸려 열이 심했다. 흐르는 콧물을 코가 헐게 풀어대다 보니 끈적하고 누런 콧물로 바뀌고 이내 양쪽 코가 번갈아 막힌다. 목까지 부어 침을 삼키기 힘들어져 옷을 주워 입고 꾸역꾸역 찾아간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정신과 치료받은 적 없는데 왜 저런 질문을 하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기분이 나빴다. 정신과 치료는 해로운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신과와 내 이름이 함께 붙으니 즉각적인 거부반응과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정신과 치료 기록이 취업, 이직, 승진 등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받는다는 뜬소문이 내 마음 깊숙이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 테다.


"아닌데요. 뭘 보시고 그런 질문하는 거죠?"
안 그래도 감기 기운에 몸이 춥고 머리 아픈데 짜증이 올라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여기 건강보험공단 조회 화면에 Z코드라고 나와있어요."

마주 앉은 나에겐 까만 플라스틱 판에 코드가 꽂힌 뒷모습만 보이는 모니터 화면을 보며 의사가 대답했다.


뜬금없이 정신과는 무슨 말이며 Z코드는 또 뭔가. 처음 듣는 단어로 내가 분류돼있다니 국가정보기관 비밀요원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병원에서의 진료기록을 의사들은 모두 공유하는 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정신과 치료 경험이 있느냐고 캐묻는 의사의 무례함에 매우 언짢아졌다. 의사는 마우스 휠을 드륵드륵 굴리면서 나는 알 수 없는 모니터 속의 내 진료기록을 계속 뒤지는 것 같았다.


머리가 웅웅 울리는 느낌까지 들고 허리를 펼 기력이 없어 더 이상 따져 묻지 않기로 했다. '난 한 번도 정신과에 간 적 없어. 돌팔이가 뭐 잘못 알았겠지.'라고 재빨리 생각을 마무리해 더 이상의 에너지 소모를 막기로 한다. 처방전을 받아 아래층 약국으로 가 약을 받고 엉금엉금 집으로 왔다.



약을 먹기 전 종이로 된 약 봉투를 봤다. 1회 복용하는 약은 다섯 알인데 각 알약의 사진과 이름, 성분, 효능이 표로 인쇄되어있었다. 진통제, 소염제, 해열제, 위 보호제 그리고 마지막은 신경 안정제였다. 지금까지 감기로 병원 가서 약을 받으면서 신경안정제가 들어있던 적은 없었다. 봉투의 알약 설명에는 '불안증세 완화'라고 쓰여있었다. '신경안정제를 왜 처방했지?' 의아했다. 대단한 비밀이라도 캐낸 양 나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느냐고 묻던 안경 쓴 의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불안증상을 호소한 적도 없는데 요청하지도 않은 안정제를 제멋대로 처방한 의사에게 화가 났다. 감기약을 먹을 때마다 신경안정제는 빼고 네 알만 먹었다.


감기로 앓는 며칠 동안 매끼 식사 후 꺼낸 약봉지의 신경안정제를 쓰레기통에 넣으면서 의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정신과를 한 번도 가지 않았는데 무슨 말일까. 'Z코드'를 검색했다. Z코드 옆에는 늘 F코드가 함께했다.


세계 보건기구(WHO) 국제 질병분류는 각 질병을 A~Z로 분류함.

[Z코드]
현재 질환은 없지만 상담이나 건강관리 등 보건 서비스를 받을 때 쓰는 코드.

[F코드]
우울증·불면증·ADHD·정신분열증 같은 정신질환을 일컫는 상병 코드.


정신과 상담을 받기만 해도 F코드가 남으면 사회적 낙인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해 2012년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증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신질환 진료를 기피하는 환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정신질환 외래진료에 건강보험 청구코드로 Z코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Z코드는 일반 정신질환 청구코드인 ‘F코드’와 달리 환자가 어떤 질병으로 진료받았는지 알 수 없다. 2013년 4월부터는 정신과 외래 상담에서 약물처방을 받지 않으면 F코드 대신 일반 상담인 Z코드로 건강보험료를 청구하도록 했다. F코드 대신 Z코드로 건강보험료를 청구하면 정신질환명이 기록에 남지 않는다. 이에 따라 Z코드 환자는 2012년 5만 1691명에서 2015년 9만 482명으로 늘었다.


일례로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F코드 제도의 문제점을 아는 보건당국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서는 약물 치료를 하더라도 Z코드로 처리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원래는 일반 상담 후 정신과 약물(향정신성의약품) 처방을 받으면 F코드로 바뀐다. 보건복지부에서 2014년 의료기관에 보낸 공문 <세월호 사고 관련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관련 상병코드 표기 방법>에서 세월호 사고로 인한 관련자들의 정신적 질환 등의 치료비를 지원하는데, F코드에 대한 부담으로 심리적·정신적 치료가 원활하지 않음을 우려해 정신건강의학과 상병코드 표기를 Z코드(Z.71.9: 상세 불명의 상담)로 기재하라고 공고했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 중 정신보건 전문가가 '일상적인 사회활동이 어렵다'라고 인정하는 사람을 법적인 제재를 받는 정신질환자로 한정한다. 모든 정신 질환자가 다 일상적인 사회활동이 어려운 정도가 아닌데도, F코드가 있으면 보험 판매사 단계에서부터 보험 가입이 거부되는 경우가 많고 취직,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과의 문도 두드리지 않는다. 이런 제도상의 문제점과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 때문에 한국은 13년째 OECD 자살률 1위 국가다. 일반상담 Z코드는 부정적 시선이나 사회적 낙인효과를 일부라도 해소해 가벼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적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조치였으나 효과는 크지 않다. 아직도 비보험 자비부담으로 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서다.


그럼 왜 나도 모르게 내가 Z코드를 받았을까. 내가 갔던 병원들의 종류를 전부 떠올려봤다.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안과, 피부과... 그러고 보니 '기면증 치료를 받은 수면장애 전문병원은 무슨과지?'라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수면장애 치료 전문 병원은 신경정신과였다.


그렇다면 나에게 Z코드를 선사한 병원은 수면장애를 진단, 치료받은 병원이었다. 당시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혹시 Z코드가 나의 이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가 가장 먼저 걱정이 됐다. 정신과 의사 5명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한겨레 뇌부자들>에서 정신과 의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취업 과정에서 고용주가 병원 진료 기록을 조회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불법이다. 또 병원 의무기록 시스템은 통합돼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기록은 의사만 볼 수 있다. 국가정보원·청와대·항공사(조종사) 등 특수한 기관 취업이 아니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보험에선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신질환은 국제적 질병 분류기준상 에프(F) 코드로 분류된다. 단지 에프 코드가 있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하면 불법이므로 이 경우엔 보험사에 공식 답변을 요청하고 문서로 남겨서 국가인권위원회, 금융민원센터, 보험소비자연맹 등에 분쟁 상담을 신청하라."


정신과 의사 5명이 밝혔듯 특수 기관 외 취업과정에서 고용주가 병원 진료 기록을 조회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정신과 진단과 치료기록이 취업과 이직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루머는 지금도 돌고 있다. 2015년, ‘SK텔레콤’, ‘지누스’, ‘약학정보원’, ‘IMS헬스코리아’ 네 곳에서 4400만 명, 약 47억 건에 달하는 환자 개인정보 및 질병정보를 병원과 약국으로부터 불법으로 수집해 판매해온 것이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에 의해 밝혀졌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전자처방전 사업을 철수했다. 이런 현실은 암암리에 내 의료 기록이 언제든 유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매우 찜찜했다. 동네 작은 이비인후과 의사도 클릭 한 번이면 보이는 나의 Z코드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볼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정신과 진료를 받은 것을 대단한 비밀을 알아낸 듯 기분 나쁘게 나에게 캐물은 의사는 분명 의료인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의료법에는 환자가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때에 따라 형법의 업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한다. Z코드냐고 나에게 캐물은 이비인후과 의사에게 찾아가 영화 주인공처럼 멋지게 법조문을 읊어주고 고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현실은 직장에서 일하며 이직 준비에 지쳐있었고 지난한 법정싸움을 할 에너지도 없었다. 내 권리를 침해한 의사에게 법적 조치를 취한다는 건 생각하는 것만으로 버거웠다.


의료법 제 1조의3제1항 관련  <개정 2016.10.6>
1. 환자의 권리
다.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
환자는 진료와 관련된 신체상·건강상의 비밀과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하며, 의료인과 의료기관은 환자의 동의를 받거나 범죄 수사 등 법률에서 정한 경우 외에는 비밀을 누설·발표하지 못한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나에게 Z코드라고 말하며 의료법을 어기고 내 권리를 침해한 의사 덕분에 이 모든 것을 알게 됐다. 기면증 확진과 치료제 처방을 받은 병원에 왜 Z코드가 기록됐는지를 물었다. 나는 기면증 확진을 받았는데, 기면증 치료제는 향정신성의약품이 아닌 전문의약품이라 F코드가 아닌 Z코드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희귀난치성질환자로 건강보험공단에 등록해야지만 약값의 10%만 내는 혜택을 받는단다. 기면증 확진 후 치료를 받을 당시 나는 희귀난치성질환자로 건강보험공단에서 인정해 산정특례제도 혜택을 받았다.


[산정특례제도]
건강보험이 적용돼도 진료비가 매우 높아 환자들이 많은 본인부담금을 내야 하는 암, 뇌혈관·심혈관 질환 등 중증질환과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이들이 병원을 이용할 때 본인부담 비율을 크게 낮춘 제도. 희귀난치성질환자가 해당 상병 및 관련된 합병증으로 진료를 받는 경우 요양급여비용 총액의 10%만 본인이 부담. 산정특례는 등록일로부터 5년 동안 적용됨.


수면다원검사 등으로 기면증 확진을 받으면 건강보험공단의 희귀 난치성 질환 산정특례 대상자가 된다. 국제 질병분류( ICD-10 :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에 따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발표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의 기면증은 코드 G47.4이다. 기면증은 G47.4 코드로 희귀 난치성 질환자로 분류해 약값의 10%만 환자가 내는 것이다. 기면증 환자는 매일 약을 안 먹으면 낮에 깨어있지 못하는데 검사비와 약값이 매우 높아 경제적 부담이 크고, 완치가 없어 희귀난치성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기면증 환자는 2013년 2543명에서 2014년 2943명, 2015년 3433명, 2016년 3954명으로 꾸준히 늘어 2017년에는 4544명으로 2013년 대비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지금도 기면증 진단과 치료를 받는 환자는 꾸준한 증가 추세다. 기면증 환자의 10%만이 진단과 치료를 받는다는 통계를 볼 때, 치료를 받는 환자가 늘고 있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이는 수면장애를 치료하는 의료진의 노력으로 기면증이 희귀난치성질환자로 지정돼 혜택을 받게 됐고 진단비와 치료비 부담이 낮아진 덕분임을 알고 있다. 매일 약을 먹지 않으면 정상생활이 불가능한 환자들이 꼭 필요한 도움을 받도록 계속 노력 중인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환자가 개선이 진행 중인 국내 정신과 진료 제도와 인식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다수의 환자가 수면장애 치료 병원에서 "Z코드는 아무런 기록이 남지 않아 취업 등에 불이익이 없고, 산정특례를 받아야 검사비와 약값의 10%만 낸다."는 짧은 안내를 받을 뿐이다. 치료 방향을 정할 때, 희귀 난치성 질환자로 등록되는 것이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 번 혜택을 받은 후에는 아무리 보험사나 공단 측에 돈을 돌려줘도 혜택을 받기 전으로 기록을 되돌리기 힘들다. 작년에도 청와대 신문고에 <z코드에 대한 법령과 규율 그리고 이에 따른 민원제기>를 보면 정신과 상담을 하고 기록이 남을까 봐 치료비를 100% 자부담했지만 진료기록이 남아 삭제를 원하는데 불가능하다며 시정을 요구하는 청원이 있다. 그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관리공단에 문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나 역시 기면증 치료제를 먹지 않은지 2년이 넘었으며 이직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Z코드를 삭제하고 싶었다. 건강보험공단에 찾아갔더니 산정특례지원 중단 신청을 하면 된다고 했다. 만약 희귀 난치성 질환자로 산정특례 보험혜택을 받은 기록을 일부 삭제하고 싶을 경우, 전부 삭제는 불가능한 데다가 산정특례 허가 취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지원받은 약값을 모두 다시 내야 하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차피 내 기면증 치료 내역이야 사보험의 실손의료비 보장 보험료로 진료비를 돌려받은 기록 등이 남아 있을 것이라 전체 삭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동네 병원에서 나에게 정신과 진료 경력이 있느냐고 장난스럽게 묻는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Z코드 삭제가 아닌, 희귀 난치성 질환자 산정특례 선정을 취소하는 신청서를 냈다. 취소 신청이 반영되는 즉시 모든 병원에서 조회하는 나의 건강보험 자료에 Z코드는 뜨지 않는다고 안내받았다.


만약 기면증 확진을 받고 산정특례제도를 통해 진료비와 약값을 지원받을 예정이라면 본인이 Z코드로 기록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길 바란다. Z코드를 받았다고 취업이나 이직에 불이익은 없다고 하지만, 신체검사를 할 때 담당 의사는 당신이 Z코드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특수 직군이나 공직 중에 취업 제한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수면장애 치료 담당 의사와 함께 약을 처방받고 보험혜택을 받았을 때 본인이 원하는 진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물어봐야 한다.  


정신과 치료비 100% 본인 부담... 서러운 환자들. 보험가입 등 사회적 차별 탓 출처: 서울 퍼블릭뉴스


일부 보험사는 Z코드도 보험 가입을 거부한다. 상법 732조의 '심신상실자 또는 심신박약자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은 무효로 한다.'를 근거로 말이다. 정신과 치료 병력이 있을 경우 F코드인지 Z코드인지 확인도 안 하고 보험 가입을 거절하는 사례가 있다. 2017년 5월 25일 오마이 뉴스의 <우울증인데 암보험 가입 안 된다고요?> 기고문과 암보험을 드는데 Z코드 이력이 있는 사람이 보험 가입을 거절을 당한 후 국가인권위원회 민원 신청 등을 시작으로 1년 넘게 지난한 싸움을 했어야 한다는 익명 게시판의 글들이 있다. 이는 보험사가 명백히 현행법을 위반한 것이지만 아직도 정신과 상담 이력만으로 각종 보험가입이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다.


정신과 진료기록만으로 차별을 받지 않겠다며 만든 제도를 아직 우리 사회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본인이 기면증 등 수면장애로 희귀 질환 산정특례 보험혜택을 받을 때는 혜택에 따라오는 제약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취업과 이직에 아무런 영향이 없어요. 만약 혜택을 받았더라도 기록은 언제든 삭제돼요."라고 상담실에서 내 얼굴을 마주할 때도, 병원 홍보 블로그에도 버젓이 적어놓는 수면장애 전문병원의 광고만 믿으면 안 된다. 이론적으로는 취업과 이직에 경미한 정신과 상담과 치료 경력으로 차별을 받으면 안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수면장애 치료는 정신과에 속하며 Z코드를 받고, 희귀 난치성 질환 산정특례 보험혜택을 받으면 기록 삭제는 불가능하고 혜택 중지 신청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만약 보험혜택 받은 사실을 부정하고 싶다면 그간 받은 보험금을 돌려줘야 한다. 진료 검사비의 70% 이상과 약값의 90%를 지원받기 전에, 한 번 혜택을 받고 나면 보험가입, 이직, 공기업 취업 등에서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이 거부되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라는 발언을 한 것도 Z코드를 도입하고 몇 년이 지난 후다. '차라리 나도 처음부터 비보험으로 전액 다 주고 진단과 치료를 받았어야 했나' 하며 후회도 했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기면증 진단 검사비만 150만 원에 약값은 매 달 20만 원이 넘게 들었을 거고, 5년마다 검사를 다시 받았어야 해서 치료를 포기했을 것이다. 사회초년생이 우리나라에서 비보험으로 지속적인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뇌에서 호르몬이 나오지 않아 뇌와 신체가 제멋대로 움직여 약물치료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해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데 말이다.


기면증, 불면증, 수면무호흡증을 포함한 정신과 질환자들은 우리나라에서 치료를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없는 현실을 이제야 알았다. 희귀난치성 질환자 산정특례 등록 취소를 요청하기 전까지 나는 동네 이비인후과 의사에게도 Z코드 G47.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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